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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11.03.16 15:47

딴 짓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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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계속 된 나의 무기력증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후유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기력은 2년을 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몸이 너무 허약해졌나? 우울증에 갱년기에 골다공증에 노안에 귀까지 잘 안 들리고, 용혈성 빈혈에 잇몸의 뼈가 약해 허물어지고 또? 또, 나빠 질 것이 남아있는 게 뭐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이렇게 외장과 내장이 허술한데 또 허술해질 것이 남아있기는 하는 걸까? 그래! 치매와 불치병! 양심이 있지 그것만은 봐주시겠지……지금도 다발성 치매끼에 고생하는데 제발 양변기에 꽃꽂이 할 정도는 만들어 주시지 않기를....
문창과 2년 동안을 아침 세수도 생략하고 미친 듯 달려 휴식이 필요했던 걸까? 조금 쉬고 편입 할 걸 쉴 틈도 안 주고 다시 편입을 해 내 몸을 혹사 시켰나?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2년 남은 등록금이 공짜여서 눈이 뒤집혀서?
모두 다 아니었다. 쉴 틈을 주지 않고 편입한 것은 그 당시 쉬어버리면 난 다시는 공부를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문창과의 2년은 나를 열심히 달리게 했다.
편입 심사를 맡은 심교수님과 이교수님이 알량한 나의 성적을 보고 한숨 쉴 때 성적 때문에 할 수 없이 저와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를 다녀서 그런데 기회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수님들께선 나의 말을 믿는 것 같지 않으셨지만 나는 나의 말에 책임을 져야했고 또 내가 모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 미친 듯 달리며  미쳐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구나, 실감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란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4학년 학기말에 우울증약 과다 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죽음과 가장 가까이 가보고 온 후에 나는 달라졌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문학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 상처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컸던 것 같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내가 쉰다면? 다시는 공부를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미친 듯 좋아했던 것에(사람이던 사물이던)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내겐 치명적이었다. 그때 생각해 낸 것이 문학과 잠시 떨어져있고 싶었던 것 같다. 김성렬 교수님을 배반(?)하고 나는 일본학과에 편입을 했다.
일본학과에서 내가 느낀 것 …… 나는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아니, 쉽게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학기 내내 절망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문학과 달이 어학은 살아온 세월이 오히려 짐이 됐다. 얼마나 많은 단어를 얼마나 빨리 암기하는가, 순발력과 기억력, 암기력 사이에서 나는 내내 전쟁을 해야만 했다.
나이가 들면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간단해지고 주민증을 잃어버려 갱신해야 했을 때도 얼굴이 몇 장 필요하냐고, 묻는, 반세기를 살아낸 사람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신종플루에 걸리면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다는 등의 새로운 대입 단어가 날마다 늘면서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대한 쓸쓸함은 없었다. 삶이 뭐 그렇게 재미있고 대단한 것인가, 부자든 가난하던 산다는 것은 고통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것, 부자는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어 보통사람들처럼 누리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어쩌면 보통 사람보다 더욱 불행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듯 행복이 대단히 크고 거창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삶은 내게 욕심을 부릴 만큼 탐나고 매력적인 상품은 아니다.
어느 날 문득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 하긴 했다. 그것은 돈을 가지는 것, 다시는 굶주리지 않을 것,  따뜻한 잠자리가 있는 것, 다시는 돈으로 인해 내가, 아니, 내 아이들에게 나와 같은 고통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오기고 발작이었다.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잠잘 곳을 위해 나처럼 자신을 팔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기에 아이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 것뿐이었다.  
한때, 형제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허탈한 감정에 몇 달을 고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허탈감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짧고 달랐다. 다시 살 이유가 남았으므로. 이번엔 부모형제가 아닌 나의 아이들을 이기에.
