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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5-04-24
미디어 경향신문_임아영기자

10년만에 신간 ‘담론’ 출간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시대 넘는 ‘탈 문맥’ 필요… 지식인, 비판·저항·대안담론 생산해야”


 정리 |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2015-04-24



이 시대의 대표적 지성인인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74)가 명저 <강의> 이후 10년 만에 신간 <담론>(돌베개)을 출간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20년20일 동안 복역한 신 교수는 출소 이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 스테디 셀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자기 성찰, 역사와 사회 현실, 세계 인식에 관한 깊은 사유로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전했다.

< 담론>은 올해부터 강의를 그만둔 그가 2014년 하반기 강의 녹취록, 강의 노트를 저본으로 한 책이다. <시경> <주역> <논어> <맹자> 등 동양고전들을 현재의 맥락, 오늘날의 과제와 연결시켜 자신만의 독해법으로 현대 사회를 읽어내는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 스스로 “대학 시절”이라 부르는 20년의 수형생활 중 보고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과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구성돼 있다. 봄 햇살이 빛난 23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택 인근 찻집에서 도재기 문화부장, 임아영 기자가 신 교수를 만났다.




10년 만에 신간 <담론>을 출간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사회 변화의 역량 축적을 위해 작은 숲들의 소통과 연대를 강조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강단에 서지 못하는 미안함에
강의녹취로 구성한 마지막 강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성찰 담아


▲ 동양고전을 통해 생각을 열고
인문학 공부도 교양을 넘어서야


- 10년 만의 신간입니다. 선생님의 삶과 철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담긴 ‘사색’, <강의>의 동양고전 독법인 ‘강의’가 마침내 합쳐진 ‘담론’이라 평했습니다. 부제가 ‘마지막 강의’라는 것도 눈에 띕니다.

“이번 책은 전반부에 <강의>에서 내놓았던 국가와 사회에 관한 담론, 후반부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젊은 학생 등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쪽은 세계에 대한 인식, 다른 쪽은 인간에 대한 성찰로 꾸려졌습니다. 이 두 가지가 인문학의 뼈대인데, 서로 넘나들기도 하죠. <담론>이 강의를 대신해주길 바랍니다. 사유의 유연성을 강조했습니다.”

- <시경> <초사>를 다룬 부분에서는 이성·추상력인 문사철(文史哲)보다 감성·상상력의 시서화악(詩書畵樂)을 말씀하셨는데, 사유의 유연성을 의미합니까.

“그저 교양예술이라고 인식되는 시서화는 사실 문사철이 담지 못하는 풍부한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문사철과 시서화를 같은 세계인식의 틀로 보는 게 필요합니다. 베토벤은 교향곡 5번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음악으로 세계를 이해·소통하는 데 많이 서툽니다. 그래서 ‘운명’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음악의 무한한 세계가 왜소한 개념으로 축소됩니다. 잭슨 플록의 5번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문사철 서사방식에 과도하게 갇힌 겁니다. 우리 시대의 문맥에 갇혀 있는 것을 뛰어넘는 탈문맥이 필요합니다. 후기근대사회의 비인간적인 존재론적 논리가 지속가능한 것인가까지 사유하자는 뜻입니다.”

- <논어>에서 화(和)는 관용·공존의 논리, 동(同)은 지배와 패권·흡수합병의 논리로 읽으셨습니다. <주역>에서는 후기근대사회의 과제로 서구사상의 핵심인 존재론에서 동양사상의 뼈대인 관계론으로의 전환을 강조했습니다.

“ ‘동’의 논리는 부단히 독점하고 패권하는 논리입니다. 근대사회는 개별적 존재를 강화하는 이런 논리로 전개돼 왔죠. 이는 자기 증식하는 자본의 논리이기도 합니다. ‘화’는 존재와 존재가 부딪칠 경우 다양성·차이를 존중하는 논리죠. 근대 사회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윤리입니다. 서구사상은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존재론 논리이지만 동양사상은 개별적 존재만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성을 강조합니다. 동의 논리가 과연 지속가능할까요. 지속가능이 어렵다는 징표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납니다. 이제는 근대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지속가능한 것인지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샤를리 에브도의 톨레랑스는 진정한 톨레랑스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 이슬람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테러는 물론 나쁘지만 테러는 약자들의 전쟁이고, 전쟁은 강자들의 테러죠. 테러보다 더 나쁜 게 전쟁입니다. 차이와 다양성은 공존에 그칠 게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어야 합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란 관념도 ‘동’의 논리라 비판하셨습니다.

