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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은 지금 꽃속에 파묻혀있다. 매화꽃이 맨 먼저 피어나더니 이윽고 벚꽃이 온 가로수길을 하얗게 수놓았다. 하얀 벚꽃 사이로 노오란 얼굴을 내미는 개나리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저기 시골마을 돌담길 사이로 빠알갛게 나타나는 동백꽃은 수줍어하면서도 호기심을 어쩌지 못하는 시골처녀의 빠알간 볼을 닮았다.

지난 주 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오늘 갑자기 벚꽃이 흰옷을 다 떨구고 이제는 꽃받침과 줄기만 남아 흰색 나무들이 갈색으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갑자기 꽃을 다 떨구어내다니 벚꽃도 참으로 새침하다 해야 할까, 변덕이 심하다 해야할까? 하지만 우리 인간들이 몰라서 그렇지 사실 벚꽃은 10여일 전부터 하나 둘 꽃잎을 땅으로 내려놓고 있었다. 인간이 그것을 변덕이라 하지 사실 벚나무 입장에서는 자연스런 자연의 이치에 백분 따르고 있을 뿐이다. 생장성쇠... 생명의 원리에 충실한 벚나무 낙화를 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는 것이 성숙한 일일 것이다.

내가 순천에 온 것은 4.27 재보궐선거 지원 때문이다. 어찌하다보니 순천시내가 아닌 농촌의 한 면을 맡게 되었고, 벌써 보름째 시골마을을 샅샅이 나다니고 있다. 다행히 우리 후보가 민주당을 포함하는 야4당의 공식 단일후보로 선정이 되고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어서 선거운동을 하는 마음이 무겁진 않지만, 사실 내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무너져가는 농촌의 현실이었다. 농촌에 일할 사람, 즉 젊은이들이 없어서 농삿일도 제대로 못하고, 이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긴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는 무던한 나같은 도시인에게도 오래전부터 들려오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직접 농촌을 돌아다니면서 두 눈으로 본 농촌의 현실은 그런 말들을 확연히 피부로 느끼게 만들었다.

내가 돌아다닌 30여개의 마을 중에서 아이들을 본 마을은 한손에 꼽을 정도였다. 삼사십대 젊은층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60을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었다. 70대도 젊은 축에 속하고 80대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마을도 제법 있었다.

이미 20년전의 마을 가구수가 이제 절반으로 떨어진 마을들이 아마 이대로 간다면 10년 후에는 누가 마을에 남아 있을지 암담하기만 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있는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다. 마을에 사람(농민)이 없어지면 농촌은 그대로 망하게 되는 것이고, 농촌이 망하면 농업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농촌의 몰락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말해왔지만, 아무도 제대로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농가소득을 올리고 생산과 유통을 책임져야 할 농협은 농민은 내팽개치고 신용사업만 요란하게 펼치더니, 이제 와서는 아예 신경분리로 신용사업을 중심에 놓자고 한다. 엠비정부는 농업도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농기업 육성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농민은 어디가고 기업논리로 농정을 꾸린다면, 갑자기 농민들이, 그것도 7,80대 어르신들이 기업가정신으로 농촌을 살릴수 있을 것인가. 아닐것이다. 오히려 재벌기업들이나 도시기업들이 새로운 이윤창출이나 관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찾아 몰려드는 농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와중에 통상관료들은 한이유 FTA를 밀어부친다고 한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은 국가주도로 자국농민들에게 엄청난 지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지원금에 힘입어 싼 농산물,축산물을 외국에 수출할 수 있었고, 수출이 늘수록 세계경제에 편입된 제3세계의 농산물은 가격이 떨어져 생산가격도 챙기기 어려워졌다. 이렇게 자국 농산물이 줄어들면 어느날 갑자기 수출국의 농산물가격이 폭등해도 대처가 불가능해졌다. 한이유 FTA를 포함한 자유무역이란 결국 전세계적 차원에서 시장논리로 돌아가는 시스템속에 농산물도 집어넣어버리고 결국 경쟁력이 떨어진 농업을 몰락시키는 과정을 촉진하게 된다. 지금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농촌을 둘러싼 현실은 이런 과정의 결과이다.

내가 돌아다닌 농촌의 어르신들에게는 아직 우리의 전통 미덕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도 식사를 묻고는 같이 식사를 하자고 이끄시는 그 거칠어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손길에는 손님을 소중하게 대하고, 인연과 정을 소중히 여기던 우리 선조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신들이 남아있었다.

내가 진정 염려하고 슬퍼하는 것은 이러한 아름다운 우리의 의식세계와 정신, 문화의 소멸이다. 마지막 끈을 가지고 있는 우리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농촌에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게 되면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와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김구선생도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은 무력이 아니라 드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순천은 아름다운 곳이다. 하늘(天)에 순응(順)하는 마을이 어찌 풍요롭지 않을 것인가. 순천은 풍요로운 곳이지만,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순천시 소속 시골 마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너무도 순박하고 정이 넘치는 분들이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그간 무엇을 했는지 깊이 성찰해 볼일이다. 그리고 그 성찰을 위해서 농촌시골마을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한번 진하게 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만남은 우리를 변하게 하고 그 변화가 또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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