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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11.07.04 20:53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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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녀석이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섰다.
“얼굴이 왜 그러니?”
“응……”
말끝을 흐린다.
언니가 낳고 거두지 못해 친정에서 키운 아이다. 그래서 내가 키운 것이 되어버린 아이다.
“이모, 나 영희와 이혼할까봐”
“왜 또?”
이번까지 벌써 세 번째로 나온 소리다.
“이제 정말 싫어.”
“야, 사랑해서 사는 부부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사랑은 60일까지고 60년 동안은 의무와 자식의 대한 책임과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인 체면으로 사는 거야. 그리고 막상 이혼해도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고 그 인생이 그 인생이기 때문에 다 참고 그냥 삼시 세끼 밥 먹듯이 사는 거야.”
그렇게 해서 돌려보낸 것이 여러 번이다. 그런데 이번은 다른 때와 좀 다르다. 여자의 직감이랄까, 이 녀석이 누가 생겼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금 이혼하겠다는 내 조카의 결혼은 참 드라마틱하다.
1993년도니까, 20년이 다 되어가는 얘기다.
그해 여름, 난 아이들을 데리고 강릉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막내 동생에게서 내가 묵고 있는 숙소로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언니 영희가 아이를 낳았어!”
“뭐라고! 아니 어제만 해도 나와 같이 있던 아이가 갑자기 무슨 아이를 낳았단 말이니?”
조카가 자신의 여자 친구라고 인사를 시킨 후, 종종 집으로 놀러왔던 아이다. 휴가를 떠나기 전 날에도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때만 해도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무슨 아이를 낳았단 말인가?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과 휴가를 떠나고 조카와 여자친구가 TV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서 조카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다 막내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막내 동생은 큰일이 난 줄 알고 부랴부랴 와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아무래도 산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출산을 한 경험이 있는 동생은 금방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으로 가면서 물었다고 한다.
“너 혹시 지금 임신했니? 지금 진통하고 있는 것 아니야?”

그랬더니 배를 잡고 신음하면서도
“아니에요, 이모님.” 이라고 대답하더라고, 병원을 가면서도 끝내 진실을 말하지 않더라고 대단한 아이라고 하면서 흥분한 동생의 목소리가 전화기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결국 남자 아이를 분만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 아이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엄마가 와서 딸이 아이를 낳은 것을 보고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고 조카는 조카대로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려는 것을 막내 동생이 “네 자식까지 너처럼 아버지가 버린 아이로 키울래?” 라고 악을 써 잡아 놓았다고 한다.

난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제까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밥을 먹던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니? 그것도 병원까지 가면서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 때다니?
그러고 보니 언젠가 조카가 한 말이 생각났다
“이모 영희 정말 살이 쪘어.”  
“무슨 영희가 살이 쪄?”
“아니야, 배가 얼마나 살이 쪘다고, 배를 눌러보면 딱딱해서 손가락이 들어가질 않아.”
“그건 정상이 아니다. 무슨 살이 어떻게 쪄서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아?  그거 병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아가씨들도 자궁근종이 생긴다고 하더라. 그러니 어서 빨리 병원 가보라고 해.”

조카가 인물이 훤하다 보니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 언젠가 그 아이가 놀러왔을 때 조카가 없었다.
“어쩌니? 지금 조카가 없는데?”
“괜찮아요. 이모님. 올 때까지 기다리지요, 지금 여자 만나고 있을 거예요.”
“뭐라고? 그런데도 너 괜찮아?”
“괜찮아요. 실컷 만나보라지요.”

그 땐 속이 넓은 건지 이해심이 많은 건지 뭐 저런 아이가 다 있나, 했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뱃속에 핵폭탄을 키우고 있었으니……그런데도 어린 처녀가 참 배짱도 좋다, 우리 같은 사람은 열 명도 찜 쪄 먹을 수 있겠구나,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난 동생들에 이어 조카며느리까지 산후조리를 해 줘야했고 조카는 스물 한 살에 애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몇 년 후 둘째 아들까지 얻었다.

그런 사연을 가지고 태어난 첫째 녀석이 지금 고 3이니, 조금만 있으면 이십 년이 된다.

내 직감이 맞아 떨어져 그렇게 애 아비가 된 조카가 바람이 났다고 울고불고 해서 내 딴에는 생각한다고 너도 평생 직장이다 생각하고 네가 가면 어디  가겠니, 하는 마음으로 푹 퍼지지 말고 살 좀 빼고 좀 긴장하고 살라고 했더니 그게 화가 났는지 갑자기 울다 말고,
“이모님도, 살이 너무 찌셨어요. 좀 빼셔야 해요.”
아니, 지금 내 남편이 바람 났나?

