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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12.01.22 17:59

자식은 평생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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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년이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구정이다.
시댁의 큰집이 전라남도라 딸도 처음으로 귀성길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매년 고속도로 정체현상이 뉴스에 나오면,
“어머, 정말 고생이겠다. 끔찍해!”
하던 딸이 자신이 끔찍하다고 말한 대열에 낀 것이다.
좋아서 결혼할 땐 자신이 귀성객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그런 것들을 일일이 따지면 누가 결혼을 하겠는가. 나 역시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딸년이 귀성객이 되자 자연히 고속도로 정체에 신경이 써졌다.

결혼을 하자마자 딸의 방을 잡다한 물건을 넣는 창고로 만들었다.
언니와 동생들은,
“어머, 그럼 네 딸이 오면 잠은 어디서 자니? 다른 집들은 딸방은 그대로 놓아두던데……”
마치,
‘넌 무슨 애가 그렇게 독하니? 딸 방을 창고로 만들고 싶니?’
책망하는 눈빛이었다.
“결혼 한 애가 왜 와서 자고 가?”
나의 무심한 말에,
“어머, 명절이나 그럴 땐 사위와 와서 자고 갈 때도 있지?”
“그건 옛날 말이지. 요즘은 다 자동차로 한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에 사는데 뭘 자고 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 제 집인데 가서 자야지. 지들도 그게 편하지!”
했던 나였다.

하긴 딸도 결혼하기 전에 자신의 방을 창고로 만들어 집을 넓게 써야겠다며 빨리 짐을 가지고 가라는 나의 말에,
“엄마, 난 그럼 집에 올 때 어디서 자?”
물어 본 적이 있었다.
“네 집에서 자야지 왜 여기서 자? 이젠 네 집이 있는데.”
“그래도 집에 올 때가 있지.”
“마루에서 자.”
나의 말에 딸은 서운했는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런 나의 속 마음은 응당 결혼을 했으니 죽으나 사나 제 집에 있어야지, 조금 힘들다고 쪼르르 친정으로 달려올 것을 우려한 면도 있었다. 살다보면 좋을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은 것인데 그럴 때마다 달려오게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러더니 결혼하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딸이 겨울 짐을 챙기려고 왔다. 신랑은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며 딸이 자고 가겠다며 마루의 자신의 요를 펴더니 자지 않고 식탁에서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집에서 도통 술을 마시지 않던 애였는데 이제 슬슬 현실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묻지 않았다.
다음 날 딸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저녁에 전화가 왔다.
“엄마, 어제 내가 마시던 맥주 어디서 산거야?”
“E마트.”
“어디서 나온 건데?”
“몰라, 맥주를 사면 컵을 공짜로 준다고 해서 샀어. 컵이 예뻐서.”
“좀 알려줘.”
“기다려봐.”
나는 상표를 확인하고 알려주었다.
“그렇구나, 난 지금 카스를 먹고 있는데 너무 맛이 없어.”
“그럼 어제 마시던 맥주로 사 먹어.”
“비싸.”
갑자기 열이 확 올랐다.
며칠 전에도 딸년이 전화를 해서,
“엄마, 나도 빨리 돈 벌어야지, 치사해 죽겠어.”
“왜?”
“내가 신랑 모르게 옷을 한 번 샀어. 그런데 들킨 거야. 택배가 항상 오후에 오는데 그날은 너무 일찍 와 버렸어. 그랬더니 나 보고 옷이 없으면 이해하겠는데 저렇게 옷이 많으면서 왜 옷을 사냐고 하는 거야. 내가 치사해서!”
“엄마가 며칠 전에 너 코트 하나 사줬잖아. 그런데 또 샀어?”
며칠 전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날이어서 딸을 만났는데 옷을 너무 얕게 입고 나와 따뜻한 코트를 사서 입혀 보냈었다.
“응, 예쁜 게 있어서…… 비싸지도 않아 5만원 짜리야. 그런데 우리 형편에 그렇게 옷을 사면 어떻게 하냐고? 자긴 옷이 사고 싶지 않아 사지 않는 줄 아냐며 화를 내는 거야. 내가 정말 치사해서!”
“치사하긴 뭐가 치사해? 엄마가 너의 집 월세 매달 내 주고 있는데 입만 가지고 공짜로 사니? 그리고 결국 자동차까지 안 팔고 가져갔잖아. 치사할 필요 없어!”
결혼을 하기 전엔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은 다 사고 먹고 싶은 것은 다 사먹었는데 이젠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야 하니 힘들긴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이 미친년아! 누가 너보고 결혼하래! 맥주 하나 제대로 사 먹지 못할 거면서 결혼은 왜 해서 고생이야!”
내 말에 딸도 지지 않고,
“뭐가 고생이야! 다 이렇게 사는 거지!”
“그럼, 마시지 않던 맥주를 왜 저녁마다 쳐 마시니?”
“그냥, 심심하니까 마시는 거지."
“심심하다고 맥주를 쳐 마시니? 귀신을 속이지 엄마를 속이려고 그래? 너 지금 이래저래 심란하니까 마시는 거잖아?”
“심란하긴 뭐가 심란해?”
딸의 대학원 논문이 아직 통과가 안 돼 교제를 사야하고 충치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 교제는 사 주지만 충치치료는 네가 해야지, 결혼하기 전에 그렇게 치아에 돈을 많이 들였는데 무슨 충치냐고 했더니, 결혼하고 두 달 만에 충치가 생긴 것은 이미 결혼하기 전부터 충치였다며 엄마가 치료해줘야 한단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맞는 말 같아 가족카드를 신청해 하나 만들어 주었다.

