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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11.04.19 17:01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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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쒀서 개준다는 말이 바로 이런 기분인 것 같다. 갑자기 딸년이 온다고 전화가 왔다. 매일 과제가 고등학교 때보다 더 많다고 투덜거리며 인천에 있는 아들까지 같이 데리고 온단다.
‘왠 친절?’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진다. 아들놈이야 지 누나를 세상에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팔푼이 지 누나 신봉자니까 그렇다 쳐도 갑자기 딸년의 남친까지 데리고 온단다. 저녁을 사주겠다나 뭐나, 그리고 꼬랑지에 달려 온 말, “어머님께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요.”
“무슨 저녁을 사? 그냥 와. 나 먹는 거 그리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네가 버는 돈으로 내가 어떻게 밥을 먹고 있겠니? 돈 많이 벌면 그때 사.”
“어머니 저 많이 벌어요.”
“고맙다, 마음만 받을게.” 그렇지 않아도 딸년이 지 첫 월급 탔다고 나보고 뭐 사줄까 묻는데 별로 필요한 것도 없고 교통비와 밥값만 겨우 되는 홍보실 인턴사원이 한 달 내내 땀 흘려 번 돈으로 뭘 사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엄마 갖고 싶은 것 뭐 있어? 첫 월급으로 내복 사는 것이라는데 난 엄마 내복 사주긴 싫어.”
“내복 사줘. 나 내복 입어”
“싫어 그런 건 다음에 엄마가 사. 갖고 싶은데 엄마 돈으로 사긴 좀 아까운 것 그런 것 없어?”
“전 세계 크루즈 여행권.”
“그건 다음에 해 줄게.”
안 해준다는 말보단 낫다.
“그럼, 없어.”
“그럼 천천히 생각해.
작년 딸년이 조교일 때 시험감독 하며 벌었다고 30만원을 주며 엄마 사고 싶은 것 사라고 하는데 차마 그 돈을 쓸 수 없어 다시 돌려주며 네가 이 돈을 종자돈으로 해서 저금 좀 하라고 했더니 저금은 개뿔! 스키 회원권을 사서 나에게 죽게 혼 난 적이 있던 딸년이었다.
조금 후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생일 축하해.”
“그래 고맙다. 어떻게 알았어?”
“에이! 아들이 엄마 생일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엄마 갖고 싶은 것 있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아파트 한 채.”
“아! 그거 해줄게, 내가 요즘 수업시간에 나무로 집 만들고 있거든.”

생일을,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해야 하는 일인가? ‘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너 참 축하한다.’ 그렇게 축하해야 하나. 차라리 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울지는 않아도 힘든 세상에 태어나 적어도 애도 정도는 해야 하는 날은 아닐까. 그래서 난 내 생일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날 낳으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께 마음속으로 잠시 목례만 올릴 뿐이다.
아이들 아빠는 일본에, 엄마는 한국에 아파 누워 계실 때, 서울과 일본을 오가며 병수발 드는 것이 너무 힘들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징징 울면서 “엄마, 나를 왜 낳았어?” 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니? 큰일 날 뻔 했지!” 라고 생각하던 엄마의 눈동자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때도 울다가 엄마의 그런 말을 듣고 웃어버렸으니까.

난 봄이 싫다.
봄이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켜 안심하게 만들어 놓고, 갑자기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 겨울보다 더 춥게 만들고 꽃이 피는 것까지 시샘하는 봄. 그렇게 정직하지 않고 뒤통수나 치고 심술궂게 꽃을 떨어뜨려 버리는 봄이 싫다.

그런 봄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딸년의 남친이 나에게 저녁을 먹여놓고 드릴 말씀은 과연 뭘까?
갑자기 뭔가 머리를 쳤다.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던 녀석이 말할 생각은 안하고 하염없이 앉아서 똥을 싼 바지를 입은 것처럼 뭉그적 대고 있다.
용기가 안 나나보다.
“뭔데? 뭔데 그래? 너희들 결혼 하겠다고?”
뭉그적 그리고 있던 놈이 살았다는 듯 “네!” 하고 대답한다.
“넌 올해 졸업해서 달랑 두 쪽 밖에 없는 놈이 무슨 결혼이야?” 옆에서 딸년이 바람잡이 노릇을 한다.
“엄마 얘 나보다 엄청 잘 벌어.”“그거야 인턴사원이 아니니 그렇지, 그나저나 너희 집 부모님께서도 결혼 허락하셨니?”
“네,”
“뭐라고 허락하셨어?”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어른 공경할 줄 알고 예의 바르고 훌륭하다고요.”
“훌륭하다는 것은 네 생각이고, 소윤이가 날 닮아 얘 열나면 머리 뚜껑 열리고 싸이코 되는 것도 아니?
“네.”
“그런데도 결혼하고 싶어?”
“네, 전 그런 면이 더 좋아요.”
“그런 면이 좋아? 너 변태니? 하긴, 성질만 안 건드리면 되니까, 그런데 소윤이 내년에 일본으로 유학가야 되는데 어떻게 결혼을 해?”
“저도 같이 가려고해요.”
“너도 같이 가? 넌  거기서 뭐 할 건데?”
“저의 학교와 와세다 대학이 결연이 돼 있으니까 전 제 전공인 스포츠 의학을 공부할 생각이에요.”
“그래? 같이 간다 말이지....."
“넌 왜 소윤이와 결혼하고 싶니?”
“우선 예쁘고요, 어른 공경하고요, 성격도 마음에 들고 쿨해서 좋아요.”
“저년 성격이 마음에 든다고? 하루 종일 있어도 말 한마디 안 하는 년인데 마음에 든다? 너 설마 일본에 집세 내지 안으려고 결혼 하는 건 아니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네? 전혀 그런 마음 없습니다. 저의 부모님께서 구로동에 아파트가 한 채 있는데 그건 저에게 주시고요. 형은 지금 살고 있는 인천에 있는 아파트에 같이 데리고 사신대요. 그리고 올해 아버님 퇴직이시라 공군회관을 식장으로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고 해서, 빨리 하려고 하셔요.”
“하긴, 그렇다고 해도 네가 그렇다고 하겠니…… 너 만일에 그렇담 내가 가만 안 둔다, 알았지?”
“그럼요! 전혀 그런 것 아닙니다.”
그래 체육과를 나온 녀석이고 그렇게 머리를 쓸 정도로 교활하진 않고 단순하고, 아버지가 군인이니 정직하긴 하겠다. 인물도 박상민 닮았으니 잘 생겼다고 할 수 있고 키도 185고 체격도 듬직하니 괜찮았다. 결혼은 당사자들이 해서 사는 것이니 본인만 안전한 직장 있고 성실하면 된다.
“25살인데 난 2~3년 정도 더 있다가 결혼 시킬 생각이었는데 너무 빨리 결혼 하는 거 아니니?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생각했어요. 부모님께서도 많이 생각하시구요. 어머님만 찬성하시면 됩니다.”
“재홍이 넌 어떠니? 매형이 되는데 괜찮니?”
“응, 난 괜찮아, 그런데 누나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 상상이 안 돼, 대학생이 된 것이 엊그제 인데 누나가 결혼을 한다니 실감이 안나.”
“네가 결혼 하는 것 아니니 넌 실감 안 나도 돼. 매형으로 괜찮냐, 아니냐, 만 대답해.”
“응, 괜찮아, 괜찮다고 말했잖아.”
하긴 지가 반대해 보았자 소용도 없겠지만 그래도 형식상 의사는 물어봐야 했다.

