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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2-17
미디어 무등일보_김영태

무등칼럼

응팔,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김영태 논설실장  무등일보  2016.02.17.


덜 가지고 덜 배부르더라도 이웃과 함께하며 부족함과 고픔을 채우던 날들의 이야기가 그 드라마의 주요 주제였다. 그들이 살던 골목길에는 아침이면 하얗게 탄 연탄재가 버려졌다. 옹기종기 들어선 고만고만한 주택들의 대문 틈으로는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조간신문이 배달됐다. 허름한 평상에 둘러앉아 이러저런 잡사를 주고받는 동네 아낙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한낮의 나른함을 일깨우곤 했다. 어스름 해질녘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술 한잔 걸친 거나한 취객이 지나가고 늦은 귀가에 부모의 꾸지람이 걸려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저 그런 동네 청춘들이 그곳에 모여 살았다.


공동체 구성원의 유대감이 아쉽다


 드라마 속의 그 곳은 함께한 이들이 정겹고 살가워 유사 인척으로 느껴질 만큼 아련한 향수로 투영되는 옛 기억의 공간이었다. '응답하라 1988(응팔)'는 흘러간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한번쯤은 눈물과 함께 돌아보게한 동인이었던 때문이다. 썩 넉넉하지 않았지만 '더불어' 살았던 옛시절, 공동체 구성원이 무언의 긍정으로 나누었던 유대감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얼마전 유명을 달리한 신영복 성공회대교수는 이 시대에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흔치않는 문자로 된 교훈을 세상에 남겼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조리한 체제에 의해 갇혀 지내야 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얻은 성찰의 결과물이었다.


 "나뭇잎 모두 떨어지고 나목의 가지 끝, 삭풍 속에 남아있는 마지막 과실을 '씨과실(碩果)'이라 합니다. '석과불식'이란 이 씨과실을 먹지않는 것입니다. 먹지 않고 땅에 심어서 새봄의 싹으로 돋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우리의 몫입니다"


신 교수는 석과를 새싹으로, 다시 나무로 키우고, 숲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장구한 세월,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먼 여정은 무엇보다 먼저 엽락(葉落·낙엽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잎을 떨어뜨리고 거품을 걷어내고 환상을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체로(體露)를 거론했다. 잎을 떨어뜨리면 뼈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이 뼈대를 직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분본(糞本)을 들었다. 뿌리에 거름을 주는 일이다. 우리가 잊고있는 것은 뿌리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역경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게 석과불식의 교훈이다. 석과불식은 '주역'의 박괘(剝卦)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박괘'는 소인배들이 득세하여 군자들을 깎고 또 깎아내는 상황이지만, 마지막 장에 '석과불식'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남아있다. 소인배가 비록 득세하더라도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 거기에 우리 시대의 희망이 있다.


응팔의 방영이 전하고자 했던 바와 신교수의 교훈이 겹쳐 떠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응팔은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풍족하게 살았던 이후의 세대에 비해 궁핍했지만 더불어 살아가면서 부족함을 채웠던 이전 시절의 이야기다. 덕선이와 보라, 정환이와 정봉이, 동룡이와 택이를 비롯한 그 피붙이들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었다. 그러나 별로 내세울 것없는 한 동네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이어져 '너와 나'의 구분을 지웠다. 신 교수의 삶도 '더불어 숲'이라는 저서와 한 주류업체의 의뢰로 써준 독특한 글씨체인 '처음처럼' 애초의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것이었다.


작은 나무, 큰 나무 어울려 자라야


 공동체의 삶을 강조한 응팔이 그려냈던 그 때와 지금을 비슷한 잣대로 잴 수는 없다. 지금 우리의 경제 현안은 성장 우선이냐, 분배 우선이냐는 이념 간 맞섬으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러한 쟁론은 서민들이 기대고 의지할 미래의 꿈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차라리 한가할 정도다. 해가 갈수록 수치를 높이는 노인 빈곤률, 절벽앞에 놓인 청년 실업률. 항상화한 고용불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 가장 낮은 출산율. 최후의 생계수단이라할 자영업의 잇단 휴·폐업. 잘 나가는 재벌 2세, 3세, 4세들과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이 들고있는 '수저'의 색깔이 확연히 차이나면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등등.


신 교수는 나무 한 그루로는 숲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더 많은 햇볕을 받아 더 잘 크는 나무들 때문에 그렇지 못한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해도 마찬가지다. 작은 나무나 큰 나무나 고루 식생할 수 있어야 더불어 숲이 형성되는 것이다. 응팔이 그리고자 했던, 신 교수가 꿈꾸었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우리 시대에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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