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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6-09-05
미디어 경향신문 유인경편집위원

[유인경이만난사람]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2006 09/05뉴스메이커 690호
“노조건 정치인이건 아래로 내려가야죠”
정년퇴임 맞은 ‘감옥’과 ‘사색’의 지성인… 다투지 않고 낮게 흐르는 ‘물의 철학’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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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 형벌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말초감각에 의해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혐오에 있습니다.”

징그러울 만큼 무덥던 올 여름, 신영복 교수(성공회대)가 무기수로 수감생활 중 가족에게 보낸 편지글을 떠올리며 더위를 참았다는 이가 많다. 그동안 이 글이 실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 대부분 글과 책, 강의내용으로만 등장하던 신영복 교수가 요즘 갑자기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올해 초 서울대 입학식에서 타 대학교수로서는 처음으로 축사를 했고, 그가 쓴 시와 글씨로 이름을 내건 ‘처음처럼’ 소주가 대박을 터뜨린데다 올해 정년퇴직을 하며 마지막 공개강의도 했고 8월 25일에는 축제 같은 정년퇴임 콘서트를 열었다. ‘신출귀모’(신영복선생의 출판을 귀하게 생각하는 모임)가 만든 신영복 교수의 학문읽기와 추억감을 모은 ‘신영복 함께 읽기’란 책도 화제다.

그동안 신 교수의 책과 글을 통해 너무 감동을 받았지만 직접 만나기가 두려웠다. 그와 친분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거의 신앙 같은 존경심과 사랑을 보이고 이제는 ‘존재’ 자체만으로 많은 이에게 위안과 나침반이 되고 있지만 영화에서 너무 근사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던 배우를 실제로 보았을 때의 허망함, 영혼과 감성이 전혀 일치하지 않던 예술가와의 만남 등에서 느낀 실망감을 혹시 맛볼까 걱정도 됐다. ‘처음처럼’을 소주 이름으로 명명한 손혜원씨(크로스포인트 대표)는 “걱정마세요. 전 그분과 같은 시대를 산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만나보면 공감할 거예요”라고 했다.

그토록 모든 이가 숭배해 마지 않고 도인의 경지에 이른 평화로움을 지닌 글을 쓰는 분은 어떤 모습일까. 장동건, 정우성을 만날 때도 뛰지 않았는데 65세 영감(?)을 만나러 가는데 마구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성공회대 교수실로 찾아갔다.

감옥이 최고의 대학 신영복 교수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눈 후 ‘더우니까 다른 차보다는 그냥 찬 물을 드릴게요’라며 직접 컵에 물을 따라주었고 자신이 평소 앉는 자리는 역광이 들어 사진찍기 불편할 거라며 문쪽 자리로 옮겨 앉았다. ‘겸손’과 ‘배려’가 자동입력된 것 같았다. 동양철학자 조용헌씨는 ‘어떤 이는 오랜 감옥생활을 하면 폐인이 되지만 신영복 선생은 도인으로 변했다’고 했지만 신 교수는 세속을 초월한 도인이 아니라 생기 있는 신사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감옥생활에서는 나이를 먹지 않은 듯 40대로 보였다. 신영복 교수를 사랑하는 이들이 자청해서 마련한 각종 행사로 갑자기 분주해진 일상에 대해 물었다. “그저 강의나 책을 통해서만 사람들을 만났는데 요즘은 여러 일로 아주 어수선합니다. 그런데 저에 대해서 쓴 글을 보면서 제가 그동안 남들을 속이면서 인생을 살아왔나 반성도 했습니다. 저를 너무 미화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도 있지만 고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의 기억 속에 그렇게 존재한다면 그것도 옳을 수 있으니까요. 제가 학창시절 장난도 잘치고 응원단장도 했다고 써 있으니 독자들은 연대나 고대 응원단장을 떠올릴 테지만 전 체육대회 때 겨우 친구들 줄맞춰 세우기나 했거든요. 늘 ‘감옥’과 ‘사색’으로 상징되던 제가 ‘장난꾸러기 응원단장’이었다니 너무 대조적이어서 화제가 되나봅니다.”

신영복이란 이름 다음엔 자연스럽게 ‘감옥’이란 단어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그것이 어둡고 암울한, 분노와 저주에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지혜와 사색의 산실, 때론 축복과 은혜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뭘까. 그의 말처럼 그가 우리에게 사기친 걸까.

“제 65년의 삶은 온통 ‘학교생활’뿐입니다. 아버지가 학교 교장이셔서 사택에서 태어났고 학교 졸업 후 육사에서 강의를 하다가 감옥에 갔죠. 스물여덟 생일에 들어가 정확히 20년2개월 만에 나와 곧바로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하다 20여 년쯤 지나 이제 정년을 맞게 되었죠. 그런데 감옥이야말로 제게는 진정한 ‘대학’이었습니다. 그 대학에서 저는 완전한 인간개조를 체험했습니다.”

