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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1-09-28
미디어 동아일보_서영아기자

 

[인물포커스] 신영복 성공회대교수

더불어 나누는 사람만이 희망







《추석. 모두가 고향을 찾는 때다. 자신이 얼마나 멀리 떠나있었던가 되돌아보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 추석을 앞둔 나라안팎의 사정은 말그대로 난마(亂麻)다. 나라안 남남 지역 보혁갈등에, 나라밖 미증유의 테러사건까지. 이 뒤숭숭한 세상 속에서 신영복(申榮福·60) 성공회대 교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24일 오후 서울과 부천의 경계지점에 있는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관 6층 연구실로 신교수를 찾았다.》

 

 

 


#고향은 성찰의 공간

 

-곧 추석입니다. 감옥에서도 추석을 쇠셨을 텐데, 어떤 기억이십니까.

 

“감옥에서야 쌀밥 주는 날이지요. 밤에 자리에 누우면 열차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고향은 성찰의 공간인 것 같습니다. 귀향객을 떠올리며 ‘다들 비뚤어졌던 삶 뒤척이며 돌아가고 있겠구나.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자리가 참 엉뚱하겠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가 옥중에서 세상으로 내보낸 편지 중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여름징역은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신교수가 얘기한 ‘여름징역’처럼 세상 도처에서 인간에 대한 증오가 읽혀지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지향도 없는 논란과 주장들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많은 사람이 고뇌에 빠져 있어요. 논란이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면 창조적 생산적 진통이겠으나 그런 것 같지도 않고요. 고통이란 괴로운 현재보다는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 옵니다. 이럴 때 좀 멀리 보는 시각, 긴 호흡이 필요하지요.”

 

-우리 사회가 통합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요.

 

“먼저 갈등의 이유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봉합하려는 노력에 앞서 무슨 병인가를 밝혀내는 작업이 선행돼야해요. 제가 보기엔 정파 간 입장차이나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보혁대립, 냉전논리 등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순구조를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지역갈등 같은 것은 일종의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죠. 은폐된 우리 사회 갈등구조의 뿌리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야 치유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신뢰집단이 형성돼야 합니다. 정치인도, 전경련도, 시민운동도, 노동자도 그 집단이 되기 어렵지요. 양심적 신뢰집단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는 이미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화이부동(和而不同)’ 개념이다. “논어 해설서에는 ‘군자는 화목하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똑같으면서도 화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제 해석은 좀 다릅니다. 화(和)는 공존의 철학입니다. 자기와 다른 것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죠. 반면 동(同)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철학입니다. 오늘날의 갈등은 스펙트럼의 양극단에서 상대를 극단으로 규정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저변에 ‘동’의 논리를 깔고 있습니다. 사실 근대사상의 기본 패러다임이 ‘동’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지요. 제국주의와 세계화의 논리가 대표적입니다. ‘동’의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는 한 비생산적 논의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는 한, ‘화’의 논리는 21세기가 추구해야 할 새 패러다임이기도 합니다.”

 

 

#감옥이 인생대학

 

사람은 익어야 따뜻해진다고 했던가. 누구에게나 세심하게 배려하는 그를, 혹자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같은 남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20년간 옥살이를 했다. 서울대 출신의 ‘잘 나가던’ 경제학도가 통혁당사건으로 덜컥 들어간 것이 68년. 27세 창창한 젊은이는 한때 사형수와 무기수를 거쳐 47세 중년이 되어서야 ‘바깥세상’으로 돌아왔다.

 

“제 인생은 감옥 전과 감옥, 감옥 후로 나눌 수 있어요. 감옥 전은 엄밀한 의미에서 배우고 시키는 것 하는, 심부름같은 삶이었습니다. 감옥은 혹독하게 우리 사회와 시대를 체험하는 시간이었지요. 감옥 후는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는 중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성장한 기간은 감옥인 셈이죠. 감옥에서 나와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니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봐요. 제게 지금 사는 아파트 대신 한옥집으로 옮기라고 권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무슨 도사 대하듯 하는 사람들을 접하면 참 난감합니다.”

 

신교수는 출옥 1년 만에 결혼식을 했다. 6살 연하인 부인은 당시 KBS 라디오 PD. 슬하엔 초등학교 5학년 짜리 아들을 두었다.

 

-오랜 감옥생활 끝의 결혼이니 이상하게들 볼만도 했겠지요.

