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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11.06.10 17:42

파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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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무슨 말이니? 결혼을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각자 살다 일본에 간다고?”
“네.”
딸과 결혼한다는 녀석의 대답이다.
“왜? 왜 그래야 하는데?”
“저의 집이 돈이 없어요. 그래서 결혼하고 제가 한 달에 백만 원씩 모으고 있는 돈으로 일본에 가라고 하세요.”
“네가 올 3월 취직해 기숙사에서 숙식 제공에 월 180만원씩 받는 돈에서 100만원씩 저금하고 있는 그 돈 말이니?”
“네.”
난 말을 잊고 잠시 녀석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맷돌자루인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을 지금 이런 상황에 쓰는 말일까, 생각하며.
내가 다시 말을 한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이었다.
“돈이 없다니? 축의금도 들어오지 않니?”  
“그건 생각하지 말라고 하셔요.”
“그럼, 뭘 생각해야 하는데? 결혼식하고 신혼여행 갔다 와서 각자 살던 곳에서 살다 일본으로 간단 말이지?”
“네.”
“그건 처음 했던 말과 다르잖아? 그러려면 뭐 하려고 결혼하니?”

처음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아파트를 둘째 아들에게 주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큰아들과 함께 살기로 했다고, 내년 3월에 유학을 가니 날짜가 어정쩡해 지금 세 살고 있는 사람들을 기간 전에 내보내기도 그러니 일본 갔다 와서 살게 하겠다던 아파트를 가격이 자꾸 내려가 팔아서 빚을 갚는다고 했다는 말을 딸에게 들었을 때도 속은 상했으나 아이들을 봐서 꾹 누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 털고 뽑지 않고 잡아먹겠다고?)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찾아와, 부모님들께서 일본에 들어가 공부하면 결혼을 해서 가는 것이 좋겠다며 이왕 결혼을 할 거면 올해 자신의 아버지가 퇴직을 하니 퇴직 전에 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도 난 딸의 나이도 있고 해서 유학갔다 와서 시키는 걸로 작정하고 있었다.
나로선 전혀 계획은 없었으나 그쪽 분들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 않아 사정이 여의치 않는데도그러마하고 선선히 승낙 했다. 둘이 좋다는데 반대를 하면, 아이들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고 그러면 결국 상황만 안 좋아질 거라는 판단도 한몫 했다. 결혼 승낙을 하고 벼락 치듯 갑자기 3일 만에 날짜 잡아 상견례하고 그 자리에서 예식장 예약까지 마쳤다.


그리고 나서 말이 하나하나 달라져 갔다. 일본 들어가기 전에 잠깐 살 것이니 이천 만원에 월세를 살다 가게 하겠다고 했을 때도 처음과 말이 달라 탐탁하지 않았으나 아이들을 위해,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꾹꾹 참았다.
그런데 또 말이 달라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멸치같이 비쩍 마른 아들에 엄마라는 사람은 작고
유약해 보이고 순순히 모든 것을 허락하니 아주 쉽게 생각한 것 같았다.

(너희들 잘 걸렸다. 어디 맛 좀 봐라. 감히 마적단 딸을 건드려?)
아버지가 이승만 머리에 총부리를 갖다 대고 육군 준비 총사령관 직을 던져 버린
딸이란 걸 모르는 구만. 무조건 이게 아니다, 싶으면 대포를 쏘아댄다고 해서
박대포 딸로 불리며 자란 걸 모르는 모양이네.
황해도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얼마마 무대뽀인지 모르나 본데 어디 맛 좀 봐라.
이 사람들이 말뚝 박고 제대할 사람이라 그런지 세상을 모르네,
(진짜 깡패들이 우락부락한 것 봤니?
우락부락한 것은 양아치나 행동대원들인 깍두기들이야.
대빵들은 매너 좋고 최고의 신사들이야.
그런데 대신 건드리면 무조건 죽지.)

