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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12.02.15 23:46

아들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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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1

퇴행성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아픈 나를 위해 설거지를 하던 아들이 말한다.
“엄마 나 없음 이제 설거지 해줄 사람 없어서 어떻게 하냐?”
개학을 하면 학교가 있는 인천으로 가야하는 아들의 걱정이다.
“글쎄다……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해줘.”
“나도 그러고 싶은데 과제가 많거나 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오기 힘들지도 몰라서 그렇지.”
“글쎄, 어떻게 되겠지. 설거지 못해 밥 굶고 있진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넌 공부나 해.”
“아저씨에게 해 달라고 해.”
“야! 바랄 것을 바래라. 아저씨는 받고만 자라서 그런 거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아.”
“아빠가 돌아가셔서 엄마가 좀 편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러지도 못하네……”
딸년보다 사근사근한 아들의 살뜰한 걱정이다.
“엄마 팔자지 뭐.  그래도 아빠는 생활비를 주니까 죽을 수는 없고 먹고 살려니 할 수 없이 참았지. 그래도 주말만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하고 있는 거지. 아저씨마저 없었으면 포크레인 기사, 트렉터 기사, 심마니, 택시 운전수, 동네 영감들이, 아주머니 밤이 외롭지 않수? 하는 말은 하지 않으니……이런 곳에 살려면  울타리는 있어야해. ”
“여자들 정말 무섭다……계산적이네."
“뭐가 무서워!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너도 직업 없으면 결혼도 하지 못하겠지만 돈 못 벌면 밥도 못 얻어먹어!”
“그러네……에이, 그래도 난 괜찮아! 엄마가 밥 하는 것, 반찬 하는 것, 설거지 하는 것 다 알려 줬잖아.”
“그래 먼 훗날을 위해 다 알려 준 거야. 적어도 여자가 부부싸움 하고 밥 안 차려주며 널 괴롭히진 못하지.”
“엄마는 너무 현명한 것 같아.”
“그래, 네가 이제야 엄마의 현명함을 인정하는구나.”
"그런데 아저씨는 엄마 사랑한다고 하잖아.”
"사랑? 사랑은 개뿔! 말로만 그러는 거야! 아저씨 이상형은 애정 만만세에 나오는 이보영 같은 애야.
이보영이 젊다는 것 외엔 뭐가 이쁘니? 솔직히 이보영보다 엄마가 훨씬 낫지."
"그건 그래. 그런데 엄마 오늘 약 먹었어?"
"그래 이 녀석아! 물론 약 먹었다!"
바보 엄마와 바보 아들이 웃는다.


풍경 2

아침부터 문이 떨어져 나간 서랍을 고치느라 낑낑대다 혼자 중얼거린다.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나에겐 공대를 나와 모든 것을 고치고 기계를 만질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한데, 내 옆에 있는 인간은 책상물림이니……그렇다고 이제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길들일 시간도 없고 열정, 기대도 없고 다 거기서 거기지……인간이 어떻게 다 가출 수 있나,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내 놓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거늘 그동안 길들인 공도 아깝고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다 서랍을 던져버리고 일어선다.
자던 아들이 깨서 나온다.
“뭐해? 엄마?”
문이 떨어져 나간 서랍을 바라보던 아들.
“아저씨에게 해 달라고 해.”
“야! 아저씨 같이 일류대 나온 사람은 이런 것 못해. 엄마처럼 삼류대 나온 사람이나 하는 거야.”
화가 나 던진 말이다.
언젠가 엄마에게 남동생이 왜 그렇게 돈을 많이 쓰는지 투덜댔다.
“엄마, 저 아이는 왜 저렇게 돈을 많이 쓰는 거야? 엄만 대학생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밤새도록 여자 백 명을 뚜들겨 남자를 만들었어도 눈이 하나 모자라다던,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며, 아들이라면 벌벌 떨던 엄마가 하시던 말씀.
“남자가 대학생이 되었으면 그 정도는 써야지.”
“난 그렇게 안 썼어.”
“야! 야! 비교할 걸 비교해라! 그 애가 다니는 학교는 네가 다니던 삼류대와는 질이 달라.”
당신의 아들이 서울대를 나왔으면 나라를 팔 뻔 했다.



풍경 3

“너 이게 청소기 돌린 것 맞아? 왜 이렇게 먼지가 밟히니?”
“돌렸어! 엄마도 봤잖아?”
아들이 강하게 반발한다.
“청소기 다시 가져와 봐.”
‘또 시작이다, 또 시작……’
아들이 궁시렁 대며 청소기를 가져온다.
“이거 보여? 구석구석 이렇게 청소기를 돌려야지, 눈에 보이는 데만 하면 안 되지.”
“엄마는 정말 청소의 신이다.”
아들이 질렸다는 표정이다.
“청소의 신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먼 곳이 보이는 거야, 엄마도 젊었을 땐 이런 곳이 안 보였어.”
아들이 손으로 마이크 모양으로 주먹을 쥐고 내 입에 갖다 댄다.
“박명아씨, 그러면 언제부터 먼 곳이 보였나요?”
“30대가 다르고 40대 다르고 50대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나요?”
“점점 더 보이지 않는 먼 곳이 보이게 되지요.”
“그렇게 잘 보이는데 박명아씨는 왜 돋보기는 쓰시지요?”
“돋보기는 가까운 곳을 보기 위해 쓰는 거지요. 나이가 들면 가까운 곳은 점점 안 보이고 먼 곳이 잘 보이지요. 그게 삶의 오묘함이랍니다.”
“아 역시 박명아씨는 입만 살았군요.”
“꺼져! 이놈아!”
“이것 보십시오. 이렇게 또 본색이 들어났습니다. 나이가 드는데 왜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 겁니까?”
“바로 너 같은 자식들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아들과 나는 서로 쳐다보며 낄낄 거린다.

풍경 4

‘이 놈을 죽일까……’
테이블을 닦으며 혼자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들었는지 방에서 게임에 열심인 아들이 튀어 나온다.
“엄마! 내가 닦을게, 얼른 들어가 쉬어.”
아들이 내가 들고 있는 걸레를 빼앗는다. 다른 생각을 하다 중얼거렸을 뿐인데 아들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튀어 나왔다. 속으로 낄낄 거리며 잠시 망설인다.
‘그냥 이 녀석 때문에 화난 것으로 할까……’
학기 내내 작품이니 뭐니, 과제물에 시달리다 방학을 맞아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들이 측은한 생각이 들어 생각을 바꾼다.
“너 때문에 그런 것 아니야.”
“아니, 엄만 지금 위험수위에 올랐어.”
“무슨 위험수위?”
“엄마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리며 일을 하면 진도 3.5야.”
“그 다음은?”
“진도 4가 되면 나에게 화살이 튀어.”
“진도 4의 조짐은 뭔데?”
“폭발을 하지, 나에게.”
“하하……”
웃음이 나온다.
“자! 자! 나머진 내가 할 게 어서 가서 쉬어, 뉘어, 엄마. 내가 자장가 불러줄게 어서 자.”
아들은 억지로 나를 방으로 밀어다 눕힌다. 드디어 아들의 자장가가 흘러나온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너를 위한 소리 그만하자! 그만하자!”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유의 노래다.

그래,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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