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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불을 켰습니다.

방에서 주무시는 104살 되신 할머니 잣불을 키려고 하니, 모친께서 조심스럽게 한 말씀 하십니다.
"할머니껀 키지 말까?"

혹시나 잣불이 활활 타오르지 않을까 염려하시는게 분명했습니다.

결국 키기로 하고서 켰습니다.

잣이 다 타고 나서 탄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조그만 잣이었는데 야물게 탔네요."

한마디 더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모친께서, "일절만 해라."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

부친 잣을 켜고, 모친 잣을 켜고, 큰 동생과 큰 매제, 막내 매제와 막내 동생, 그리고 저의 잣을 켰습니다. 제 잣은 정말 금방 무미건조하게 꺼졌습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가만히 잣을 집어들었습니다. 부지런함과 더불어 사는 마음을 테마로 불을 붙였습니다. 나쁘지 않게 타들어 갔습니다.
모친이 누구꺼냐고 물으셔서,

"비밀이에요."

저는 일단 안심을 하고 다시 잣을 집어 들었습니다.
수술하시고 중환자실에 계신 큰 고모님 그리고, 작은 형님 잣을 켰습니다.

벗들을 뭉둥그려 하나의 잣으로 켰습니다.

남북을 뭉둥그려 하나의 잣으로 켰습니다.

요새 읽고 있는 책 속에 나오는 그리스 로마시대 속 노예의 삶을 살다가신 분들의 잣을 켰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켠지 5~6초 만에 그냥 꺼져버리는게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의 잣을 더 켰습니다. 이번엔 아주 잘 타올랐습니다.  

어머니가 잣이 든 봉지를 뺏아가시며, "이제 그만 켜."라며 나무라십니다.

"하나만 더 켤께요."

저는 잣을 바늘에 끼우고 생각했습니다.

'무얼 위해 켤까?'

'지나간 과거에 내가 미쳐 생각지 못했던 모든 것들, 그리고 지금 내가 잊고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놓쳐버릴지도 모르는 소중한 모든 것들을 위해 불을 붙이자.'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판타스틱, 엄빌리버블.. 그리고 미라클한 분위기로 타올랐습니다.

어찌 보면 missed, missing, will miss가 수없이 많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즐겁게 재미나게 여한없이 살자로 해석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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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잣불켜기가 마감되었습니다.

p.s 생각해보니 내년, 후년, 후후년. 앞으로도 잣불켜기는 계속되는 거였습니다.
잘 안탓다고 실망할 것도 없고,  잘 탓다고 너무 좋아할 것도 없는데.....

문득 신영복의 그림 사색 -석과불식-과 -피라미드-가 떠오릅니다.

오늘 켠 잣불들과 그 잣불 속에 담으려 했던 마음, 그리고 그 잣불 속에서 읽어내고자 했던 것들을 모두 땅에 심어서 새봄의 싹으로 돋아나게 하고 싶어집니다.

세상을 신뢰하고 내일을 전망하고 오늘을 안심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 되어지이다. 얍 얍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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