“각자 살다 갈 거면 뭐하려고 결혼은 하니? 그냥 약혼만 하고 가던지 해라.”
나로선 성질 꾹꾹 참고 약혼도 충분히 배려를 해 한 말이었다. 그랬더니 자기네들이 부모님과 함께 더 상의를 해 본다고 하고 가더니부모님들이 일본의 물가를 몰라서 그랬다며 이천 월세를 얻어 주시겠다고 했단다. 그래 아버지는 군인이라 그런다 치고 식당일을 30년 한 엄마가 일본의 물가를 모른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미 나는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너의 부모님들 이제 믿을 수가 없다. 자꾸만 말이 바뀌니 어떻게 믿겠니?”
녀석에게 한 마디 했다.
“어머니, 저의 부모님이 아들 결혼하는데 아무 것도 안 할 분들이라고 생각하세요?” 따지듯 물었다.
“지금 하시는 행동이 그렇잖니? 아무것도 하시지 않고 퇴직 전에 오직 축의금 받으려고 하는 걸로 보인다.”
정곡을 찔렀는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했는지 강하게 부정한다.
“아니에요, 어머니.”
“모든 걸 일본가는 것으로 떠밀고 정작 신랑 집 해야 할 것을 하시지 않고 말씀이 자꾸 달라지시잖아?”
“저 일본 안 가도 돼요.”
(이 녀석 봐라, 지금 말을 예쁘게 해도 될까말까한 상태에서 처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는데 이렇게 민감한 때 감히 장모 될 사람에게 따지듯 말대답을 해? 내 자식들도 그러지 못하는데 사위 놈이 감히? 넌 아웃이다.)
내 심사는 뒤틀릴 대로 뒤틀렸다.

양가 부모님 한복을 맞추러 토요일로 잡아놓고 그 때 서로 만나서 상의를 하는 것으로 약속을 해 놓은 상태였다.
딸에게 그때 데리러 온다고 전화가 왔다. 난 이미 속이 뒤틀릴 대로 뒤틀려 딸에게 그때 나갈 정도의 건강이 안 되니 내 한복은 있는 것 가지고 가서 치수 재서 맞추라고 했다.
"엄마가 마음 속이는 거, 못 하는 것은 너도 알지?
지금 상황에서 그쪽 엄마를 만나면
엄마도 어떻게 나올지 몰라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딸은 나의 성질을 잘 아는 터라 두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어디서 사위 될 녀석이 장모에게 따지듯
불손하게 대꾸 하냐며 나의 불편한 심기에 정직하기로 했다.

“엄마, 그애 말하는 스타일이 원래 그래서 내가 매일 고치라고 해. 그래서 처음에 많이 싸웠어.”
“말하는 스타일이 그래? 무조건 복종인 해병대를 나오고 상하관계가 뚜렷한 체육과를 나온 놈 말투가 그렇게 불손하다?”
“엄마가 그 애에게 유약한 녀석은 내 사위가 될 수 없다고 해서 엄마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더 그런 거래.”
“뭐야? 그 놈은 총을 어디다 쏴야 될지도 모르는 놈이니? 적군인지 아군인지 분간도 못하고 강하게 보이려고 무조건 아무 곳에다 총질 해대는 놈이니? 장모에게 나약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장모에게 말대꾸를 한다?”
“엄마, 그 녀석 바보야. 바보라서 그래, 아무것도 몰라.”
“바보야? 그러면 넌 왜 그런 바보와 결혼하려고 하니?”
두둔하다 결국 옷을 더 벗겨버렸구나, 싶었는지 딸년은 대꾸가 없다.
그리더니 옆에 있었는지 얼른 제 남자 친구를 바꿔준다.
“어머니, 저 영입니다.”
“그런데?”
“저의 말이 그렇게 서운하게 들리셨어요? 어머니 전 그냥 저의 의견을 말씀 드린 거예요. 절대 대꾸할 마음으로 그런 것 아니에요.”
그렇게 나오는데 화를 내는 것도 어른이 할 짓은 아니다, 싶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알았다. 그럼 너의 말을 믿고 없던 걸로 하겠다.”
“네 어머니 고생하셨습니다.”
(고생? 뭔 고생? 지금 내가 체육했니? 얘가 총 쏘는 방향 뿐만 아니라 말까지 분간을 못하는 구나, 에휴~)


“나 이 결혼 못 시킨다.”
결국은 나의 성질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 왜 그래?”
딸의 놀란 목소리가 전화통 속에서 울렸다.
“왜 그러냐고? 너 몰라서 물어? 내가 참고 참아 여기까지 왔는데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그 사람들 사람 잘못 봤다.
내가 무조건 네, 네, 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여서 함부로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나보다. 처음부터 그쪽 부모들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난 최선을 다해 탐탁하지 않아도 참았다. 네가 어디가 잘못된 바보니? 인물, 학벌, 능력, 직업, 모든 것을 보아도 다 너보다 못하고 오직 허우대만 멀쩡한 신랑이지만 난 참으려고 했다.

