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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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서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부쳐


신영복 선생의 감옥 안에서의 마음 씀이라 할까 하는 것은 가끔 선생이 쓴 붓글씨의 글말들을 더듬어 막연하게나마 헤아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아침햇빛'이나 '샘터찬물' 같은 넉 자로 된 것도 있었고, 때로는 살아 있는 시인들의 시 작품을 쓴 것도 있었다. 그리고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다가 신선생이 쓴 시를 보고, 그 시인의 그 시를 좋아하게 되기도 했다.

평화신문을 창간하던 지난 4∼5월 무렵에는, 어쩌면 신선생의 붓글씨 가운데서 '평' '화' '신' '문' 넉 자를 찾아 집자(集子)하여 제호(題號)로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었다. 그래서 다행히 '평화신문' 넉 자를 집자할 수 있었고, 보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좋다고는 하였지만 막판에 가서는 '제자'(題字)를 쓴 사람을 밝혀야 할 텐데 어떻게 할 거냐는 문제에 부딪쳤다. 신선생이 이렇게 나오신 뒤에 우리 신문이 창간되었다면 아마도 신선생의 글씨로 '평화신문'의 제자를 삼았을 것이다.

작년에 6 29선언이라는 것이 있은 후, 그 선언이 떠들썩했던 데 비해서는 정치범 양심수의 석방은 찔끔찔끔, 정말 감질나는 것이었다. 이른바 공안당국에 의한 선별석방이었는 데다가 대개의 경우 그나마 형기가 다 찬 사람들에 국한되었다. 그러다보니까 이름 그대로 형기가 없는 신선생과 그 동료분들이 나오기는 기대하기조차 어려웠지만 그래도 석방 때마다 그 석방을 바라는 관심 있는 이웃과 가족들의 노심초사는 더해만 갔다.

이럴 무렵, 우연한 기회에 신선생이 그동안 감옥에서 가족 앞으로 보낸 편지들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감동이었다. 그때 특히 감동을 받았던 내용은 1985년 8월에 '계수님께' 보낸 다음과 같은 귀절이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를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대개의 편지가 다 따뜻한 마음, 아름다운 뜻을 그 안에 함축하고 있지만 자신의 처지와 마음이 그림처럼 곱게 나타나 감동을 주는 것들이다.
짧은 글이면서 또 징역 사는 사람들의 바람과 한을 나타낸 것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그 글귀는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고 남을 것이라 생각된다. 1988년 1월에 쓴 것으로, 역시 '계수님께' 쓴 글이다.

 

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처음에 신선생의 글을 '평화신문'에 싣기에 앞서 다소 망설였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평화신문'이 소외되거나 인권이 유린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실어 어둡고 그늘지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터에 감옥에서 보낸 편지, 그것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무기수(이렇게 말하는 것을 용서받을 수 있다면)의 글을 싣는다고 짜증 섞인 항변은 없을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기우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속에서 나오는 평화의 메시지로서,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조용한 호소력이 신선생의 글에는 있었던 것이다. 신문에 실린 편지를 읽고 울었다는 사람도 있고 온몸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심금에 와닿는다고 하는 사람도, 신선생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사람도, 주소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4회에 걸쳐 실은 뒤끝에 신선생은 석방되었다. 그 얼마나 고맙고 바람직스러운 일이었던가. 우리는 마치 우리가 신선생이 나오는 데 큰 몫이라도 한 것처럼 괜히 덩달아 기뻐했다.

감옥은 나오는 맛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신선생이 감옥에서 나오는 맛은 일반의 다른 사람보다는 진했으리라 생각된다. 지나온 날, 어머님과 아버님, 그 가족들에게 끼친 염려가 엄청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만큼 한꺼번에 바친 효도도 큰 것이라고 우리는 감히 말하고 싶다. 부모는 아들을 되찾은 것이다. 돌아온 아들만큼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우리가 감히 앞을 자르고 위를 쳐서 겨우 신선생의 참뜻의 일부(교도소 검열을 거친 것이기에 사전에 여과된 것까지 치면, 더욱 그렇다)만을 전한 것이 늘 죄송스럽더니 이제 신선생 편지의 전문이 비교적 다 살려진 채로 세상에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온다고 한다. 우리가 못다한 일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제 '평화신문'을 통해서 겨우 신선생의 절제된 체취와 사색의 일단만을 보아온 독자들이 보다 가깝게 신선생 내면의 사색을 접근할 수 있게 된 데 대해 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더구나 지금은 신선생이 밖에 나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진정 이런 날이 있기를 간절히 바래왔던 것이다.

1988년 8월 15일.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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