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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되면 초중고생이 자유롭게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성생활과 동성애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선생님이 숙제를 많이 내면 ‘선생님 몰아내자’ 이렇게 나올 수 있고, 더 나아가 빨갱이들이 10대에게 죽창 하나씩 쥐어주고 ‘너희들이 어버이연합 어른신들 척결해라’ 이런 날이 올 수 있습니다.”
“그동안 생활지도부 선생님을 피해 다녔는데, 이젠 머리를 기를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머리 기르는 게 소원인데, 그동안 혼날까봐 못했다.”
“서울 조례가 학교규칙을 일률적으로 규제해 학교의 자율성을 해칠 우려가 있고, 집회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학습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잘못된 성인식을 조장할 수 있고, 휴대폰 소지를 원칙적으로 허용해 문제이다.”

요, 근래 서울시 교육청의 인권조례 공포를 두고 일어나는 반응들이다. 학교 안팎의 눈길은 개학이후를 더 걱정하게 하는 듯싶기도 하다.

원칙적으로 인권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인류사회의 국가, 집단, 각 개인들이 그 정신을 가슴에 담고, 서로 배우고 이끌어주며, 지키고 실천해야 할 지구촌 사회의 최고 도덕적 규범임을 세계사회가 합의하였다. 또한 모든 나라는 “세계 인권선언”정신을 입법, 행정, 사법, 사회정책, 교육 이라는 국가가 실행할 모든 수단을 통해 지킬 것을 맹약해야만 UN의 회원국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든, 독재국가든 거의 모든 나라들은 국제인권 장전이라고 말하는 세계 인권선언,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경제·사회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의 내용들을 헌법으로 수용하고 있다. 우리 헌법의 경우 국제인권장전과 문구가 똑같은 조항도 있는데, 이런 세계인권선언이 갖고 있는 최고의 규범적 특성으로 인해 “모든 국가의 헌법의 헌법”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뿐 아니라 지구상의 UN회원국 193개 국가의 국민들은 원칙적으로 ‘세계 인권선언’의 정신의 영향아래, 혹은 그 정신에 근거하여 최소한의 인간다운 기준을 국가와 타인으로부터의 침해받지 않고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자명하고, 그 정신이 확산되고 심화될수록 문명사회로 나아가는 분명 좋을 것 같은 인권이 왜 지금 한국에서는 소란의 중심에 있는 것일까?

우선 떠오르는 대로 그 이유들을 보면, 첫째, 우리 사회의 환경은 ‘인권’과는 너무 멀다는 것이다. 지난 번 글에서도 경쟁의 문제를 얘기 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경쟁하도록 하는 문화풍조 속에서 인권은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다. 이 같은 경쟁풍토가 학교, 사회를 지배하는 환경은 근본적으로 인권과 배타적인 관계를 만들어낸다. 인권의 시각에서 요구되는 인간형은 성·연령·장애·피부·계급·학력·국적 등에서 비롯되는 어떠한 차별 인식이 없이 인간을 인간인 그 자체로 존중하고 존엄하게 대하는 인간형, 어려운 조건의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의 조건을 주어야 하는 적극적 평등주의 인식, 타인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공감능력을 갖고 있는 인성, 나의 인권의 향유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을 뿐더러 촉진시켜주도록 배려하는 시민적 덕성, 나의 존재가 사회뿐 아니라 지구적 환경과 호혜적인 조응관계를 이룰 때 온전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감지하는 관계성의 인간, 신체적·정신적의 개인적인 성숙과 더불어 자신의 삶과 관련된 문제에 참여와 실천을 통해 의사표현을 하는 자력화된 인간형 등은, 우리 사회의 학교와 일터에서 성과체계를 통해 만들려는 순응적이고, 기계적이며, 동료와 경쟁관계에 있어야 하며, 이기주의 질서를 신봉하도록 하는 신자유주의적 인간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여, 인권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기득권층 혹은 지배질서에 익숙한 사고관 과의 갈등·투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둘째, 우리의 역사 또한 ‘인권’과 멀다. 물론 유사 이래의 모든 민중 투쟁이 인권의 정신과 연계되지 않은 것이 없다. 가깝게는 쌍용, 한진, 7,80년대 학생·노동자 투쟁 모두가 인권의 정신과 깊숙히 연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다’는 말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정신이 계승되지 못하고 부정당하는 역사가 반복되었다는 의미이다. 인권담론의 역사는 투쟁과 혁명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인권 발전의 획을 그었던 권리장전,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선언문은 기득권과의 단절 혹은 창조적인 발전이었지만, 우리의 공식적 역사는 이를 부정하는 길을 걸어왔다. 인권은 혁명을 일으키게 만들기도 했고, 혁명을 통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계승되었던 것이다. 인권의 정신이 계승되는 사회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사회라면 아무리 어린 학생이라도 ‘머리를 물들일 수 있어 좋겠다’거나, 혹은 나라를 걱정하며 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집회의 자유와 성적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들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각각이 연령과 사회적 배경은 다르지만 사회적 치유가 필요한 인간소외의 극단에 내몰려 있음을 보여주는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인권역사에서 자기표현의 자유는 그 자유가 없을 때 죽을 수도 있고, 항상 불평등과 억압의 상황에 놓여있었던 사람들의 투쟁에서 기원하고 있다. 때문에 어린 학생들의 머리 색깔 혹은 두발 자유화가 다른 어려운 처지의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사회적 억압이나 벽에 의해 의도적으로 목소리가 묻히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획득 문제까지 생각할 수 있도록 인권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너무나 익숙해서 평범해 보이는 헌법상의 권리들의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한국과 전혀 다른 영국과 프랑스 혹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수백년 전의 노동자 여성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얻어낸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하여 인권은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인권’의 오독을 피할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언론, 노동, 교육문제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인권 본래의 정신에서 멀어져서, ‘인권’의 이름으로 사적 이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전개되고 있는지가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인권정신이 이식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나름의 인권모델이 더욱 필요함을 역설해준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중학교면 중학교의 상황에 맞는 인권문화가, 동네면 그 동네의 역사나 환경적 특성을 벗어나지 않은 인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지역적 상황 혹은 생활환경의 특성들 속에 발현되는 각각의 인권실천들은 세계 인권정신 즉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항상 대화하면서 실천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은 어렵고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새롭고 풍성한 각각의 새로운 인권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인권은 자기의 권리 주장이 아니다. 인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욕구를 발산시키는 소비자의 권리와 같은 것이 아니다.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던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인권은 어쩌면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이것은 인권을 주장하는 순간 대화를 하지 말자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세계인권정신 속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등 세계 여러나라들의 종교에서 기원하는 정신, 자본주의, 사회주의, 제3세계, 토착 원주민들의 가치들이 녹아들어가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인권의 주장에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하고, 다른 인권의 내용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인권정신의 맥락안에 놓여 있어야 한다. 나의 권리가 이러한 역사적, 인권의 정신적 가치의 맥락과 연계되는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는 그냥 인간이기 때문에 체득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권은 자칫 인권정신과 긴장할 수도 있는 끊임없는 교육의 결과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교육이라는 재미없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통한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공감능력, 타인의 어려운 처지를 도와주어야만 마음이 편한 이타성의 인간들을 만들어내는 사회, 궁극적으로 인권으로 일컬어지지 않더라도 인권정신이 그 사회 속에 녹아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영구적인 과정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은 매우 자명한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저마다의 인권을 얘기하는 것은 인권수준이 민망할 정도로 취약함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참여정부 때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인권증진의 모범국이었던 한국의 처참한 현실에 참담함 마저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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