나도 고생을 한 사람이고 젊은 녀석이니 제 밥벌이는 하겠지, 하고 모든 걸 이해하려고 했어. 그런데 너의 시부몬지 뭔지 될 사람들이 하는 짓 꺼리를 봐라. 이 천에 월세를 사는 결혼, 딸이 모자라지 않은 이상 그런 결혼 시키는 사람 없다.

그런데 그것도 안 쓰려고, 녀석이 모은 돈 천 만원 가지고 일본가라? 네가 거지냐? 거지 며느리를 들여도 난 그렇게 하는 사람들 못 봤다. 그 사람들 최소한의 예의도 안 갖춘 사람들이야. 난 그런 사람들과 사돈 맺을 생각 없다. 네가 어디가 못나서 그런 결혼을 해서 왜 유부려란 꼬리표를 붙이고 가야 하니?”

“엄마 왜 그래? 그 분들 그런 사람들 아니야. 그러니 만나봐.”
딸은 애걸복걸을 한다.

“내가 안 만나봤어? 만나면 살살 다른 말 하다가 또 바뀔 터인데 뭐하러 만나? 그동안 너를 봐서 열두폭 치마 속에 감추 듯, 이리 참고 저리 참고 꾹꾹 참았어.
만일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하나라도 나은 점이 있었다면 난 절대 참지 않았을 거다.

퇴직하기 전에 결혼시켜야 한다는 점 조차,너를 이용하는 것 같았고 계산적이라 내키지 않았지만 그쪽 입장을 생각해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했어. 엄마도 고생하고 산 사람이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꾹꾹 참았어.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한 가지도 나은 점이 없어 약자라고 생각해서 참은 거야!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치사한 짓이 없기 때문에, 그쪽은 어떤지 모르지만 모든 점에서 나은 우리쪽이 강자라고 생각해 참은 거야.

그러니까 내가 자기네들을 대단하게 생각한 모양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저희들 기준으로 생각한 거겠지만 생각 잘못 했어. 그렇게 좋게 이해하고 꾹꾹 참은 내 성질을 건드려? 너 엄마 성질 몰라? 난 약자에겐 약하지만 그렇게 치사하게 나오는 인간에겐 목숨 대놓고 달려들어. 너 잘 알면서 왜 그래? 이젠 절대 안 돼. 이제 일억을 가지고 시킨다고 해도 난 절대 안 시켜.

솔직히 말해 이천이 아들 결혼 시키는 사람들이 생각할 돈이야?  칼만 안 들었지 강도 아니야? 네가 겨우 그 정도 밖에 안 돼? 자기들 아들이 그렇게 잘났어? 뭔가 아주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그것들 이제 아웃이야!!”
나는 내가 한 말에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회사 끝나고 늦게까지 양쪽 집 다니며 중재하느라 이리저리 신경 써서 위궤양까지 걸리고 지금 미칠 지경이야. 힘들어서.”
“네가 왜 그렇게 힘들게 중재하고 다녀? 뭐가 아쉬워서?
너 유학하고 오면 교수가 강사 시켜주고 너 대학교수 된다며? 그런 네가 뭐가 아쉬워? 아무리 고대라고 해도
고대도 고대 나름이지 스포츠 의학과 나와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아들인데 뭐 그리 유세를 부려?
지네들이 의대를 나왔어?
판 검사라도 돼?
무식한 사람들이 '의학' 자 들어가니 다 의사인줄 아는 모양인데 착각하지
말라고 그래, 너 엄마가 아파트 한 채 날리고 키운 년이야! 그런 딸을 손도
안 대고 코풀겠다? 털도 안 뜯고 잡아잡수시겠다? 이제 중재하지 마,
엄마가 직접 말할 거니까!”