고독한 싸움 끝에 난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돌이켜봐도 후회가 남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가 원하던 대로 큰 부자는 아니지만 굶주릴 걱정이나 잘 곳이 없어 걱정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았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그리고…… 반세기를 살고 난 어느 날, 문득 이제는 최선을 다해 정신없이 매달려야 하고 미치도록 좋아하는, 내일이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올해로 아들마저 내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평생직장을 갖기 위해 디자인 계열에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제 길을 찾아 갈 것이다. 난 이제 이정표 정도로만 남을까. 그런데 난 큰 실수를 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이 끝난 다음, 반세기를 산 다음,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50이후를 생각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문제는 세월이 아니라 계획이었다. 중간에 잠시 한 번 쉬며 끝없는 마라톤을 하며 숨차게 달려왔는데  분명히 꼴인지점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골인지점이 없어진 것이다. 길을 잃은 것이다. 문학? 이제는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의미를 두고 싶을 만큼 소중하거나 매력적이지 않다고 해야 하나……
과거를 알아야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인다는 말은 내겐 그저 학문적인 용어일 뿐이다.
내가 수업 시간에 쉴 새 없이 떠드는 것은 나의 알량한 지적 부족함의 자격지심을 감추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딸보다 자상한 아들이 한 마디 한다.
“엄마, 엄마는 이제 우리들 없으니 마음대로 글 쓰고 공부해. 그런데 엄마 혼자서 괜찮겠어? 외롭지 않을까? 주말마다 아저씨가 오니 조금 안심이 되긴 하지만……”

“인간은 원래 고독한 거야. 그리고 외로운 거 엄마 안 무서워해. 외로운 것에 대해선 굳은 살이 배겼거든, 아저씨가 서운 할까봐 말은 안했지만 솔직히 아저씨가 오면 식사 신경 써야 하고 때 맞춰 밥 차려줘야 하고 귀찮아 죽겠어. ”
남자처럼 무뚝뚝한 딸이 한 마디 한다.
“엄마의 철학처럼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놓아야지. 그리고, 이녀석아! 너나 걱정해! 엄마처럼 강한 사람이 외롭긴 뭐가 외롭겠냐? 오히려 도둑이 들어왔다가도 겁나 달아날 거다!”
“그래, 맞다! 무서우면 그 험난한 시간들을 이겨내고 살아내지 못했지. 난 이제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다. 아! 있다! 난 내 자신이 무서워! 그리고 어차피 죽는 인간인데 죽기 밖에 더 하겠니. 아까운 젊은이들도 죽는데 솔직히 반세기를 살았으면 그래도 괜찮은 거야.”
“엄만 세상 사람들이 다 죽어도 안 죽어.”
죽는다는 말이 싫었는지 아들이 한 마디 거든다.

나는 그동안 한이 진 돈! 돈! 만을 위해 미친 듯 살았다. 그렇게 미친 듯 돈! 돈! 해도 큰 부자가 못 되고 끼니와 잠 잘 곳만을 위해 반세기가 걸린 것은 내 꿈이 워낙 소박해서인지도 모르고 팔자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가진 것이 있으면 내어 놓을 것도 있는 거라고 내가 돈에 미친 듯 살았다면 분명 다른 것을 내가 알아챘을 수 없게 미친 듯 잃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지금처럼 살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물론 다 잘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특히 형제들 일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워줘야 했었는데...하지만 그 외엔 후회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난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으므로.
그런데 이젠 더 이상 돈! 돈! 할 기력도 정열도 없다.
‘호적도 바로 잡아 주고 자식에게 내 할 일은 했으니 나 죽고 나서 콩이 되던 팥이 되던 걱정하지 않는다. 그 다음은 자신들의 노력이고 팔자니까 자신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내가 죽고 나면 잘 사는지 못 사는지 어찌 알겠는가.’ 난 여기까지 뿐이다.