“얘, 9키로 밖에 안 쪘어. 나 지금 49K야. 내 나이에 49K면 날씬한 거야! 물론 밥 먹으면 50K지만……”
“그럼 10키지요!! 10키로가 ‘밖에’ 예요? 쌀이 반 가마예요.”
속을 긁어 놓았다.

밉다니 도리질까지 한다고 한 숱 더 떠,
“날씬한 것도 키에 따라 다르지요. 이모님은 키도 작으신데 10K면 엄청난 거지요.”
“작긴 뭐가 작아? 너와 같잖아. 넌 몇 킬로인데?”
“전 요즘 5k나 말랐어요.”
“그래서 몇 k냐구?”
“좀 더 빠져야 해요. 55k예요.”

지금까지 측은하다는 생각이 다 날아가 버렸다. 내 딴엔 내 나이에 이 정도 몸무게면 괜찮다고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 자부심을 완전히 짓밟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모님, 지금 사귀시는 남자친구 연하세요?”
“뭐라고?”
밉다밉다 하니 밤중에 갓 쓰고 나온다고 내 참!

“주름이 하나도 없으시고 피부도 뽀얗고 연하 같아요.”
“난 연하 안 키워! 그리고 그 사람 피부가 뭐가 좋아? 피부는 내가 더 좋지!”
“아니에요. 정말 피부 좋으세요.”
“애,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봐라. 그 사람 피부가 좋나, 내가 좋나, 그리고 그 사람 피부가 뭐가 뽀얗니? 빨간 피부지!”
“아니에요! 주름도 없고 피부가 정말 윤이 나던데요”
“주름은 나도 없어!”
“에이! 이모님은 웃으실 때 주름 있잖아요.”
“그 사람은 웃을 줄 몰라서 주름이 없어. 원래 감정 변화가 없는 사람이야. 이마엔 주름 있어.”
“이마에도 이모님보다 주름이 없던 것 같은데……”
갑자기 열이 나 에어컨을 켰다.

이년이 정신이 나갔나? 지금 덕담을 해서라도 제 편을 만들어야 할 판에…… 아무리 그래도 네가 조카 이혼시키겠느냐, 는 생각에 마음대로 떠들고 있구나. 제가 누구 때문에 버림 받지 않고 누구 때문에 결혼을 하고 살았는데…… 괘씸한 것 같으니. 이러니 조카가 이혼 한다고 나오지. 하지만 이혼하라고 부추길 수는 없다.

조카를 앉혀 놓고 물었다.
“너와 사귀는 여자가 누구냐?”
“이모는, 내가 누구를 사겨?”
“이 녀석아! 귀신을 속이지 이모를 속여? 어서 털어놔!”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멋쩍게 웃더니,
“35살 아가씨야.”
“그 아가씨가 너와 산대?”
“나와 살긴 누가 나와 살겠어. 그냥 사귀는 거지.”
“그럼 넌 뭐야? 결혼도 안 하면서 이혼은 왜 해?”
“영희가 만나지 말라고 하는데 어떡해?”
“이 바보 녀석아 바람을 피려면 감쪽같이 완전범죄를 하던지,
그렇게도 못 할 녀석이 바람은 무슨 바람이야.
그러다 너 잘못하면 낙동강 오리알 돼. 제발 이모 좀 그만
괴롭혀라.”

“이모, 미안해.”
“나도 영희가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야, 네가 엄마가 너를 키우지 않았다고 시어머니를 없는 셈치고  너를 무시하고 모든 친정 일에 무조건 끌어다 너를 노예처럼 일을 시키는 것을 보고 나도 괘씸해서 언젠가 한 번 얘기는 하려고 했어. 그렇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야지, 첫 아이는 내년에 졸업하면 다 컸다고 해도 막내는 아직 중3 사춘기인데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좀 참아. 지금은 죽을 것 같아도 참으면 또 참고 살아져, 그게 인생이야.”
“이모, 난 영희가 정말 너무 싫어!”
“싫지! 나도 싫은데! 하지만 참아, 참고 살아. 자식을 위해서라도.
좋아서 사는 사람 없어.”