“엄마 제발 그러지마, 나 예쁘게 결혼하고 싶어, 우리들은 아무 문제없어. 제발 그 분들 한 번만 만나봐, 절대 그런 분들 아니야.”

“야! 너 정신 안 차릴래? 상견례 때 만났잖아? 뭘 더 만나?
그래, 너희들은 아무 문제없지! 너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고 싶은 것 다
사고 명품으로 둘둘 감고 다녔어! 심지어 한국에 없으면 해외 사이트에 들어가서 주문하는 년이야!
네 마음껏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갖고 싶은 것 다 가지며 살았는데 뭐가 문제가 있어! 그런 네 년이 현실을 알아?  
배 고픈 걸 아냐고!!! 배 고프면서 어떻게 예쁘게 살아!!
사랑은 삼개월이고 그 다음은 현실이야 이년아!!
제발 정신 좀 차려!

그 사람들이 지금 엄마에게 다 떠넘기려고 하고 있잖아? 네가 그렇게 소중하게 키운 딸 고생하는 것 보겠냐? 그러니 네가 다 할 거다, 라는 심뽀로 하는 행동이 아니면 뭐야?
너 결혼 하면서까지 엄마 그런 봉 취급 당하게 할래?
형제들에게 한 것도 지긋지긋한데 그것도 모자라 너까지 이러는 거야!!!
아파트 한 채 날리고 그렇게 키운 딸년을 한참 떨어지는 신랑에게 보내는 것도 지금 꾹꾹 참고 있는데 뭐? 이천? 이천에 월세? 그래, 내가 그것도 참았다. 그런데 이제 그것도 못 하겠다? 그 사람들 사람 잘못 건드렸어!”

“엄마, 그렇게 오해하지 말고 제발 그분들 만나봐 나 정말 예쁘고 행복하게 결혼하고 싶어.”
“행복? 예쁘게? 그래 좋다!
예쁘게 결혼하고 나서 너 어디로 들어가 행복할 건데?
네가 거지같이 결혼 한다고 했던 엄마 친구 아들도 거지같이 일산에 일억 오천에 전세 들어갔어.
예쁘게 결혼한  넌 어디로 가서 행복할 거냐구?
너희들은 문제없다?
당연히 그렇겠지!
지금까지 돈 한 번 벌어보지 않고 엄마에게 타 쓰고 살았으니 네가 현실을 모르는데, 네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랑?
그 사랑 딱 삼 개월이야. 그리고 그 다음은 현실이야.

현실은 곧 경제력이야, 돈보다 더 힘센 남녀의 사랑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난 반세기를 살면서 돈을 이기는 남녀의 사랑 못 봤어.
사랑도 문풍지가 뚫려 있으면 그 구멍으로 새어나가!!
그게 현실이야 이년아!!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영악스러운데 넌 왜 그렇게 바보니!!”

“엄마, 우린 정말 잘 살고 싶어.”
“누가 아니래? 엄마가 너 잘 살게 하려고 이렇게 몸부림 치는 거야! 잘 살고 싶겠지, 지금은 잘살 것 같지. 그래, 네 원대로 신랑 70만원 짜리 벨트에 구두 70만원에 시어머니 밍크에 명품 빽에 지갑에 쇼핑하고 사고 다니니 막 잘 살 것 같고 사는 게 신나지? 이제 결혼 끝나고 삼 개월만 살아봐. 그 신나는 마음이 과연 그때까지 가는지.”

“엄마 제발.”
“그만 닥치지 못해!!
그 사람들이 날 바보라고 보고 기고만장 하나본데 그럴수록 미안해하고 예의를 지켜야지, 어디서 이따위 짓거리를 해!
이천? 네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가 삼천이야!
차라리 자동차 안에다 신방을 차리는 게 낫겠다!
자동차 값보다 싼 집에서 월세로 신혼살림 하겠다는 넌 넋 나간 년이야!
너 정 결혼이 하고 싶으면 자동차 팔아서 결혼해!