당시엔 교도소에서 한 달에 책 3권으로 제한된 독서밖에 허용되지 않아 한 권으로 두 달 정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읽은 동양고전. 인간관계에 관한 풍부한 담론을 담고 있는 ‘논어’는 사회와 인간에 대해 사고의 범위와 틀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고, ‘노자’와 ‘장자’는 인간의 문제를 자연과의 총체적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동양고전을 고리타분한 옛글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그의 ‘강의’는 책으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풍부한 독서보다 그의 생각이나 정서의 형성에 더 큰 계기를 제공한 것은 오히려 오랜 감옥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책으로 구성했던 사회론 대신 가장 소외된 밑바닥 인생을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을 통해, 사회에 숨겨진 모순구조를 통해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또 양재, 제화, 목공, 간판제작 등 여러 가지 기술을 익힌 그는 구체적인 노동을 통해 스스로 계급적 성분을 바꿨다.

“감옥에서 독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제 자신의 벽을 더 빨리 허물었어야 했습니다. 목수인 동료가 이야기 도중 집을 그리는데 주춧돌부터 그리더군요. 우리는 지붕부터 그리지만 지붕부터 만드는 집은 없지요. 관념적이고 창백한 지성보다 생생하고 진솔한 삶을 배운 거죠.”

타인을 이해한다고 해서 자신의 억울함과 암담한 현실조차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가 감옥에서 쓴 글을 ‘평화신문’에 최초로 공개했던 김정남씨는 ‘청정한 영혼, 수기로 다듬어진 가지런한 몸가짐, 조용한 달관, 절제된 감정들이 그의 편지글에서 담담하게 펼쳐져 그의 감옥살이가 차라리 부럽기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신 교수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글이니 제 마음속에서 첫 번째 자기검열을 거쳐 정제를 했고 또 검열관을 의식해 걸러내서 절제되어 보일 뿐 분노나 억울함이 완전히 없지는 않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리고 20여 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보니 서대문교도소도 없어지고 자신을 죄수로 만든 김형욱 전 정보부장, 박정희 전 대통령 등도 사망해서 주요인물과 배경이 다 사라져 누굴 원망할 이유도 없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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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배워야 할 것 신영복 교수는 양극화로 치닫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물의 철학’이라고 강조한다. 노자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매우 이롭게 하지만 서로 다투지 않는다’란 말을 강연에서 자주 말한다. 물은 산이 막히면 돌아서 가고 바위가 있으면 갈라져서 가고 웅덩이가 있으면 웅덩이를 다 채운 뒤에 가고 절벽이 있으면 용기있게 뛰어내릴 뿐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으로 물은 흐르고 흘러 제일 낮은 물이자 제일 큰 물인 바다를 만들어낸다.

“저는 노조건 정치인이건 아래로 내려가라고 말합니다. 현장에서 민중이나 대중의 삶과 소통해야 하는데 운동권들도 최근엔 현장을 떠나 중앙에 집결해 있어요. 서민과의 접촉 없이 중앙에 모여 무슨 일을 합니까. 낮은 곳에 내려와 그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386들이 비난을 받고 ‘시민단체에 시민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 겁니다.”

신 교수는 또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만드는 문제들 역시 그 이유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는 청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고 가야 할 동반자이지만 이향대립적 구조로 싸우기만 해서는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단다.

“가위바위보의 ‘보’처럼 중간자로서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과거엔 영웅이나 절대자에게 그런 신뢰와 기대를 했지만 이젠 신뢰할 만한 집단을 만들어야죠. 제가 ‘여럿이 함께’를 강조하니 방법론만 있고 목표가 없다고 하는데 여럿이 함께 가면 그 뒤로 길이 생깁니다. 서로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여럿이 함께 신뢰할 만한 집단을 만들어 사회를 맑고 평화롭게 만들어야죠.”

그의 동료교수인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는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생각을 다듬어온 사람,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보듬어온 사람”이라고 평했다. ‘최고의 지성’ ‘모든 이들이 닮고 싶어하는 거울’ 등으로 비유하고 그를 취재했던 기자조차 ‘그의 글에 경배하는 신도’라고 머리를 숙인다. 대중들에 의해 이토록 훌륭하고 근사하게 규정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그는 미소지으며 “때론 창살없는 감옥 같다. 차라리 감옥에서가 더 자연스럽고 자유로웠던 것 같기도 하다”고 ‘이 시대의 우상으로 살아가는 아픔’을 표현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최고의 지성이자 우상인 그 역시 고슴도치 아빠였다. 출소 후 늦게 결혼, 쉰이 가까운 나이에 친구들이 사준 보양탕을 먹은 힘(?)으로 얻은 늦둥이 이야기를 할 때는 자랑스러움과 사랑으로 얼굴이 환해졌다.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소통에는 어려움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세대 문화를 따라하고 늘 정보를 업데이트하기보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 전달해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정체성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니까요.”

‘정년퇴임식’이란 단어조차 생소한 오륙도·사오정 시대에 모두의 축복 속에 축제 같은 정년퇴임식을 하고 석좌교수로 활동할 신영복 교수. “곧 ‘대전대학교(대전교도소) 동창회도 열린다”는 그는 가장 저주받은 운명을 축복으로 바꾼 사람이다.

정치인들이 진작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 커다란 바다를 만드는 물의 철학을 배웠더라면, 신영복 교수의 ‘처음처럼’이란 시처럼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온 나라를 부패의 바다에 빠뜨리는 ‘바다이야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글/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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