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016-0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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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LA중앙일보_여정 |
[독자 마당] 물신주의 팽배한 세상을…'처음처럼' 살다 간 지성
[LA중앙일보] 발행 2016/01/25 미주판 8면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냉전시대 한국근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아픔이며, 이 시대의 지성으로 세인의 존경을 받아온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타계했다. 위의 글은 신 교수의 서화에세이집 '처음처럼'에서 인용한 것이다.
서민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술(소주)의 브랜드로도 유명해진 '처음처럼'의 글귀가, 처음 소주병에 찍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일화가 있다. 술 이름으로 자신의 글을 사용하겠다는 결코 마뜩지 않은 주류회사의 요청에도 "서민들이 많이 즐기는 대중적 술인 소주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자신이 개발한 독특한 서체인 '어깨동무체'로 직접 쓴 '처음처럼'이 소주병에 찍혀 출시되고 대박을 치면서 해당 주류회사가 사례를 제의하자, 신 교수는 몇 번이나 극구 사양했다. 어쩔 수 없이 주류회사측은 신 교수가 몸담고 있는 성공회대학교에 장학금으로 거금을 기탁하게 됐다고 한다. 천박한 물질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귀감이 되는, 범용함과 속태를 벗은 고인의 해사하고 정갈한 삶의 편린을 엿볼 수가 있다.
부디 '처음으로 하늘을 만난 어린 새'가 되셨으니 영원토록 자유하소서. 자유하소서.
여정·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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