그 녀석 저의 집에 돈 없다고 하고, 네가 자동차 팔아서 혼수에 보태자고 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그 차가 제차야?
그리고 너 일본 못 보내. 보낼 돈이 없어.
우리가 돈을 싸놓고 사는 줄 아나본데, 빚이 삼억에 부동산 밖에 없어!
부동산을 떼어 먹니?
너 일본 가면 한 달에 오는 생활비에서 백 오십이 줄어드는 거야.
엄만 그것까지 감수하고 들어갔는데, 그 뿐인 줄 알아?
일본에서 들어가는 생활비에 학비에, 엄마도 돈이 없어.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돈을 쌓아두고 너 공부 시키는 것 아니야.
다 자식을 위해서 무리해 가며 공부 시키는 거야.
그런데 이제 그 분들은 쪼들리며 살고 싶지 않다고?
편히 살고 싶다고?
아들 나에게 맡기고 아파트 팔아 융자 갚고 편히 살겠다 이거지?
엄마도 편히 살고 싶어.
이제 자식 때문에 무리하고 싶지 않아.
엄만 능력이 있어 너에게 그렇게 한 줄 알아?
다 무리해서 한 거야. 그런데 무리를 하지 않겠다?
나도 무리하고 싶지 않아 엄마도 편히 살고 싶어. 그러니 그런 줄 알아.”
“알았어. 그럴게.”

“그리고 너 그렇게 이 거지같은 결혼 밀고 간다면 좋아, 엄마 너 결혼식 날 목 매달고 죽어서 너에게 영원히, 아주 잔인하게, 평생 고통받게 복수할 거야.
너 엄마 사는 거에 미련 없는 거 알지?
너희들에 대한 책임 때문에 살고 있는 것 알지?
엄마가 하면  한다는 것도 알지?”

“엄마, 나 엄마 딸이야. 정신 좀 차려, 제발, 제발, 부탁이야.”
“나 지금 가장 정신이 멀쩡해!
이제야 멀쩡해졌어.
그동안 너를 위해 정신 빼놨어.
딸이니까 목 매 달겠다는 거지! 내가 아무에게나 목 매달아?

나도 속물이야.
그렇게 키운 딸 그런 식으로 결혼 시킬 부모가 어디있어?
엄만 이제 절대 못 해!
이제 일 억을 가지고 집 얻고 결혼 시킨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과
사돈으로 얽히고 싶지 않아.

내가 그런 사람들 질리고 이가 갈려 산속에 들어와 사는데
그런 사람과 사돈이 돼서 평생 산다?
생각만 해도 싫다!
이제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
엄마야 말로 이제 그런 인간으로부터 자유스럽고 편하게 살고 싶다.
“알았어. 그럼 내가 사라져 줄게. 안녕.”
(흥! 미친년 내가 그런다고 무서워 할 줄 알아? 너도 엄마 한참 잘못 봤어!)

조금 후 남자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 소윤이와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소윤이가, 도저히 결혼 안 되겠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사라졌어요.”
“그래? 죽으러 갔나보지, 그냥 놔둬. 결혼 못해 죽을 년이면 죽어야지.”
“그래도 찾아봐야지요. 걱정돼서 죽겠어요.”
“걱정하지 마, 명은 하늘에 달렸어. 명이 그것 밖에 안 되면 어쩌겠니. 그런데 넌 지금 어디에서 찾고 있는데?”
“소윤이가 가끔 혼자 있고 싶다고 할 때 잘 가는 한강에 있어요.”
“소윤이가 차 몰고 갔니?”
“아니요. 차가 집 앞에 있어서 제가 몰고 나왔어요.”
“그럼, 걸어갔나? 걸어갔으면 아직 한강 못갔지, 물에 빠졌나, 물 속 찾아 봐.”
“그렇지 않아도 지금 찾고 있어요.”
(얼씨구! 정말 바보 맞나?)

“물에 빠졌으면 네가 어떻게 찾아? 잠수부가 찾아야지! 그리고 물에 빠졌으면 아직 떠오를 시간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떠오를 테니 기다려. 아니면 뉴스에 나오겠지. 그런데 죽어도 아마 물에 빠져 죽진 않을 거야. 한강에 빠져 죽으면 환경오염으로 벌금 내야 한다는 것 알고 있으니까.”

