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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1990-01-04
미디어 한겨레신문

주소없는 당신에게

(한겨레 기획 칼럼)

 

 

 김유신의 말은 천관녀의 집 앞에서 목 잘려 죽었습니다. 생각없이 어제의 골목을 답습하다가 칼날 아래 목 잘리고 말았습니다. 경오년‘말의 해’는 모든 말들이 생각해야 하는 해입니다. 주인의 뜻을 생각해야 하는 해입니다. 새로운 길을 생각해야 하는 아침입니다.
  좋은 음식을 받을 때 당신의‘밥’이 생각납니다. 따뜻한 겨울 난로를 만날 때 당신의‘방’이 생각납니다. 만원버스 속에서 여자들과 몸부대낄 때 나는 당신의‘밤’을 생각합니다. 도시의 거리와 거리에 넘치는 인파, 그 흔한 보행의 자유속에서 나는 당신의 묶인‘발’을 생각합니다. 당신을 전선에 두고 혼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미안합니다. 당신을 병실에 남겨두고 혼자 퇴원하여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곳만이 전선이 아니며 그곳만이 병실이 아니라던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더욱 복잡한 사람, 더욱 지겨운 상황이 도처에서 부딪쳐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는 상대는 마치 뿔 달린 말처럼 피난하기도 어렵고 상대하기도 난감합니다. 대상의 전부를 상대의 전인격을 한꺼번에 상대하려는 욕심은 허탈과 소외를 안겨줍니다. 현장 그 자체로부터 대상과 자신을 함께 소외시켜 갈 뿐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문제삼아야 하는 것은 본질적 인식에 토대한 상황적 진실이며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방법상의 고민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값싸다 하더라도 겨울에 봄 옷을 고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겨울산 ; 단 한명의 등산객도 없는 겨울 백운대 꼭대기에서 잠자다가 가슴을 찌르는 총성에 소스라쳐 잠깬 적이 있습니다. 꿈속의 총성이었습니다. 꼿꼿이 선채로 말뚝에 뒷손 묶이고 가슴에 검은 표적판 붙이고 총살형을 당하는 20년전의 악몽에 소스라쳐 잠깨었습니다. 겨울산 꼭대기 너럭바위에서 빈 하늘 빈 산에 기대어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잊는 것은 지혜이고 그것을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어제가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오늘도 불행하고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내일도 불행합니다.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밤’이 있습니다. 총성에 소스라쳐 찢어지기도 하지만 이 밤의 역사는 불행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현장입니다. 밤을 깨끗하게 보내지 못한 사람은 아침거울에 얼굴 부끄럽습니다. 밤의 한복판에 서 있는 당신은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새벽을 위하여 꼿꼿이 서서 밤을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밤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직진의 고속도로는 한없이 미안한 길입니다. 논밭에 쏟은 당신의 수고를 짓밟고 이윽고 도착한 서울. 서울은‘거대’합니다. 빌딩과 교량, 도로와 물건, 당신이 그동안 쌓은 수고가 산처럼 우뚝합니다.
  그 앞에 서서 자기명의의 소유권을 행복해하는 사람과는 달리, 당신은 질통지고 ‘아시바’(비계)를 오르내리던 기억을 회상한다는 그 큰 빌딩앞에 서서 나는 당신이 쌓은 벽돌의 수를 세어보았습니다.
  “참 많아 변하였지요?”만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질문을 받고 나는 묻는 사람에 따라 다른 답변을 준비하면서 풍요로운 마을에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약했던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쫓겨 들어간 ‘산’을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 고치속에서 죽은 번데기를 생각했습니다.