이제 문제는 나다. 도통 내가 갈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두커니 자식들 커나가는 것만 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반세기를 넣은 등산 가방을 매고 산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아니, 길을 찾지 못한 것이다. 문단에 등단하는 것? 솔직히 말해 욕심도 관심도 없다. 소설가 시인, 비평가들, 소위 세상에서 이상과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타자에 대한 예민한 예의와 양심적인 감성을 가진, 돈과 권력과는 먼 예술가들의 모임이라고 동경하는 문단세계도 돈과 인맥, 줄서기와 순서정하기,후배를 강간한 시인이 문학계에 버젓이 지위를 맡고 있는 현실에 배려와는 성격이 먼 질투와 자신보다 재능있는 상대 죽이는 세상살이와 별 다를 것이 없으니까.
어디로 가야 하지?
무엇을 해야 하지?
난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내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 자격지심으로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빈 껍질에 불과하다.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주둥이를 나불거리지 않을 것이다. 왜? 나불대지 않아도 자신 있으니까.
졸업할 때 교수님께서 물으셨다. 일본학과에 와서 느낀 점이 뭐냐고……
‘세상을 사는데 더하기와 빼기, 구구단 그리고 사람의 도리만 알면 사는데 지장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한문도 많이 알아야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교수님들이 한심한 듯 나를 보셨다.
‘좀 더 그럴 듯하게 일본소설은 섬세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일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어요, 일본소설을 좋아하게 됐어요, 제 인생의 뜻 깊은 날들이었어요. 저에게 무궁한 의미를 주었어요,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라는 등등의 대답으로 감동을 시켜드려야 했는데 잘못한 건가?’
하지만 그것이 그때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대학원 면접 때도 같은 말을 했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공짜인 것이 가장 매력적 이었고 일본학과에 다닌 지난 2년간은  더하기, 빼기, 구구단 사람의 도리뿐만 아니라 한문도 좀 더 깊이 알아야 사람구실 하겠구나, 생각했어요.”
나의 말을 들은 교수님들께선 '이래서 약을 먹는구나' 란 표정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셨다.
사실 난 그때도 지금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무엇을 하긴 해야만 하지만 그 생각과 마주하지 않으려고 난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없이 TV만 보고 있다. 생각을 해야 하고 갈 길을 정해야 하는데 난 피하듯 딴 짓만 하고 있다.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이란 시를 읽으며 나에겐 질투조차 없으니 어쩌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기형도 역시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정말 나도 내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아니, 사랑은 개뿔! 내 자신을 인정할 수도 없었다. 내 자신과 화해했다고 생각했었는데……아직도!...나에게 문학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지도록 만든 공신, 그 사람을 먼저 용서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난 전혀 다른 짓만 하며 아무 생각 없ㅇ 지낸다.
언니들은 “넌 복 받았다. 아이들도 무탈하게 잘 커서 공부하고 널 끔찍이 챙겨주는 사람 있고 네가 하고 싶은 공부하고 그나저나 아이들 없이 깊은 산속에 너 혼자 무서워서 어떻게 사니…… ”
“언니, 이런 것이 무서웠으면 나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지도 못했어.”
“하긴 그래, 넌 조그만 것이 간과 배포가 왜 그렇게 크니?”
“그건 인정해. 아이들 아빠도 나보고 무슨 여자가 간이 크고 배포가 큰지 야쿠자 보스하면 딱 맞겠다고 했어.”
“맞아! 너 조폭 보스하면 너무 잘할 거야!”
“응, 나도 그러고 싶은데 섭외가 안 들어오네.”
“하여튼 넌 말년엔 복 받았다.자식 잘 자라주는 것이 가장 큰 복이지.”
‘복은 개뿔! 그래, 다른 사람들이 보면 등 따습고 배부르니 사치스러운 고민한다고 하겠지. 하지만, 난, 내 길을 잃고 아직 찾지도 못하고 뿌연 안개 속을 해매며 길 찾기가 싫고 무서워 딴 짓거리만 하고 있는데……인정하고 사랑하며 어떻게 화해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미칠 것만 같은데! 난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정열적으로 매진하며 살고 싶은데! 배가 부른 것이 아니라 매일 허기져 힘도 의욕도 의미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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