딸년의 회사로 전화를 걸어보니 점심 후에 조퇴 했다고 한다. 전화를 걸어보니 꺼져있다. 이제 슬슬 나서야겠다. 난 녀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저 소윤이 엄마입니다. 결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드렸는데 전화 받기 괜찮으신지요?”
목소리가 예전과 다르게 딱딱하다.

“네, 괜찮아요.”
“그럼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이들 말을 들으면 도저히 뭐가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직접 전화 드렸어요.”
“잘하셨어요.”
“아이들 말이 결혼 끝나고 각자 살다 아드님이 저금한 돈 가지고 일본 간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굳이 결혼할 것 도 없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전화가 저 쪽에서 웃는다.
(웃어?)

“그것은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의지를 하지 말고 독립하라고 한 소리였어요. 사실 아이들이 달라는 대로 다 줄 수는 없잖아요.”
“네 그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결혼은 인륜지 대사이고 독립하려고 결혼하는 건데 아이들에게 독립하라고 그랬다는 뜻은 제가 머리가 나쁜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우리 만나서 얘기합시다. 아이들 편하게 해 줍시다. 따님이 장녀라 더욱 의지하고 사셨으니 더욱더 걱정이 많으실 턴데 고생 안 시킬게요.”
(고생을 안 시켜? 그런 인간이 지금 이 따위 행동을 해? 미안하지만 당신들 말 이제 안 믿어)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의 쪽에서도 계획을 세워야 하니까,
이제 사돈관계가 된다면 평생을 봐야할 건데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살 집으로 얼마를 생각하고 계신지요.”
"그게 일본에 언제 가나요?"
"일본에 가고 안 가고에 따라 집이 차이가 나나요?"
“아니, 소윤이 엄마가 이천을 가져오라고 했다면서요?”
(내가 이천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고? 이제 그렇게 말을 바꿔? 그래서 큰 소리 치시고 주시겠다고? 아이쿠, 고마워라, 고마워서 어쩌나,  아주 큰 돈 주시고 선심 쓰시네)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소윤인 저와 얘기하다 죽겠다고 나갔습니다.”
“아이고, 우리 며느리 죽이지 마세요.”
또 웃는다.
(당신 며느리? 넉살도 좋다. 그렇겐 안 될 걸. 당신 그러다 아주 아들 빼앗기는 수가 있어.)

조금 후 문자가 들어왔다. 아마 소윤이에게 한 문자인데 나에게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소윤아 대화로서 못 풀 일이 어디 있겠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연락은 해라. 다들 걱정하잖니. 난 몸이 많이 아파 병원 갔다 와 집에 있다.  연락 기다린다. 소윤아.’
(이렇게 살갑게 했으니 그년이 훌떡 넘어가지. 대화? 대화 좋지. 하지만 돈이 대화로 만들어지나?)
난 문자를 다시 넣었다.

‘어머님, 소윤이 엄마입니다. 소윤이에게 하신 문자가 제게 왔습니다.
소윤이 찾지 마십시오. 버릇됩니다.
결혼을 못해 죽어야 한다면 죽어야지요.
저 편하게 산 사람 아닙니다.
그리고 자식 의지하고 살지 않았습니다.
자식에게 의지할 정도로 나약하게 살았다면 지금의 전 없었을 겁니다.
죽는 것에 벌벌 떨고 자식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에 걱정하고 벌벌 떨었다면 지금 제가 여기 있지 않았을 겁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전 사는 것에 미련 없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이유는 오직 아이들에게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죽는 것이 두려우면 여기 산속에 혼자 살지도 못했겠지요.’
그렇게 문자를 보냈다.

밤 9시가 넘어서 그쪽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소윤이 어머니, 걱정도 안 되세요?”
“안 됩니다.”
“아니 그래도 자식이 연락이 안 되고 들어오지 않는데.”
“죽었다면 명이 그것밖엔 안 되고 제 책임이 하나 덜어진 거겠지요.
사는 것이 어렵지 죽는 것은 5분만 고통스러우면 됩니다.
우울증 약을 집어 삼키면 더 편하게 끝나지요.
결혼을 못해 죽어야 한다면 죽어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네가 결혼을 고집한다면 차 팔아 결혼해라. 그리고 일본 못 간다.
나도 한 달에 150만원씩 생활비가 줄어드는데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

그래도 굳이 결혼을 하겠다면
결혼식 날 목을 매고 자살을 해 평생토록 영원히
괴롭고 잔인하게 복수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라진 거예요.
소윤인 엄마가 그런다면 그렇게 할 사람이란 걸 압니다.
누구보다 저를 잘 알지요. 함께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결혼 저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아무 반응이 없다.  
“어머니도 다시 생각해 보세요. 이만 끊겠습니다.”

