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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00:19

23. 생의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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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생의 수레바퀴

  마음속에 묻어둔 상실에 대한 아픔은 어느 때인가는 충분히 애도를 해주지 않으면 여러 가지 변환된 모습으로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죽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된 견해이다. 어른들에게 닥쳐오는 이별이나 상실감은 우리가 속을 내보이지 않도록 교양을 쌓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깊이 느껴보는 과정도 없이 그냥 지나보냄으로써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쓰 퀴블러 로스는 1926년부터 2004년까지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았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쌍둥이중 제일먼저 세상의 빛을 본 900그램의 미숙아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알프스의 소녀처럼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꽃과 들판과 눈과 얼음을 즐기며 살았다. 집에서 기르던 토끼 레비키를 저녁식사용 스튜를 만들기 위해서 정육점에 갖다 주어야 했을 때, 눈물로 헤어졌고 그녀의 가슴처럼 쿵쿵 쾅쾅 뛰고 있는 토끼의 가슴을 느꼈다고 한다. 토끼를 땅에 내려놓고 도망을 가라고 큰소리로 외쳤으나, 토끼는 떠나지 못했다.

이 일은 그녀가 정신과 의사가 되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하와이에서 워크숍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어린시절  그날의 기억을 떠올라  통곡을 함으로써 그때 미처 다 풀어놓지 못했던 상실감을 겨우 내려 놓을 수 있었다.

퀴블러 로스는 우여곡절 끝에 의사가 되었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정신과 전문의가 된다. 그리고 우연히 유럽으로 휴가를 떠난 지도교수를 대신하여 강의를 맡게 된다. 그때 그녀는 병원의 기계성, 과학성, 객관성, 냉정성에 아픔을 겪는 환자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의과대학생들을 위한 강의에 죽어가는 16살의 환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준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될 사람들에게 생명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다.

입소문으로 알려진 퀴블러 로스의 관심은 결국 주위의 신학생들의 방문을 받았고 그들의 간절한 원에 의해 죽음 세미나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병원당국과의 마찰이 더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그러나 어린시절 자연과 동화되어 살았고 뛰어난 직관력으로 감정이입을 잘하는 퀴블러 로스의 재능은 그녀를 죽음학의 전문가로 일으켜 세웠다. 이 세미나의 과정과 함께 500명의 환자에 대한 인터뷰 기록이 1969년에 나왔다. 그 책이 바로 그 유명한 <On Death and Dying>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70년대에 이미 들어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도서관에서 퀴블러 로스를 검색했을 때 쏟아진 목록들을 보면 <죽음의 순간>,<인간의 죽음>,<죽음과 죽어감>이 모두 같은 내용의 책이다.

최근에 <죽음과 죽어감>을 다시 읽었고  또 그녀가 69세에 스트로크가 와서 부분 마비를 겪었고, 70세에 그녀의 일생을 기록한 이 <생의 수레바퀴>를 썼다는 것을 알았다. 자서전은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나에게 친구가 되는 지름길을 알려주는 현명한 안내자이다.  이미 읽었던 책들에 대한 이해도 사람을 알고 다시 읽으면 훨씬 더 깊이 이해가 된다.

어쨌든 이렇게 다시 탐색하게 된 퀴블러 로스는 몇해 전 <인생 수업>이라는 책으로  한국의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아마 집집마다 이 책 한권을 꽂아두지 않은 집이 없을 것 같다. 나도  크리스마스에 맞춰 나온 이 책을   입시가 끝난 청소년들에게 많이 선물했다. 이어 2007년에 나온 <상실 수업>, 이 두 책이 모두 이른바 중풍에 걸려 마비 환자용 침대에 누운채 제자와 함께 써내려간 그녀의 작품들이다. 물론 죽음학의 선구자로서 임종환자와 말기 암환자, 불치병 에이즈 환자에 이르기까지 무조건적인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살아온 그녀였지만 그녀의 생 또한 굽이굽이 역경의 인생이었다.

영혼의 세계를 탐구하던 끝에 만난 그의 영혼의 인도자는 그녀에게 “눈물의 강에서, 시간을 친구 삼아라”는 조언을 해준다. 그녀 앞에 놓인 험하고 어려운 길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녀는 놀라운 열정으로 위에 언급한 책 외에도 20권을 더 남겨두었다. 그리고 학술상을 가장 많이 받은 여성학자가 되었다. 모두 현장체험에 바탕을 둔 자료들이므로 매우 가깝게 와닿고 성찰을 하게 하는 자료들이다. 특히 어린이 환자들과의 사례를 다룬 책은 지금 이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공부가 될 것이다. 상실에 대한 감정은 솔직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에게서 그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유년기에 원하지 않는 이별과 상실에 직면하게 되지만 어떻게 그 어려움을 견디어 나가야 할 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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