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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12.01.03 15:16

세숫대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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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숫대야

  그동안 포근했던 날씨가 12월로 접어 들어 오늘은 제법 쌀쌀한 일요일 아침이다. 나는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앞 베란다에 걸어 놓았던 작업복을 갈아 입고 도시락을 챙겨 밭으로 갈 채비를 한다.

  작년 이맘때 봉화에 사는 귀농선배의 집을 방문했을 때 화장실에 요즘 흔히 있는 도기 세면대는 보이질 않고 가운데 아담하게 놓여 있던 세숫대야를 본 이후로 나는 줄곧 ‘나도 세숫대야를 써 봐야지’하고 벼뤄 오다 오늘 드디어 그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사실 세숫대야에 대한 추억은 내 고향 하동의 두메산골 마을에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집에서 세숫대야를 썼고 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이발소에서도 타일을 붙여 만든 시멘트 받침대 위에 세숫대야를 놓고 썼다. 이발사 아저씨는 이발 후 우리의 머리를 감겨 주고 나서 물을 앞 마당에 훽 뿌렸고 그 물이 거품과 함께 흙마당에 떨어질 때 들리던 그 소리가 아직도 내 기억 저 한 구석에는 오롯이 남아 있다.

  짐을 챙겨 집을 나서서 영남루 앞 길가에 있는 만광상회에 들러 세숫대야를 하나 달라고 했더니 가게 주인아줌마는 대뜸 “요즘은 별로 찾는 사람이 없는 세숫대야를 쓰시게요?”하신다. “네, 집에서 세수할 때 쓰면 더 편할거 같아서요. 스텐으로 제일 좋은거 하나 주세요”하니 “젊은 양반이 주택에 사시나...”라며 입가에 웃음을 살짝 머금으며 말끝을 흐리신다. 아주머니는 가게 구석에서 세숫대야를 하나 꺼내어 먼지를 털어서 내놓으셨고 나는 세숫대야 값으로 13,000원을 드리고 가져 오면서 비닐이 쌓인 세숫대야를 손으로 한 번 쓰윽 쓰다듬어 보니 느낌이 약간은 차가우면서도 곡선의 부드러움이 함께 느껴져 싫지 않다.

  세숫대야를 차에 싣고 다원(茶園)에 있는 공방에 도착하자마자 공구를 꺼내어 지난 주말에 작업하면서 남겨 둔 짜투리 나무를 골라 대패질을 시작하였다. 먼저 둥근 세숫대야 몸통이 들어 가도록 사각틀을 만들고 나서 이 사각틀에다 네 개의 다리를 붙여 주면 모든 작업이 끝나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지만 오늘 작업의 핵심은 다리의 높이를 얼마로 정하느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리 높이를 한 자 반(45cm) 정도로 생각했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솔이가 같이 쓸 요량이면 그 높이는 너무 높을 거 같아 몇 번에 걸쳐 허리를 숙여 가며 머리감는 자세를 해 보고 나서야 한 자(30cm) 정도가 적당하다는 얼치기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솔이를 데리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오늘은 세숫대야 받침대 말고도 솔이방에 옷걸이도 만들어야 해서 일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
  각도절단톱으로 자른 다리 네 개를 나사못으로 연결하고 그 나사못들이 보이지 않게 나무심을 끼운 후에 사포작업을 마무리 하여 마지막으로 니스칠을 두 번 했더니 그럴듯한 받침대가 완성되었다. 일단 니스칠이 잘 마르도록 받침대는 한 켠으로 밀쳐 놓고 밥때가 되었다 싶어 도시락을 꺼내어 작업대 위에 놓고 늦은 점심밥을 먹는다.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잠깐의 휴식시간 동안에 내 몸과 마음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고 있어 온 몸에는 톱밥과 먼지로 뒤범벅이 되어 있지만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

  늦은오후 해가 거의 저물어서야 받침대와 옷걸이를 챙겨서 집에 도착하자 마자 솔이에게 “솔아! 아빠가 세숫대야 가져 왔는데 크기가 잘 맞나 한 번 봐 줄래?”했더니 옆에 있던 아내가 먼저 대답을 한다. “높이가 너무 낮지 않아?” “아니야, 솔이도 같이 쓰려면 너무 높으면 안되지~”하니 옆에 있던 솔이가 “아빠, 제가 지금 세수를 한 번 해 볼게요”하며 화장실 안에 있던 들통에다 물을 받아 바가지로 물을 떠 세숫대야에 담아 세수를 해 보고 나서는 “아빠~딱 좋아요!”하니 나는 한 마디에 오늘 하루의 모든 피로가 다 씻겨지는 기분이다.

  집에서 현대식 세면대를 대신하여 옛날 세숫대야를 사용해 보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물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인데, 세수하고 나서 그 물로 발을 씻고 다시 그 물을 가지고 화장실 바닥청소까지 하고 나면 내 마음까지 깔끔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이와는 달리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세면대는 수도꼭지를 틀어 세수를 할 때, 물이 수도꼭지 끝을 떠나서 세면대에 떨어질 때까지의 그 짧은 순간 동안 내 손에 담긴 물만 쓰이게 되고 그렇지 않은 더 많은 물은 곧바로 버려지게 되는 꼴이다. 그래서 어쩌면 내 손에 담겨지지 않은 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밀양강(密陽江)에서 교동정수장을 거쳐 수 km에 달하는 캄캄한 땅속 배관을 거쳐 우리집 화장실까지 힘들게 왔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곧바로 버려진다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분명 ‘물의 차별’이다.
  이에 비하면 세숫대야에 담긴 물은 모든 물이 아무 차별 없이 둥근 그릇 속에 어우러져 우리 가족의 얼굴과 발을 씻겨 주고 나서 다시 허드렛물로 바닥 청소까지 하여 제 역할을 다한 후 다시 강으로 돌아가게 되니 세숫대야야 말로 세상에 ‘착한 물’을 만들어 주는 그릇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일찍이 변산공동체의 윤구병 선생님은 그곳 공동체 학교의 아이들에게 첫 번째 생활수칙으로 내 걸었던 것이 바로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설거지나 세수를 하지 말자’고 했던 게 아닐까 혼자만의 생각을 해 본다.

  참 좋다 ! 화장실에 있는 저 ‘착한세숫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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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년 3월 부터 하고 있는 너른마당 '글쓰기 소모임'에서 매 월 글 하나를 적어
이승희 선생님을 모시고 글쓰기를 배워가고 있는 중에 지난 12월 30일 모임에서
제가 발표한 글을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아직은 서투른 걸음마를 하는 아이 같은 글이지만 앞으로 매월 1편 정도는 우리 숲에서 나무님들과 함께 나누면서 조금씩 배워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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