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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

     인디언의 말이다. 11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은 달이 11월이다. 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이런 말, 저런 말을 요렇게 붙였다가 조렇게 붙였다가 이렇게 뗐다가 저렇게 뗐다가 한다. 그저 복사로 긁어다가 모두 다 붙여넣기도 하고 오려두기에서 조금만 가져다 붙여넣기도 한다. 이런 놀이도 싫증이 나면 끝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깽판을 놓고 싶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다 사라지지 않은 11월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스승의 역할을 맡았던 모리 슈워츠는 교수는 1995년 11월 4일 숨을 거두었다. 그를 인터뷰한 제자는 그 일을 기록함으로써 스승의 삶이 모두 다 사라지지 않도록 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120만부가 나갔다.

루게릭 병을 앓으며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한 저명한 사회학 교수가 있다. 보스턴의 어느 교외 지역, 그는 히비스커스 화분이 있는 서재에 앉아 숨을 들이쉬고 다음 내쉴 때까지 숫자를 헤아리면서 자신의 죽음이 어디까지 가까워졌는지를 가늠해 본다. 그리고 디트로이트의 한 신문사에서는 대학 시절 그의 수업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강하며 열정적인 꿈을 꾸던 제자가 있다. 그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때문에 졸업식 이후에도 계속 연락하겠다던 스승과의 약속을 저버린 채 일에 끌려 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우연히 텔레비전을 통해 삶을 끝마쳐 가는 옛 은사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는 아마 지금도 사회적 성공과 야망을 향해 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스승이 지닌 능력의 비밀은 인간을 변모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미국의 시인인 에머슨의 이 말은 모리 교수가 가진 스승으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설명한다. 위대한 스승이란 인생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 상대를 변화하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리 교수는 인생의 스승으로서, 죽음 후에도 많은 사람의 삶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이 삶에서 놓치고 있는 많은 것들을 되찾아 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면서 말이다.    [알라딘 제공]

11월이 저물어가는 날, 밤이 깊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 시간, 모리가 마지막 눈을 감기 전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그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따라가 본다.

모리는 1994년 루게릭 병을 진단받고 병상에 눕게 되었다.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라는 이병은 몸의 근육들이 서서히 굳어가다가 마침내 호흡을 할 수 없게 되면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불치병이다. 모리는 근육 위축이 다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건강할 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목에 수건을 두르고 폭풍처럼 춤을 추던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는 모리가 춤을 그만두는 날이 곧 죽는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상황이 점점 더 나빠져 팔까지 굳어와 결국 그는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예전에 춤출 때 듣던 음악이 들리면 지금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높이 치솟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 생각은 그를 위로해주었다. 그는 비록 지금 춤을 출 수는 없지만 여전히 춤곡을 즐겨듣는다고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그는 앵커맨 테드 카펠과 세 번에 걸친 인터뷰를 했고 이것이 <나이트 라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다. 그는 목숨이 끝나가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죽음을 드러냄으로써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온갖 슬픔과 고통을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화의 소재로 내놓았다. 평생을 배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사람답게 마지막 순간까지 스승의 직분을 다했다.

그는 운다. 부쩍 자주 운다. 눈물을 조금 흘리다가 그만둘 때도 있고 펑펑 울 때도 있다. 때론 울려다가 말 때도 있다. 혼자 있을 때도 울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운다. 아직 때가 아닌데 죽을 수밖에 없어서 울고, 두고 떠나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울고,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는 듯한 아쉬움 때문에 울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야한다는 아픔 때문에 운다. 그러나 슬픔은 한번 쏟아낸다고 해서 결코 끝나는 법이 없다. 그러니 울고 싶고 슬퍼하고 싶고 흐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우는 것이 당연하다.

유태인들은 슬픈 일을 당하면 전통에 따라 옷을 찢어서 슬픔과 상실감을 표현한다. 옷을 찢는 것은 심장을 찢는 것을 상징하는 행위다.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슬픔을 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슬플 때는 한껏 슬퍼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슬픔과 상실감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한참을 울고 난 다음에는 이렇게 깊숙한 곳에 있던 감정을 표현했다는 사실과 아직은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위안을 가져다 준다.

모리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나면 하루를 보내기가 훨씬 더 쉬워집니다.”    

11월은 아직 끝나지 않은 달이다. 모든 슬픔이 다 사라진 것이 아닌 달이다. 그러니 어디 한번 실컷 슬퍼해 보자. 슬픔의 끝에 무엇이 달려있는지, 무엇이 딸려 나오는지 어디 한번 진한 슬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죽음 앞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죽음을 보여준 11월의 모리를 따라 한번 실컷 울어보자. 아직 끝나지 않은 11월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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