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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진보의 열매 거두려면 씨앗부터 지켜야"


프레시안 2006.12.04




사회과학 서점 '그날이오면' 강연회에서 강조
"사람이 많이 와야 할 텐데…."

지난 1일 저녁, 서울대에서 만난 회사원 전성식 씨의 표정에 기대와 초조가 엇갈렸다. 전 씨가 서 있는 곳은 서울대 법학교육100주년기념관 강당. 이 자리에서 성공회대 신영복 석좌교수의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신 교수의 이날 강연은 운영난에 겪고 있는 서울대 앞의 사회과학 서점 '그날이오면'을 후원하는 이들이 마련한 것이다. 전 씨는 '그날이오면 서점 후원회' 운영위원 중 한 사람이다.

사회과학 서점, '그날이오면'의 위기

전 씨는 1996년 이 대학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원자핵공학과 96학번이라고 자신을 소개해 본 기억은 많지 않다. '총연극회 96학번'이라는 소개가 더 익숙했다.

전 씨의 대학생활은 동아리 활동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학교 안에서의 생활이 대부분 학생회관에 있는 동아리방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동아리 활동이 학교 안에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저녁이면 일과처럼 '녹두거리'라 불리던 학교 앞의 술집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사회과학 세미나를 하거나 동아리 선후배들과 어울렸다. "아마도 학교보다 녹두거리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을 거예요" 전 씨의 말이다.

전 씨는 요즘도 종종 녹두거리를 들른다. 전 씨처럼 "동아리에 뼈를 묻는" 후배들이 드물어진 것만큼이나 녹두거리의 풍경도 변했다. 좀 착잡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녹두거리에 있는 서점 '그날이오면'이 이제 227만 원의 월세도 낼 수 없게 됐다는 소식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기 어려웠다.

전 씨에게 '그날이오면'은 단지 책을 사기 위해서만 들르는 곳이 아니었다. 저녁에 녹두거리로 내려가면 무조건 '그날이오면'부터 들렀다. 그리고 서점 바깥벽 게시판에 붙어 있는 메모지들을 훑었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낯설던 당시, 서점 게시판에 붙어 있는 메모지는 각종 모임 장소를 알리는 요긴한 수단이었다. 다른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사회운동 단체들의 기관지나 팜플릿을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게다가 서점 안에는 책상과 의자도 비치돼 있었다. 근처를 지나는 이들이 아무 때나 편하게 책을 읽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날이오면'은 수동적으로 학생들을 기다리는 곳만이 아니었다. '그날이오면' 김동운 대표는 1998년 '그날에서 책읽기'라는 인문사회과학 서평 전문지를 창간해 무료로 배포했다. 창간 이유에 대해 김 대표는 서점 운영 수익을 학생들에게 환원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이 잡지가 갖는 의미는 그 이상이었다. 1~2달 간격으로 2년 동안 발행된 150여 쪽 분량의 이 잡지에 '그날이오면'을 아끼던 이들이 대거 편집진 혹은 필진으로 참여했다. 작은 서점에서 내는 잡지지만 내용은 알찼다. 매 호마다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을 다루거나 다시 읽어볼만한 잊혀진 책을 소개하는 등 참신한 기획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취업난에 휩쓸린 대학가, 사회과학은 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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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가에는 이런 종류의 서점이 흔했다. 건국대 근처의 '인서점', 고려대 근처의 '장백서점', 성균관대 앞의 '논장'과 '풀무질', 연세대 근처의 '오늘의 책', 전남대 근처의 '청년글방', 한국외대 근처의 '죽림글방', 한양대 앞의 '한마당'…등. 수업 교재나 수험서를 사기 위해 이들 서점을 찾는 경우는 드물었다. 학회나 동아리의 사회과학 세미나 교재를 사기 위해 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런 서점들은 '사회과학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은 학생운동의 동향을 주시하는 공안기관의 요시찰 대상이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사회과학 서점 대표들이 공안기관에 갑자기 끌려가는 일이 흔했다. 1997년에도 서울지역 사회과학 서점 대표들이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 서점들은 최근 10여 년 사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학생운동의 퇴조가 주요한 이유였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운동권 학생들만 사회과학 서점을 찾았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전 씨처럼 전공에 관계없이 사회과학 서적을 즐겨 읽는 학생들의 수가 상당했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이 대학가의 토론 문화를 주도했다. 이처럼 굳이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독서를 즐기는 대학생들의 존재는 사회과학 서점이 버틸 수 있는 소중한 기반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대학가에 몰아닥친 극심한 취업난은 이런 기반을 휩쓸어 갔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책, 취업 준비로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 아니면 잘 팔리지 않았다. 이런 변화 앞에서 일부 사회과학 서점은 영어 교재나 고시 수험서를 취급하는 등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은 진보의 미래 위한 씨앗"

'그날이오면'은 서울에서 원래의 성격을 유지한 채 남아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회과학 서점이다. 그리고 '그날이오면'마저도 누적된 적자로 존립의 위기를 맞았다.

