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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9 07:15

22. 점선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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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점선뎐!

  화가 김점선은 2007년 난소암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하는동안 이제까지 그녀가 쭉 써온 글을 출판하자고 준비하던 출판사 사람들을 만났다. “책제목을 뭐라고 할까요?” 파도치듯 정신이 들락거리는 중에 그녀가 비장하게 말했다. “점선뎐! 이책은 나의 전기다. 이제까지 낸 책과는 다르다.” 어릴 때 외할머니의 방에서 본 여자들의 전기 옥단춘뎐, 숙영낭자뎐..이 떠올랐던 것이다.

  김점선은 “각자의 삶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답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싸웠다. 서른 즈음에 그녀는 결혼을 했다. 결혼 후 한 4년쯤은 남편과 생명을 건듯 싸웠다. 그러나 아들이 생기자 남편은 아들을 몹시 사랑하고 그 아들의 성장에 보람을 거는 아버지가 되었다. 어디든 함께가고 그녀가 그림을 그리느라고 바쁜동안 그들은 함께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헤엄치고 여행을 했다. 아이가 자라나자 엄마가 물었다. “넌 커서 화가가 되고 싶지 않니?” 아들이 대답했다. “엄마처럼 그림 그리는 일이 좋긴한데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고 매일 그림만 그리는 생활은 못참을 것 같아.”

그녀는 한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모든 자료를 통해 환히 알게된 그의 일상은 잠과 그림이었다. 고흐는 한창 때 1년에 200여점의 유화를 완성했다. 사흘에 두점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연필그림도 그렸을테니까 고흐의 매일매일은 결국 잠과 그림뿐이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의 삶은 인사치례나 친선방문, 취미 도락 여행 같은 것들이 끼어들 수조차 없이 그림과 잠으로 꽉 차 있었다. 그녀도 고흐처럼 몰두해서 살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무례하고 무자비한 잠과 그림뿐인 세계로 나아가겠다고.....

그녀도 젊은 날 한때 가난에 찌들어 살며 낡은 옷을 걸치고 먹을 풀을 뜯으러 산을 헤매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무명작가의 튀는 그림을 미친사람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오빠들을 위해 11벌의 삼베옷을 짜는 동화 <백조왕자>의 공주처럼 말없이 작업을 했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내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오로지 내 속의 나침반만 바라보면서 , 내 감성이 이끄는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길이 열릴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침묵속의 몰두, 그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그림은 전혀 시적이지 않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을 닦달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려대고 우울하고 찌뿌둥하고, 무거운날 나는 한없이 잠자고 싶은 욕망에 잠긴다. 그럴때 나는 잠들지 않는다. 나는 나자신이 잠들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전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때도 그림을 그린다. 나는 등산하듯이 그림을 그린다. 산길을 잠든 채 걷듯이 그림을 그린다. 나 자신이 지탱하기 힘들만큼 무겁게 느껴질 때도 그림을 그린다. 무겁고 큰, 성질 사나운 황소를 몰아가듯이 나는 나자신을 몰아갈 뿐이다.”

화가 김점선은 오리를 무지하게 좋아했다. 치과에서 돌아올 때면 더더욱 오리가 되고 싶어 했다. 오리는 이빨도 없고 아무거나 먹고 이도 안 닦고 그냥 자도 되고, 헤엄도 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매일 물속에서 노니까 목욕탕에 안다녀도 되고 급하면 날기도 하고....이가 아프고 깊은 물이 무서울 때마다 오리가 되고 싶어 했다.
좀 커서는 오리가 아름다워서 좋았다. 그 선이 미끈하고 좀 둔하고 튼튼해서 좋았다. 다른 새들은 연약하고 가볍고 만지면 죽을 것같이 위태롭게 보이는데 오리는 궁둥이를 퍽퍽 때리고 내려놔도 금방 씩씩하게 달려가는 게, 꼭 실컷 매를 맞아도 튼튼하게 살쪄가면서 사는 나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그녀의 그림엔 오리가 많이 나온다.
그렇게 좋아하는 오리를 안고 이제 그녀는 하늘나라를 거닐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유언장이다.

나는 너무나 엄정하게 아들을 대했기 때문에 특별한 유언장이 없다.
줄기차게 칭찬, 숭배, 예찬 일변도로 그를 대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생활하는 관찰자로서 그를 칭찬했다.
나로부터 개선된, 진화된 생물체로 태어난 미래의 인간으로서 숭배했다.
인류의 휼륭한 유전자를 그대로 보유한 미래 세대의 구성원으로서 예찬했다.
나는 인류문명의 발달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인류의 미래를 가슴 벅차게 기대하는 사람이다.
아들이 기억하는 나의 모든 순간이 유언장이 될 것이다.
그의 장점을 혹시 그가 잊을까봐 늘 깨우쳐주려고 노력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를 칭찬할 거리를 만들고 찾았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 세상에서 내가 낳은 아이를 제일 무서워하면서 살았다.혹시 그에게 내가 나쁜 영향을 줄까봐 평생을 긴장하며 살았다.
아들을 비웃거나 빈정거린 말을 한 기억이 없다.
그런 정신 상태에 잠긴 기억도 없다.
나의 아들은 기억 속의 나를 종종 추억하면서 웃기만 하면 된다.                

                
나는 그녀의 자서전 <점선뎐>을 읽으며 하루 종일 그녀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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