“엄마가 준 카드로 사 먹어!”
“됐어!”
지도 자존심이 상했는지 심통이 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뭐랬어, 꿈은 한 달이고 그 다음부턴 현실이라고 해도 괜찮다고 큰소리 탕탕 치던 년이 생전 마시지 않던 맥주는 왜 저녁마다 마셔.’

그렇게 전화를 끊고 아무래도 어미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 날 딸의 계좌로 돈을 부쳤다.
“엄마, 이 돈이 뭐야?”
딸에게 금방 전화가 왔다.
“맛있는 거 참지 말고 사 먹어.”
“나 다 사먹고 있어.”
“사 먹긴 뭐를 사먹어! 안 봐도 DVD다.”

그리고 며칠 후 약국에서 약을 4만원 어치 샀다고 문자가 와서 무슨 약을 4만원어치를 샀냐고 했더니 영양제를 샀단다. 보약이라면 질색을 하던 아이가 영양제를 직접 사서 먹다니 이상해서 캐물었다.
“실은 학교에서 기절했었어.”
"뭐! 기절! 왜!“
“몰라, 논문 정리하다 갑자기 일어섰는데 어지러워서 쓰러졌어.”
“그래서?”
“아이들이 응급실에 데려가서 의사가 빈혈 같다고 집안에 빈혈 있는 사람 있냐고 해서 엄마가 있다고 했더니 영양제 사먹으라고 해서 약 샀어.”
“너 바보야! 쓰러졌는데 영양제만 사먹는다고 났니?”
“다른 덴 멀쩡해.”
“상처가 나지 않고 멀쩡하면 더 위험한 거 몰라! 도대체 얼마나 못 먹기에 빈혈로 기절해!”
“안 먹어서가 아니라니까! 유전이래!”
“유전 같은 소리하네! 엄마가 빈혈이래도 어지럽지 기절하진 않아! 너 못 먹어서 그래! 안 되겠다. 종합검사를 받아야지, 엄만 네 나이에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기절한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다 기절까지…… 하여튼 종합검사 예약해 놓을 것이니 그리 알아.”

그렇게 전화를 끊고 딸이 오면 잘 수 있게 딸의 방을 다시 치웠다.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라더니 결혼을 시켜 놓고도 평생 AS를 해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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