………………………………………………………………
“그래, 그럼 해라.”
“네? 아! 감사합니다. 어머님,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래, 감사해야지, 그리고 아이는 너희들이 아직 젊으니 자리 잡고 나서 갖기로 해라.”
“네, 그러기로 했습니다.”
“벌써 가족계획까지 세웠니?”
녀석은 머리를 숙이며 웃었다.
딸년도 “엄마 네가 지금까지 남자를 사귀었어도 결혼까지 하겠다고 한 적은 없었잖아?”
“그래 , 해.”
너무 쉽게 승낙이 떨어져 아이들이 오히려 당황한 것 같았다.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지가 좋으면 살아야한다. 어쩌겠나. 반대해서 아이들 괴롭게 만들 필요도 없고 부모 자식 간에 아옹다옹 할 필요도 없다. 옆에 앉아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넌 없냐? 애 둘 딸린 이혼녀와 결혼 한다든지 뭐 그런 거 없어?”
“아직 여친도 없는데…… 걱정마 나도 피부 좋아지면 대쉬할 거야.”
“참 그리고 너희들 아주 중요한 말 한 가지를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갑자기 긴장했다.
“너희들 살면서 나에게 기대거나 도움을 요청하거나 하면 절대 안 된다. 물론 내가 죽으면 너와 재홍이 것이 되겠지만 그 전에 그런 말을 하면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겠다.”
“엄마 내가 그런 개념도 없는 줄 알아? 걱정하지 마”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리고 너 우리 딸 기 센 거 알지? 우리집안 내력이다. 잡으려 하지 말고 처음부터 잡혀 사는 게 편할 거다. 그리고 월급에 대해서는 각각의 통장을 만들어 생활비 빼고는 자신들이 관리해. 난 월급을 다 여자에게 갖다 주고 타다 쓰는 것도 반대고 다 맡기는 것도 반대다. 각각의 부모들에게 갖다 주는 것은 서로 각각 알아서 해. 명절 때마다 시부모, 친정하며 골 아프게 살지 말고.”
“네! 제가 그냥 잡혀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 그건 아주 잘 생각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신혼은 딱 3개월까지야 그 다음부터는 서로 노력하며 살아야 해. 알았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안다고? 벌써? 잘 안다고? 뭐지? 하긴 요새 아이들은 다 영리하니 그 정도는 알겠지.’
“저의 부모님께서 상견례 날짜를 빨리 잡자고 하시는 데요.”
“그래? 언제 쯤?”
“다음 주 쯤이요.”
“다음 주!”
“네. 결혼은 10월 말이나 11월 초면 좋다고 하시고 상견례 날 결혼 날짜 잡자고 하셔요.”
“그래, 알았다.”


언니에게 부탁해 궁합을 보고 결혼 날짜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언니는 궁합이 너무 좋고 소윤이가 크게 돼서 내가 덕을 본다고 사주가 너무 좋다고 잘 산다고 한다고 말했다.
‘흥! 내가 그년 덕을 볼 때쯤이면 다리에 힘이 없어서 아마 자리보존 하고 누워있을 지도 모르는데, 무슨 덕?'
어찌되었든,  딸이 결혼을 한다. 난 완전히 죽 쑤어서 개 준 기분이다.
아들 녀석도 누나를 빼앗긴 것 같아 서운해 하는 눈치다.
하긴, 내 사진은 괜찮다고 거절하고 지 누나 사진만 지갑에 넣고 다니며 자랑하는 녀석이었으니, 서로 둘이 챙겨가며 엄마처럼 자식처럼 살았으니 서운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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