  “사나이 가는 길앞에 웃음만이 있을쏘냐. 결심하고 가는 길 가로막는 폭풍이 그 어이 없으랴. 푸른 희망을 가슴에 움켜안고 떠나온 정든 고향아 내 다시 돌아갈 때 열굽이 도는 길마다 꽃잎을 날려보리라.”
  명절이면 으레 읊조리던 당신의 노래입니다. 객지가 서럽고 고향이 그리운 당신의 소망입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90년대의 첫해를 맞았습니다. 해마다 해가 바뀌는 새벽에 찬 벽 등에 지고 앉아서 이렇게 사는 것도 사는 것이냐며 삶 그 자체를 질문하던 당신이 생각납니다. 지난 해가 부끄러운 사람에게 새해는 마침 좋은 핑계입니다. 그러나 등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당신의 새해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무슨 짓 해서든지 돈 벌면 된다지만 돈이 꽃잎이 될 수 없음을 실은 당신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먼 훗날.“참 그때는 우리가 도둑질해서 먹고 살았지.”“참 그때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 짓거리하며 살았지.”
  이런 말로 오늘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그런 시절, 그런 세상이 될 때, 그 때는 얼룩진 땟국 말끔히 씻고 저마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한 고향을 바로 이곳에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반쯤으로 낮춰 잡아 매일 아침 2백만의 시민이 출근을 하고 있다면 출근 1시간 퇴근 1시간. 아침 저녁 출퇴근으로 2시간씩 매일 4백만 시간을 길에 뺏기는 셈이 됩니다. 50만의 노동력이 하루종일 일해서 만들어 내는‘생산’이 매일 길에서 짓밟혀 없어집니다. 노인도 아이도 없는 건장한 50만의 도시 하나가 매일 낭비되고 있습니다. 출근 뒤의 지친 심신과 퇴근 뒤의 망가진 마음은 셈하지 맙시다. 그것과 함께 소모되는 물건은 물건이기 때문에 작은 것이라 제쳐둡시다.
  삶 ; 열 여섯살 누이동생을 서울에 잃고 십년 뒤 뜻밖의 골목에서 마주친 누이의 모습에서, 참혹하게 변해버린 누이의 얼굴에서 당신은‘서울의 얼굴’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건물이나 도로나 그곳에 쌓인 부의 양으로 그 마을을 판단하지 않고 의지가지없는 한 여아를 어떤 모습으로 키워내는가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당신의 고집은 정당합니다. 그것은 당자의 비극을 바닥에 과도하게 깔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람들의 삶을 모든 기준의 상위에 두는 그 하나만으로서도 지극히 탁월한 시선입니다. 서울은 미덥지 못하고 그러기에 충분히 왜소합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더불어 함께 살지 않을 수 있는 자유앞에 무력합니다.


  추운 겨울 어렵게 얻은 뜨신 물 반 대야에 당신과 함께 네개의 발을 담글 때, 물이 적지 않을까 하던 걱정을 순식간에 밀어내고 대야에 가득히 차오르면서 안겨주던 충만함을 기억합니다. 동상박힌 발가락 훈훈히 풀어주던 겨울아침의 족탕은 술 한잔의 우정보다 더 뜨거운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감탄하며 바라볼 때에도 발은 어두운 신발안에서 체중을 감당하며 땀흘린다는 시인의 애정에 대하여 우리는 공감하였습니다.
  정나라 사람이 장에 신발을 사러 가려고 종이에 발 올려 놓고 본(度)을 떴는데 막상 시장에 갈때에는 그만 깜박 잊고 그 본을 집에 둔 채 그냥 갔습니다.
  신발가게 앞에 와서야 그것을 집에 두고 온 것을 깨닫고 허둥지둥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장은 이미 파하고 신발은 살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발로 신어보고 사지 그랬소?” 대답인즉 “발이 아무려면 본만 하겠소” 한 비자의 우화 한 토막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나는 당신이 땅바닥에 그리던‘집’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들보 도리 서까래 지붕을 차례로 그리던 당신의 ‘순서’는 바로 집을 지을 때의 순서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사람과 주춧돌부터 그리는 사람의 차이는 집을‘그리는’사람과 집을 ‘짓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엄청난 차이입니다. 본(본)과 발, 종이와 망치, 교실과 공장, 이론과 실청, 화폐와 물건, 옷과 사람, 임금과 노동력……이 엄청난 간격 사이에서 시종 우직한 선택을 고집하는 당신의 삶은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59학번과 89학번은 한 세대를 격해 있습니다. 세대교체는 결국 생물학이 해결한다는 유유한 여유는 여유가 아니라 도피입니다. 그러나 세대를 곧 차이로 단정하는 반대의 논리도 도피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본질을 시간에 매몰시키는 모든 도식은 방법만 있고 역사는 없는 역사로부터의 도피입니다.
  4·19묘지에서 걸어나올 때 함께 걸어나오지 못하고 묻혀 있는 친구에 대한 애도는 모란공원, 망월동묘지의 젊은 죽음 앞에서 사치스럽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의 차이는 달력 한 장, 종이 한 장의 거리에 있습니다. 나는 그 곳의 친구들에게 나의 결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알뜰살뜰 딸의 정은 사위놈이 갈라가고 깊고 깊은 아들 정은 며느리가 가져갔네.” 자는 잠에 죽기 원하던 어머니를 나도 그만 자는 잠에 떠나 보내고 빈소에 앉아 어머니 평생인 1900년대의 82년간을 생각합니다.
  봉건사회 식민지사회 전쟁 정변 항쟁 자본주의사회 그리고 3·4·5·6공의 20년 옥바라지를 뜻 모르고 겪으며 살아 온 평생은 복잡합니다. 빈소를 번갈아 울리는 찬송가, 예불, 젊은 운동가의 혼합은 착잡합니다.