 

“사실 결혼을 안하려 했는데 부모님 뜻이 워낙 완강했어요. 하지만 소개해준 분들이 내 사정도 아내의 사정도 잘 알고 계시던 분들이라…. 소개받고 한번 만나서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

 

그의 글씨솜씨와 한학에 대한 조예는 정평이 나있다. 연배로 보아선 다소 이례적인 일이다 싶어 그 내력이 궁금하던 터였다. 

 

“할아버님의 슬하에서 붓글씨를 익혔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금이나마 서도를 하게 된 것은 감옥에서 훌륭한 스승들을 만난 덕입니다. 교도소 당국에서 초빙했던 만당 성주표(晩堂 成周杓)선생, 정향 조병호(靜香 趙炳鎬)선생으로부터 옥중사사를 했고 한학자인 노촌 이구영(老村 李九榮)선생과 같은 방에서 지내는 행운이 주어져 동양고전을 익혔지요.”

 

-비뚤비뚤 서로 이웃해 의지한 글씨들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신묘하다고까지 하는 이른바 ‘신영복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겁니까.

 

“한문은 상형문자인데 비해 한글은 기호라서 삭막한 기호에 내용성을 갖게 하기가 어려워요. 한글은 궁체가 기본인데, 민중시를 궁체로 쓰면 내용과 형식이 괴리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민중시를 담을 글씨체 모색의 결과 그런 체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협동체’ ‘연대체’ ‘민체’ ‘어깨동무체’라고 부르더군요.”

서체가 탄생한 연유와도 맥이 닿는 일이지만 그가 기증하는 이 글씨들은 살림이 어려운 사회단체들의 소중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모든 기쁨은 사람에게서 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시려는지 궁금합니다.

 

“1988년 출옥하면서 품은 막연한 생각은 첫 10년은 부지런히 자료 수집하고 많이 체험하고 그 다음 10년은 책 한권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뭘 쓸지, 어떤 형식으로 쓸지는 아직 고민 중입니다.”

 

신교수 ‘글’ 받기 어렵다는 건 언론계에 널리 알려진 일. 그 이유를 물었다. “두드리는 곳마다 다 창문 열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정도 그릇이 못되니 문제지요.” 그러나 이어지는 얘기는 좀 달랐다. “요구하는 쪽 입장에 맞춰 쓰는 건 글이 아닙니다. 이러이러한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한 입장에서 주도권을 갖고 써야죠. 아니면 관심이 분산돼 어려워집니다. 대신 붓글씨를 청해오는 것은 가급적 들어드리곤 합니다.”

 

-옛날에 태어나셨으면 전형적인 선비이셨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집에다가 좀 일찍 퇴직하면 안되겠느냐고 했더니 한참 진지하게 따져보더군요. 그러더니 좀 더 다니라고 합디다. 늦게 교수가 돼 퇴직금도 별로 없고, 아이도 어려 아무래도 어렵겠다 판단했겠죠. 옛 선비들은 경제적 자립을 못했어도 강호를 벗삼아 청빈하게 살면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선친도 교장선생님이셨지요.

 

“학생들은 스스로 배웁니다. ‘가르치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싯귀가 생각납니다만, 저는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입니다.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 희망이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결국은 사람입니다. 서로를 일으켜세워 ‘더불어’ 살려는 사람.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듯 ‘더불어’ 체온을 느끼고 함께 사람다운 삶을 애써 살아가려는 사람들, 그것이 희망 아니겠습니까. 모든 기쁨은 사람에게서 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난마를 푸는 해법으론 너무 추상적인 얘기 아닐까요.

 

“10년 20년 쯤은 긴 역사 속에서 보자면 짧은 기간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지요. 하지만 제가 감옥에서 만난 목수는 기단부터 먼저 그리고 기둥, 지붕 순으로 그리더군요.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그게 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현실이고 삶이고 세상이라고 봅니다. 희망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바다를 닮았으면 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스스로를 낮춰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연대하고 확산하면서 희망을 가다듬고 키워나가야죠. 세상이 혼탁할수록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했으면 합니다.”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63년 서울대 상과대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년∼ 성공회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등 강의.

△1998년 출소 10년만에 사면복권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부장, 교육대학원 원장

△저서: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엽서(1993),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 1,2권(1998),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보판(1998)

△역서: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 사람아, 아! 사람아(1991), 루쉰전(1992), 중국역 대시가선집(1994)
 


동아일보(2001.9.28.) - 서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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