“통일을 대박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경제주의적 발상입니다. 사실 통일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 과정에서 우리의 주체성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결국 사드는 배치하게 될 것이고 한·일 정상회담도 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그만큼 국가적 장래를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결정 내릴 수 있는 자주성이 없지 않습니까.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동북아의 정치질서를 결정하고 남과 북이 발언권을 쥐는 것은 작습니다. 한반도의 오래된 민족사적 과제죠. 문제는 지도자, 정치인들이 역사적 의식이 없고 민족사적 관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는 뿌리를 잘 펴는 정본(政本)입니다. 그 뿌리는 사람입니다. 즉, 사람을 인간답게 키워내고 그들이 지닌 창의성·인간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 실천이 정치인데 오히려 정권 획득과 재생산이 전부라고 아는 천민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 이 시대 동양고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고전 전공자들은 당대 사회의 문제의식을 통해 읽어내지 않습니다. 역사나 고전을 그런 관점에서 읽는 것은 잘못된 독법이라고 봅니다. 저는 사회적 관점에서 우리 시대가 가진 문제의식으로 보려고 했습니다. <강의>가 오래 읽히는 것은 그런 부분 때문이라고 봅니다. 동양고전 공부는 결국 시대 현실에 대한 관심, 당대 과제에 대한 성찰과 연관돼야 합니다. 그렇게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생각을 열어나가자는 겁니다.”

-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역사와의 관계를 강조하십니다. 냉담한 관계, 무관심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관계 회복 방안은 없을까요.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IMF, 2008년 금융위기 등 위기에 처했지만 그 역사적 계기를 성찰로까지 이끌지 못했습니다. 미봉책에만 급급했지요. 인간의 삶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고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사고가 얕습니다. 변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깊이 있게 천착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것이 커져야 합니다. 최근 인문학적 관심이 고조되고 우리 삶에 대한 성찰성이 사회 일각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곳곳에 그런 작은 숲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작은 숲들끼리 소통의 연대를 만들어간다면 사회적 변화의 역량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 한쪽에선 인문학의 위기, 다른 쪽에선 다양한 인문학 강좌가 열립니다. 요즘 인문학의 풍토를 어떻게 보십니까.

“학교가 경쟁에 내몰리니까 인문학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 수요가 대학 바깥에 모이고 있습니다. 인문학마저 상품이 되는 부작용도 없지는 않지만, 인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대학은 100년 이후를 내다보는 공간이어야 해요. 당장의 문제보다 10~20년 후의 우리 삶을 염두에 두는 대안담론의 생산지, 현재 지배하는 주류담론에 대한 저항담론의 산지가 되어야 합니다. 인문학도 예술에 대한 교양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사회, 내 삶에 대한 통절한 성찰성이 바탕에 깔려 있고 그를 뛰어넘는 전망성이 없으면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의 일부를 착취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적 파탄에서 오는 인문학적 갈급함, 이것이 우리 사회를 잘 설명하는 하나의 지표라 봅니다.”

- 지행합일, 톨레랑스 넘어서기 등 실천을 강조합니다. 지식인의 역할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지식인은 특정 계급보다 계급을 선택하는 계급입니다. 지식인이 식민·혁명적 상황이 아니면 사회적 실천선상에 바로 뛰어드는 것은 고유의 역할이 아니라고 봅니다. 계급을 뛰어넘어 모든 역량을 현장화하는 것은 지식인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비판담론, 저항담론, 대안담론 생산에 충실해야 하고, 그 담론들을 실천할 사회적 주체들을 키워내는 것이 지식인들이 할 일입니다. 모든 사회변화 과정은 사상투쟁에서 사상의 실천적 계급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일어났습니다.”

- ‘삼포세대’ ‘오포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젊은이들이 힘들어 합니다. 그들에게 희망의 언어를 줄 수 있을까요.

“젊은 친구들에게 한마디로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젊은 시절 고유의 이상을 잃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청년시절만큼 소중한 시절이 없습니다. 꿈과 이상에 불타는 시절, 이것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작은 숲을 만들기 바랍니다. 그래서 연대하고, 서로가 서로의 젊은 꿈과 이상을 지키고 약속하는 사회적 실천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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