녀석이 고개를 푹 숙인다. 평소에 순한 사람들이 그렇듯 순한 녀석이지만 한 번 뿔이 나면 고집이 황소보다 더 한 녀석이다. 그것을 잘 알면서 녀석의 성질을 건드리지 말고 살살 잘 타일러서 일을 마무리하지, 이 년이 또 저 잘났다고 방방 뛰며 차를 이 잡듯 뒤집고 도망 갈 구멍도 없이 아이를 코너로 몰아넣고 난리를 치고 숨통을 죄었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지혜롭지 못하고 경망스러운 년 같으니……

다음에 조카 며느리를 불러다 앉혔다.
“네 남편이 엄마가 기르지 않았다고 해도 죽은 것도 아니고 네 시어머니가 재가를 해서 지금은 혼자가 돼서 살고 있으면 전화 한 통이라도 해야지, 지금까지 전화 한 통 없이 살면 넌 잘못한 거야.”
“그래도 아버님 제사는 제가 지내요.”
“당연하지. 네가 큰 며느리인데 아무리 제 애비가 아들을 버렸어도 제사는 지내야지. 그렇게 하는 게 너 잘 사는 거야. 그건 참 고맙고 잘하는 일이다. 그런데 시어머니께 전화 한 통은 드리고 서로 인사는 하고 지내야 하지 않니?

네 남편을 키우지 않은 것은 네 남편과 우리 형제와 네 시어머니 일이지, 너와는 상관없는 일 아니야? 시어머니가 네 남편 키우지 않아서 네가 피해 본 것 있니?
시어머니가 너에게 밥을 달라고 하던? 돈을 달라고 하던? 그리고 이젠 남편 없이
혼자 된 네 시어머니와 네 남편이 엄마네 집에 왔다 갔다 하는 건 막지 말아야지.
왜 네가 그걸 막아? 자식과 부모는 핏줄로 이어진 사이야, 남편과 아내는 헤어지면 남이지만 자식과 부모는 그럴 수 없어. 너도 자식을 키우니 그건 알 것 아니니?

그렇다면 며느리로서 인사는 하고 네 도리는 하고 지내야지. 시어머니가 재가해서 난 아이들과 네 남편이 만나는 것조차 막고 네의 친정으로만 돌게 하면 결국 그 결과는 너에게 화살로 돌아가게 돼. 부모 자식은 하늘이 만들어 놓은 인연이야. 결코 남이 될 수 없어.

그리고 아빠가 다르고 엄마가 같은 형제도 형제는 형제야. 왜 그 형제들끼리 만나는 것까지 막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니? 넌 헤어지면 남이야. 하지만 부모 자식과 형제는 핏줄로 이어진 사이라 절대 남이 될 수 없어.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넌 또 언젠가 헤어지네 마네 하게 될 거야.

핏줄로 이어진 관계를 네가 떼어 놓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걸 거슬리고 네가 잘 살 수 있을 것 같니? 시어머니를 네 편으로 만들어 놓아야 이럴 때 네 편이 돼 줄 것 아니야?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인사 다니고 서로 왕래하며 지내도록 해.”

아무리 농담을 잘 하고 재미있고 너그러워도 한 번 화가 나면 뚜껑이 열리고 눈 뒤집히는 내 성질을 몇 번 경험한 영악한 조카며느리는 고개를 숙이더니,
“네 잘 알겠습니다. 이모님.”
공손히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또 측은하다.

"네 말대로 아무리 네 남편이 존경할 구석이 없어도 너와 아이들을 먹여 살리잖아.
그럼 존경해야지. 너 돈 벌 수 있어? 네 남편 없으면 아이들 혼자 기를 능력 있냐고?
없으면 존경해야 해. 그래야 살 수 있어. 남편 무시하면 못 살아. 네 남편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시하는 것 알지. 그러니까 사네마네 하는 거야. 너를 위해서도 남편을 존경하려고 노력해 봐. 네 남편 기운 세잖아? 그렇지? 그럼 그것도 존경해. 무거운 것 잘 들어주잖아. 농사도 잘 짓고? 풀도 잘 깎고 기계도 잘 만지잖아? 잘 생겼잖아?
너도 그것 때문에 한 방에 가고 애까지 몰래 낳은 거 아니니? 그런 것들 다 존경하려고 노력하라고, 너를 위해서 네가 못 하는 건 다 존경하려고 노력해, 알았니? 헤어지고 싶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존경해, 무시하면 그 때부터 못 살아."
"네, 이모님."


그렇게 해서 조카 녀석을 겨우겨우 달래고 어르고 위협까지 해서 들여보냈다. 그렇지만 걱정이다. 언제 또 일이 터질지 살 어름 판을 걷는 기분이다. 에이고~ 내 팔자야.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든지. 부모가 떠나니 형제에 조카에 자식에……

‘청천 하늘엔 별들도 많고 이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무리 과학과 문명이 발달해도 사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처럼
수심이 많은 건가보다.
장마철인데 오늘은 맑았다.
하지만 별은 보이지 않는다.
내일은 비가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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