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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1998-08-01
미디어 월간중앙 이항복
출판 /저자와 茶 한잔 제 39호 1998.08.01


'더불어 숲' 펴낸 신영복 교수

‘더불어’는 삶의 방법이자 목표



이항복 月刊중앙 WIN 기자

“사형선고를 받으니 조금은 서운하더군요. 그러나 척박한 식민지에서 태어나 비극적 역사 속에서 자란 젊은 사회과학도로서 군사파쇼에 대항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도 일관성은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상주의적이었고 낭만성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기형으로 감형되자 젊은 시절의 실천적 자세를 그 긴 세월동안 무너뜨리지 않고 온존히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히려 암담해지더군요. ”

68년 통혁당사건으로 무기형을 받았으나 88년 가석방된 신영복(58·성공회대 사회과학원장) 교수. 지난 3월에야 비로소 사면 복권됐다. 그의 나이 올해 쉰여덟이니 생의 3분의1을 감옥에서 보낸 셈이다. 그런 그가 지난 96년 말부터 여덟차례에 걸쳐 23개국 47개 지역을 여행하며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부쳤던 ‘엽서’를 추려 2권의 책으로 냈다. 그리고 “더불어 숲”이라 이름붙였다.

‘더불어’는 그가 20년이라는 긴 수감생활의 초년에 어느 목수로부터 받은 화두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또다른 책에서 이 목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린다. 그러나 그 목수는 기단부터 먼저 그리고 다음에 기둥, 맨나중에서야 지붕을 그리더라는 것이다.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목수가 집을 그린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관념적 사고를 했던가를 느꼈죠. 학교와 책을 벗어나지 못한 창백한 지식인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 그래서 결국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착각이 먼저였습니다. 감옥생활 18년만에 바깥세상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수의를 입은 채 나가겠다고 우겼습니다. 감옥에서 저는 양화·양재·목수 등의 기술자가 돼 있었습니다. 수많은 실천가들 중 누구도 기본계급의 자질을 못갖췄다는 반성에서였죠. 어느 정도 기술을 익히자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결국 그는 수의를 입은 채 출소해 롯데호텔 커피숍에서 버젓이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사회적 인식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자질이나 사고의 기본 틀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변했는가.

“결코 변하지 않았더군요. 저는 여전히 ‘존재론적 사고’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낭패스러웠죠. 한 개인의 사고는 혼자의 힘으로는 개조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즉 ‘관계론적 관점’에서 자기를 개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더불어’는 철학의 패러다임이 존재론보다 관계론쪽으로 변화해야 하겠다는 바람을 담은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불어’란 방법론일 뿐 목표는 될 수 없지 않느냐는 지적도 합니다. 그러나 방법 자체도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목표는 이상적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나란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방법론과 함께….”

책에서 그는 ‘더불어’에 대해 이렇게 부연한다. ‘나무가 나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그가 그토록 간절히 지켜내고자 다짐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그가 보낸 엽서의 곳곳에 스며 있다. 그가 처음 떠난 여행지인 스페인의 작은 항구 우엘바에 한번 찾아보자.

우엘바는 5백여년 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향해 떠난 출발지다. 그러나 또한 우엘바는 식민주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으며 식민주의가 확대재생산한 세계화 논리의 출발지점이었다고 그는 엽서에 썼다.

“세계화는 인간의 논리가 아닌 자본의 논리에 불과합니다. 과잉축적된 자본이 투자시장을 찾아 스스로 확대재생산하는 것입니다. 결국 투기자본은 한 국민경제를 관리하에 두게 되고…. 국가와 자본이 연계해 공동체적 삶을 억압하는 것이 곧 세계화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지역 사람들은 아직도 공동체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본의 논리에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불어 손잡고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진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3년 전부터 전공인 경제학 강의를 포기했다.
“20년의 공백도 공백이지만 경제성장보다는 인간적 삶에 지적 고민이 다가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 무조건 좋은 철학은 아닙니다. 다운사이징해가는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특히 IMF는 자본주의도 깨질 수 있다는 귀중한 깨달음의 계기였습니다.”

그가 여행을 다닐 때는 IMF 사태가 발생하기 전이었다. 그는 이와 같은 사태를 예견하고 엽서를 통해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IMF라는 자본의 논리에 점령당한 상태다.

“IMF시대는 우리 모두에게 무심했던 삶의 방식에 대한 통렬한 깨달음의 시기가 돼야 할 것입니다. 삶을 지탱하는 마디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나무가 곧은 것은 군데군데 마디가 있어서입니다. 비록 삶은 어렵지만 양심이 척도가 되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노력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 엽서를 끝내고 옆에 ‘태산일출’을 그렸다. 그러나 그는 곧 그림 속의 해를 지웠다. 아침해를 그려넣는 일은 엽서를 받을 이에게 남겨둬야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수첩을 접으면서 그 천박함을 우려해 차마 질문하지 못했던 말을 혼자 중얼거리듯 슬쩍 던져보았다.

― 그런데 과연 다음 세기에는 ‘태산일출’에 다시 해를 그려넣을 수 있을까요?
“주역의 마지막 괘는 미완성의 괘입니다. 근대의 교조적 가치는 오로지 목표나 결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정에도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같은 의미에서 미완성이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회나 자연의 기본 틀은 바로 ‘미완성’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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