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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  2010.07.17.

 

[세상읽기 ] 파워포인트 딜레마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제가 원래 파워포인트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만.”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슬라이드 첫 장을 넘기면서 말을 꺼냈다. 한겨레경제연구소의 사회적기업가MBA 과정을 포함한, 사회적기업가학교 수료식 특강에서였다. 늘 흑판에 백묵으로 그림을 직접 그리면서 강의를 하던 그였다. 강의 내내 감탄사가 계속 나왔다. 감동적인 명강의였다.
 

나는 파워포인트를 처음 만났을 때의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화려한 색의 그래프와 글과 사진을 직접 만들고 편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글과 그림이 날아다니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나는 흥분했다. 파워포인트는 강의할 때나, 컨설팅 결과를 보고할 때나,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나 꼭 애용하는 도구가 됐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파워포인트 딜레마’에 빠졌다. 발단은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과 나눈 대화에서였다.

 

“요즘 매일 야근입니다. 아주 죽겠어요.” “일이 많아지셨나요?” “일은 똑같은데, 자료 때문이지요. 보고를 파워포인트 자료로 하기 시작한 뒤부터 다들 야근이 너무 많이 늘었어요.” 그는 사회복지정책을 맡고 있었다. 복지정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전혀 변화가 없는데, 보고 방법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업무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뉴욕 타임스>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 장교들이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드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며, 그 위험성을 지적하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천안함 관련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한국 합동조사단은 파워포인트와 동영상 자료로 북한 쪽을 압도했다고 자랑했는데, 거기에 얼마나 시간을 쏟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파워포인트는 포장 기술이다. 물론 지금은 잘 포장해야 잘 설득할 수 있는 세상이고 파워포인트는 그런 세상의 한 상징물이다. 강의에서도 세미나에서도 보고에서도 이걸 잘 쓰는 사람이 유능해 보인다. 하지만 가끔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파워포인트는 분명 ‘포인트’에 ‘파워’를 주기 위한 것이다. 즉 전달하려는 내용이 먼저다. 그런데 슬라이드를 만들다 보면, 자꾸만 ‘파워’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포인트’를 구성하려는 유혹에 시달린다. 심지어 포인트를 왜곡하면서 과장스럽게 표현하기도 한다. 파워와 포인트 사이의 갈등, ‘파워포인트 딜레마’다.

 

어떤 제품의 포장지가 내용물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과대포장’이라고 부른다. 소비자에게 가치로운 것은 포장지가 아니라 내용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커뮤니케이션에서든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실은 파워포인트뿐 아니라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그렇다. 요즘 열풍이 불고 있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도, 커뮤니케이션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스마트폰도 결국 전달 형식을 규정할 뿐 내용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미디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콘텐츠다.

 

정부도 대기업도 틈만 나면 소통을 이야기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소통부족, 홍보부족’을 논한다. 청와대와 삼성이 올해 트위터 계정을 열고 누리꾼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것도 그 대응이다. 그런데 그 소통이, 혹시 내용을 과장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만들기 같은 일은 아닐까? 같은 내용을 더 화려한 슬라이드로 만들어 봐야 세상이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을 점검하는 일이다. 정부에서라면 정책 기조를, 기업에서라면 사명과 전략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신영복 교수의 파워포인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붓으로 직접 그린 그림과 글씨로만 채워져 있었다. 사회적기업이 왜 중요한지, 사람은 왜 서로 연대해야 하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슬라이드는 강의의 배경음악이었다. 감동은 증폭됐다.


포인트가 먼저다. 파워는 나중이다. 발표에서도, 정책에서도, 경영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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