  20년만에 대하는 친구들은 괄목할 만큼 변하였습니다. 크게 변한 것은 옷과 의자 그리고 그의 사회적 주장입니다. 별로 변하지 않은 것은 그의 인간적 자질입니다. 20년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심성의 바탕’‘사고의 틀’은 완강합니다. 이는 예상 밖의 놀라움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나의 20년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그 뿌듯했던 자기개조의 성취감이 기실 보잘 것 없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의 낭패감, 이는 당신의 것을 내것인양 여겼던 환상의 공허함입니다. 개인을 단위로 하여 자신을 개조하려는 모든 노력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 개인으로서의 변혁마저도 최종적으로는 이웃들과 삶을 공유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웃만큼의 변혁이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치인지도 모릅니다.
  종아리를 때리는 편달의 고독한 노력보다는 수많은 도자기가 가마속에서 함께 익어가는 훈도의 훈훈한 풍토가 삶의 본래 모습이며 함께‘잘나고’더불어 성장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요즈음은 당신을 이야기하기가 무척 주저됩니다. 폭력을 단죄하는 목소리, 범법을 규탄하는 활자들이 연일 기승입니다. 평화와 질서, 안정과 번영을 외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전부를 부정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눈이 내려 당신의 눈썰매이야기가 자연스럽습니다.
  에스키모의 눈썰매는 십여마리의 개가 끈다고 합니다. 그 중에 가장 병약한 개 한마리를 골라 줄을 짧게 하여 썰매로부터 가까운 자리에서 끌게 합니다. 이 병약한, 그래서 죽어도 아깝지 않은 개만 채찍으로 내려칩니다. 그 처절한 비명이 다른 개들을 힘껏 달리게 한다는 당신의 말이 생각납니다.“죄 없는 자 이 여인을 돌로 쳐라, 썰매 위의 사람만이 이 개를 채찍으로 쳐라.”


  좌석버스의 앞자리 젊은 엄마에게 안긴 아기와 바로 그 뒷자리의 내가 서로 눈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맑은 동공속에 내 얼굴이 비쳤습니다. 세계를 읽으려는 아기의 눈속으로 내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순간 나를 심각하게 하였습니다. 내 몸에 남아 있는 감옥의 고통을 그 속에 넣어도 되는 것일까. 그 동공속에 들어가도 괜찮을 만큼 나는 맑은가.
  나는 더 먼 자리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손 흔들어 주었습니다.
  북악산의 쌍굴공사장은 아직 우람한 현장이 못됩니다. 일꾼의 수도 적고 중기소리도 높지 않고 현장사무소의 간이건물도 약소합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산을 뚫고 있습니다. 이쪽에서 뚫어가고 저쪽에서 뚫어오는 굴이 빗나가지 않고 마주 만나는 날, 그날이 최대의 축제일이라 합니다. 깜깜한 동굴의 끝과 끝이 만나 열리면서 빛이 통하는 날, 바람이 통하고 사람이 통하는 날, 그날은 곡괭이 대신 서로의 팔뚝을 잡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더불어 춤추는 날이라 합니다. 깨어지고 부서진 모든 조각들마저도 탄탄한 길바닥이 되는 날이라 합니다.


List of Articles
분류 제목 게재일 미디어
기고 개인의 팔자 민족의 팔자 - 한겨레신문 1990.2.22. 1990-02-22 한겨레신문
기고 주소없는 당신에게-한겨레 기획 칼럼 1990.1.4. 1990-01-04 한겨레신문
대담/인터뷰 [인물포커스] 더불어 나누는 사람만이 희망 - 동아일보 2001년 9월 28일 2001-09-28 동아일보_서영아기자
대담/인터뷰 [이 시대의 정신을 만난다] 인고의 휴머니스트 신영복 - 작은이야기 1999. 1. 창간호 1999-01-01 작은이야기_도서출판 이레_문강선기고
대담/인터뷰 [월요인터뷰] 삶의 철학 펴는 신영복 교수 - 중앙일보 1998년 8월 24일 1998-08-24 중앙일보_이경철 차장
대담/인터뷰 '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신영복 - 함께걸음 1998.12 1998-12-01 함께걸음_한혜영기자
대담/인터뷰 '정범구의 세상읽기' 신영복 교수 편 - KBS 1998년 7월 5일 1998-07-05 KBS
대담/인터뷰 수많은 현재, 미완의 역사 - 손잡고더불어. 돌베개. 2017수록 1998-03-01 당대비평3호_홍윤기대담
대담/인터뷰 더 높은 인간성을 향한 불안스럽지만, 확고한 '떨림' - 월간 '말' 1996년 8월호 1996-08-01 월간 '말'
대담/인터뷰 풀잎처럼 어깨 동무해 살고픈, 우리시대 선비 신영복_오숙희 1996-05-01 참여와 연대 격월간지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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