(이 사람들아! 그러니까 구렁이를 왜 독사로 만들어?)

다음 날 아침 문자를 했다.
소윤이 보아라.
네가 살아있다면 이 문자를 보겠지,
죽었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하지만 네가 죽었다고 해도 나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
난 너를 최선을 다해 키웠고 내 모든 것을 다해 키웠다.
네가 원하는 것이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 들어줬다.

왜?
사과가 먹고 싶어 너를 낳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나의 결정에 책임을 다 하려고 살아있는 것이다.
엄마가 살아있는 이유는 오직 그것 하나라는 것을 잘 알 거다.
엄마가 피로 범벅된 대소변을 쏟으며 온 몸이 스트레스로 괴물처럼 퉁퉁
부어가면서 죽음까지 각오하고 너희들의 호적과 너의 아빠에게
유언장을 만들게 했다.

엄마가 자식의 결혼식 날 목을 매달겠다는 극언까지 한 심정을
너는 영원히 모를 거다.
엄마가 어떤 심정으로 이를 악 물고 하루하루 버텼는지도.
엄마가 누누이 일러주었는데도 넌 엄마의 말을 안 듣고
아주 어리석은 짓을 했다.

네가 일본의 건물이 없다면,
네가 차를 몰고 있는 집 자식처럼 보이지 않았다면,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없었다면 과연 그 집이 큰 아들까지 제치고
결혼하자고 나왔을까.
그래, 거기까진 나도 이해한다.
나도 속물이긴 마찬가지니까.

엄마가 고생을 했기 때문에
자식 만큼은 돈이 들더라도 전문적인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많은 돈을 들여가며 두 자식을 다 전문직으로 공부를 시킨 엄마가
신랑이 될 사람의 직업이 전문직은 커녕 계약직이여도 감수했다.
사람만 착하고 정신만 바로 박혀 있으면 된다.
젊으니까. 무엇이라도 해서 먹고 살겠지. 나도 고생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엄마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너의 시집 될 사람들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사람이 좋게 나오면 고마워하며 더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았다.

난 이천만원에 널 결혼시키려고 그 고통을 감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널 위해 참았다.
너 만이라도 돈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어렵구나.
역시 돈은 남녀의 사랑보다 힘이 세구나.
네가 사랑하는 남자의 엄마가 너의 사랑을 짖 뭉개고 이긴 거야.

그런데 오직 '사랑 밖엔 난 몰라' 며 사랑만을 고집하다 살다 가신
너의 외할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사랑만을 외친 너의 이모들이 지금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보면 알 것이다.

그 사랑이 주위에 모든 사람을 힘들게 했어.
아니, 모든 사람이 아닌 엄마를 힘들게 했다.
엄만 고생이 지긋지긋해 오직 돈 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돈에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을 사랑만을 위해 산
너의 이모들을 도우며 사는 것이라 생각했지.

네가 언젠가 물었지?
엄만 누구나 가는 남산도 왜 가 보지 않았냐고?
남산은 데이트 장소지.
엄만 데이트를 하지 못했어.

왜냐구?
너의 할머니 같이, 이모들 같이 살고 싶지 않아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자식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뼈져리게 경험했으니까.
엄마도 솔직히 너희들이 이기길 바랬다.
하지만 결혼이 너희들만의 사랑이 아닌, 집안과 집안 과의 결합이라
사랑 만을 고집하는 너희들의 손을 잡아주긴 힘들 것 같다.

역시 자본주의 안에서 사랑은 무력하고
사람은 이기적이 되고 노예가 되는구나.
돈 앞에서 사랑은  약자다.

네가 슬프듯
엄마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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