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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1-21
미디어 국민일보_유장춘

[바이블시론-유장춘] 길을 가다, 길이 되다

늘 낮은 곳에서 살았던 신영복 선생… 사람되기를 넘어 인간되기 중시해



  “시인은 시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소위 현대시의 거목으로 불리는 한 시인이 죽었을 때 당시 문화부 장관이란 인물이 조사로 읊조린 말이다. 벌써 15년이 지났는데도 내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생애에 오점을 남기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는 일제의 폭력에 시달리는 이 민족의 젊은이들에게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시를 쓰고 연설을 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었던 선우휘는 학도병 동원을 지원하는 그의 연설을 학생시절에 들었는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횡설수설한 이광수의 앞선 연설과 비교해 이 시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논리적 설득력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 글을 30여년 전에 읽었지만 내 뇌리에 새겨져 있는 것은 그것이 내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민족을 배반하고 권력에 아첨하며 민중을 우롱해도 시만 잘 쓰면 존경받고 영웅이 되는구나! 그렇다면 학생을 학대하는 교수라도 강의와 연구에 흠이 없으면 여전히 존경받아야 할 것이고, 성도를 추행한 목사라도 설교와 목회에 성공하면 진정한 목사로 추앙받아야 할 것이며, 인권을 무시하고 거짓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가라도 표를 많이 얻기만 하면 지도자로 따라야 할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그가 노래했던 그 국화꽃처럼 고상하고 순수하고 향기로운 삶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시가 아름답듯이 그 삶이 아름답고 선택한 인생의 길이 옳아야 진정한 시인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너무나 사랑했던 시인, 사물을 온몸에 저리도록 아름답게 느끼고 그 느낌을 구슬처럼 영롱한 모국어로 표현할 수 있었던 훌륭한 시인이 시대적·민족적 현실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 민족의 희망이요 백성의 정서적 보금자리로서 자리매김한 자신의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애석하며, 폭력은 일시적이지만 정의는 영원하다는, 그래서 악한 강함보다는 선한 약함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몹시 통탄할 만한 것이었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어떤 시인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지난 15일 세상을 떠난 신영복 선생의 삶과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슬이 퍼렇던 독재시대에 누명을 쓰고 억울한 무기수가 되어 20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는 감옥을 대학으로 삼아 공부와 수련의 기간으로 승화시켰다. 거기서 깨우친 아름다운 사상과 명징한 철학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이 시대의 사표가 됐다.

신영복은 시대의 모순과 폭력을 온몸으로 만났지만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보듬어 아름다운 관계의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입장의 동일화가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말했던 그는 좁은 감옥에서 죄수들과 하나 되어 ‘더불어 숲’을 이루었고, 출옥 후 대학에서는 젊은이들과 하나 되어 ‘나의 승리’에서 ‘우리의 승리’를 추구했다. 그것을 그는 사람되기를 넘어서 인간되기라고 설명했다. 그의 글과 글씨와 그림이 그 뜻과 정신을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늘 낮은 곳에서 억울하게 고통 받는 이들과 ‘아름다운 동행’을 하며 남은 생애를 소진했다.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 합니다. 사상(cool head)이 애정(warm heart)으로 성숙하기까지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이며, 현장이며, 숲입니다.” 그의 어록에 남겨진 말이다. 성경은 말한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그가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는 길을 갔다. 그리고 이제 길이 되었다. 그 길을 살피고 기억하며 따라가는 것은 우리 남겨진 후배들의 몫이다.


유장춘(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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