지난 11월 중순, 전 씨는 '그날이오면' 김동운 대표로부터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그날이오면'을 아끼는 이들에게 김 대표는 '그날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했다. '그날 아저씨'의 전화는 지난 8월 결성된 '그날이 오면 서점 후원회' 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전 씨는 즉석에서 후원회 모임 참가를 약속했고, 곧 이어 운영위원까지 맡기로 했다. 대학 시절 강의실보다 '그날이오면'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여기는 전 씨에게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신영복 교수의 1일 강연은 '그날이 오면 서점 후원회'의 첫 대외 사업이다. 전 씨의 초조한 표정은 이날 강당에 모인 이들을 보며 조금씩 풀어졌다. 강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300여 명이 몰려 강당을 가득 메웠다.

이날 신 교수는 성공회대 교수 퇴임 강연에서도 이야기했던 '석과불식'(碩果不食, 씨가 있는 과실은 먹지 않는다)이라는 화두를 다시 꺼냈다. 하지만 대학 근처의 사회과학 서점을 살리기 위해 마련한 행사에서 듣는 '석과불식'의 뜻은 예사롭지 않았다. 신 교수는 "석과(碩果)는 먹지 않는 것(不食)이기도 하지만 함부로 먹히지 않는 것(不見食)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했다. 씨앗, 즉 새싹을 향한 가능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다. 먹히지 않고 땅에 떨어진 씨앗은 새싹으로 자라나 큰 나무가 된다.

그런데 다 자란 나무에게는 미래를 준비할 의무가 있다. 신 교수가 이어서 꺼낸 화두는 '엽낙분본(葉落糞本, 떨어진 낙엽이 뿌리를 거름한다)'이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낙엽을 떨어뜨린다. 그것은 다가오는 추위에 밀려난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나무의 근본인 뿌리를 위해 거름을 마련하는 행위다.

신 교수가 씨앗과 나무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회과학 서점과 대학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회인식을 제공하는 사회과학 서점은 미래의 진보를 위한 씨앗인 동시에 대학의 뿌리라는 것. 따라서 "진보의 열매와 나무를 기대한다면 씨앗과 뿌리부터 소중히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 교수가 이처럼 대학가의 사회과학 서점을 아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신 교수는 이날 강연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사회에서 잘 팔리는 것들을 주워 담기보다 그릇 자체를 키울 것"을 당부했다. 대학의 역할은 학생들을 시장에 내놓을 상품으로 키워내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직하게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런 힘을 키우게끔 하는 것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역할이다. 신 교수가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그날이오면' 살리기에 나선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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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이 끝난 뒤, 신 교수 저서의 애독자들이 자신의 책에 신 교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프레시안  

신영복 "왜소한 진보에 실망할 필요 없다"

신 교수는 사회과학 서점의 위기에서 학생운동의 퇴락을 읽어내는 이들, 그래서 진보의 미래에 대해 낙담한 이들을 위해서도 한마디 했다.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는 매우 견고하다는 것. 따라서 조급한 태도는 금물이며 긴 호흡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간의 감옥생활을 마친 뒤, 1988년 사회에 나왔을 때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현장에서 싸웠던 이들 중 상당수가 그해 겨울 대선을 거치며 좌절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 하고 조급한 기대를 걸었던 이들이 겪었던 성급한 실망이라고 지적했다. 또 1990년대 초반 진보정당 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지적을 했다. 지역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 하고 상층부 활동에 전념하던 이들이 가벼운 패배도 견디지 못 하고 금세 돌아섰다는 것이다.

대학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진보적 역량이 위축돼가는 현실에 대해 신 교수는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이야기했던 '진지전'의 개념을 소개하며 "진보적 역량을 담을 진지(陣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지전'은 발빠르게 정치권력을 틀어쥐는 '기동전'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시민들의 '동의에 의한 지배'가 관철되는 시민사회에 내에서 지적, 문화적 실천을 통해 진보적 헤게모니를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진지가 작아 보여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며 "특정한 시기에는 작은 진지가 큰 힘을 발휘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그날이오면' 서점이 한국사회의 진보를 향한 작지만 소중한 진지가 되길 바란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비록 '그날이오면' 서점 후원회의 초대로 진행된 것이었지만 신 교수의 이날 강연은 단지 특정 서점을 살리자는 주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이날 강연장에는 다양한 이들이 참석했다. 평소 '그날이오면'을 드나들던 학생들 외에도 지역 주민들, 그리고 신 교수의 책과 강연을 아끼는 이들이 두루 모였다. 강연이 끝난 뒤, 이들은 '그날이오면' 근처의 호프집에서 늦게까지 맥주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눴다.

<프레시안 - 성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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