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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1-09-21
미디어 중앙일보
[위기의 지식사회에 묻는다]

지식의 혼돈


지식이 사회의 공공재(公共財)로서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 그 사회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지표가 없는 것과 같다. 상반되는 주장이 대립하는 경우에 그 시비를 가릴 준거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상황이 이와 다르지 않다. 공공적 준거는 없고 중립을 위장한 교묘한 편당(偏黨)만이 저마다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식인에 대한 불신을 낳고 다시 지식자체에 대한 회의로 굳어진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지식사회의 총체적 혼란이며 지적 공동화(空洞化)이다. 누구도 믿지 않고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한 마디로 지식인과 지식의 공공적 성격이 소멸함으로써 사회의 지적 준거가 없어진 상태이다. 그 빈자리에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들만이 무대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식이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압축적 인식이다.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담론과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이 사라진 사회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전망이 무너진 사회와 다름이 없다. 영혼이 없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지적 공동화의 원인으로서 다음과 같은 점이 반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지적 종속성이다. 조선조에서부터 일제식민지 치하를 거쳐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역사적으로 단 한번도 지식생산의 본산이 된 적이 없다. 외부의 지적 권위에 투항하여 지식수입에 의존하여 사회를 해석하고 경영하여 왔을 뿐이다. 아예 사회자체를 이식해왔다고 해야 옳다. 이식된 지식은 판이한 실천지반에서 폐기되지 않을 수 없고 불신되지 않을 수 없다. IMF이후 국가경영과 21세기 경영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는 오늘의 지적 공동화는 그러한 종속성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가 될 것이라는 예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전혀 지식사회가 아닌 까닭은 지식은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압축적 인식체계이어야 하며 사회와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고 정립하는 과제를 지향하여야 하며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체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지식의 사회적 존재형식이 상품이라 형태를 띤다는 사실이다. 지식과 지식인의 거처(居處)가 상품생산의 현장이며 지식이 상품의 형태로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거처 중에서 그나마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마저도 이제는 독립적이지 않다. 자본이 요구하는 지식을 생산하여야 하고 그러한 사람을 인적 자원(?)으로서 재생산하여야 한다. 이것은 지식이 자본논리에 예속되고 있는 구도이다. 이러한 구도는 지식이 자본지배구조 자체를 비판적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태이다. 소위 '신지식인' 개념이란 한마디로 돈을 버는 지식인이란 의미이다. 돈버는 지식이 지식의 사회적 존재형식인 것이다. 신지식인에 대한 요구는 이를테면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나가서 돈벌어 오라고 하는 부모와 다름이 없다. 팔리지 않는 상품과 마찬가지로 팔리지 않는 지식은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다.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이 설자리가 없다. 자본논리의 전일적 지배구조가 확립된 상황에서 자본논리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지식자체의 사회적 방기이다. 지식이란 사회과학의 역사가 증거하는 바와 같이 사회를 새로이 개혁하는 실천적 과제를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지배구조를 승인하고 기능지(技能知)와 방법지(方法知)라는 협소한 영역에 지식을 가두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차원으로 지식을 격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셋째, 지식이란 새로운 것이라는 인식 틀이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식을 외래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21세기는 정보화라는 제3의 물결이 급속하고 거대한 파고를 일으키며 다가온다는 인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 역시 지적 종속성의 전형적 형식이다. 모든 변화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생각은 모든 권력이 외부로부터 오는 식민지 사회의 의식형태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문제점은 2가지이다. 첫째 새로운 것은 우리의 현재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둘째 따라서 현재의 모든 것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사고이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종속성, 상품성과 무관하지 않다. 한 편으로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무장해제이며 또 한 편으로는 자본논리에 의한 해제주의이기 때문이다. 

넷째, 지식과 지식인이 복무할 신뢰집단이 없다는 것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신뢰집단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식은 실천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다음 실천의 지침이 된다. 따라서 모든 지식은 실천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지식인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인에게는 반드시 자기를 바칠 대상이 있어야 한다. 관찰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참여와 실천이 지식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회를 부단히 새롭게 바꾸어내는 근본적 담론이 지식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사회의 문제는 이러한 실천적 과제를 짐 질 수 있는 신뢰집단의 문제와 함께 논의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신뢰집단의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문제의 결론부분이 된다. 종속성, 상품성, 해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자유로운 거소(居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소는 사회조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념적 구심이며 공공적 공간이다. 역사의 전환기에는 언제나 이념적 구심으로서의 이러한 역사적 자유공간이 반드시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단기간에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 단계에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의 상한(上限)은 지식사회의 지적도(地籍圖)를 펼쳐 보이는 정도일 지도 모른다. 이해관계집단의 주장들로 가득 찬 무대를 보여주는 일이다. 그 백화제방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실상을 직접 대면하게 하는 일이다. 설령 그러한 대면을 통하여 비판담론, 대안담론에 관한 근본적 논의를 되살리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일단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은 언제나 모든 일의 전제가 된다. 그것이 지식의 총체적 혼란을 극복하고 지식 본연의 공공적 성격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할 지라도 적어도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거소에 대한 정직한 자각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2001. 9. 21.

  • 나의 대학시절-영남대 강연 - 녹색평론 1999년 9-10월 통권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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