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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사실 부친의 양보를 얻으려 했던건데, 모친께서 흔쾌히 양보해주셔서 산행에 갈 수 있었습니다. 산에 가는거라는 말에... 운동량이 부족한 철부지 장남을 위해 외출을 취소해준 모친께 심심한 감사를 전합니다.

저번 송년모임도 그랬지만, 이번 모임도 참석이 망설여졌습니다.
대중과 함께 하고 싶으면서도 아직도 대중과 함께 하는데 두려움이 있기에.
어제 저녁... 그 두려움을 걷어내려고 밤중에 동네를 몇 바퀴 돌았습니다.
역시 걸으니 기분이 나아지더군요.

남녀노소가 함께 한 산행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날씨는 햇볕 비추는 곳은 따뜻하고, 안비추는 곳은 꽤 추웠습니다.
그래서, 쓰고간 털모자를 계속 썼다 벗었다 했습니다.

개미마을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함께 나눠먹을 귤과 쵸코바를 우연찮게 제가 베낭에 넣고 가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준비한 것도 아닌데도 꼭 제가 준비해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린애처럼 으쓱해지기도 했습니다.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이 참 인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도 참 아늑하고 푸근해 보였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앞의 시야가 탁 트이며 산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집과 건물들이 쫙 펼쳐집니다.
인왕산은 오늘이 초행이었습니다.
'서울에 이런 모습도 아직 남아 있네.'

걷는 내내 인왕산은 계속해서 저에게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서울의 모습을 찬찬히 오버랩시키며 보여주었습니다. 2000년대에 바라보는 60,70,80년대의 모습들.....
차츰 눈에 띄기 시작하는 저 멀리의 높은 빌딩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산을 내려와 생각해보니 인왕산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너무나 지쳐있는 모습이 역력
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산에서 내려오면 산의 기운을 받게 되는데 오늘은 그냥 높은 곳에 올라갔다 온 것 이상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사람보다 더 기운이 빠져버린 산.
그렇게 쇠잔해진 몸으로 왜 애써 많은 걸 보여주려 했던 건지.....

거의 다 내려오니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었습니다.
<서시>.

핸드폰으로 한 번에 서시를 담으려 했으나 강렬한 햇빛이 그걸 허락치 않았습니다.
물론 제 핸드폰도 그럴만한 역량이 되지 않았고요.

고민하다가 가까이 다가가서 계속 찍었습니다. 지금 세어보니 30장의 사진 안에 서시를 모두 담았네요.

지금 다시 사진으로 서시를 읽어보았습니다.
왠지 서시에 담긴 정서는 사람의 정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오늘 만난 인왕산의 마음이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인왕산이 기운을 차리기를 바랍니다.
아! 이런 맆서비스보다는 선물을 하나 주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어진 왕이라는 이름의 산, 인왕산.
그 이름을 떼어내고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더불어 숲  ^ ㅡ ^


p.s 산에서 내려와 떡국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모르는 분들과 함께 앉아서 먹는데도 어색하지 않고 참 오래 남을 귀한 말씀들도 들었습니다.
오늘 산행, 최고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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