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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페르세포네의 겨울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옛날에는 만물이 계절의 구분이 없는 세계에서 살았다고 한다. 하루는 성장의 여신이며 곡물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풀밭에서 꽃을 꺽고 있다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의 눈에 들게 되었다. 신들이 으례 도덕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처럼, 하데스도 바로 땅 밑에서 솟아올라 그녀를 신부로 삼아 어둠의 왕국으로 데려갔다.

땅 위에서는 데메테르가 딸을 찾아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여신은 매우 슬퍼 곡물이 자라는 것을 돌보지 않았다. 초록색 들판은 누렇게 변하다가 결국 말라붙어 버렸다. 공기는 차가워졌고 낮은 짧아졌다. 이상한 변화에 놀란 사람들은 겨울이 다가오자 최대한 곡물을 모으려고 뛰어다녔다.

마침내 데메테르는 딸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게 되었고 곧, 땅을 관장하는 신 제우스에게 가서 하데스에게 딸을 풀어주라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청했다. 올림푸스 산꼭대기에 살고 있는 제우스는 그녀의 아버지이자 모든 신들의 왕이었다. 그렇지만 이곳 저곳에 흩어져 살고 서로 힘을 나누어 가진 신들의 세계에서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데스는 제우스의 형제였고 그와 비슷한 힘을 갖고 있었다. 또 하데스는 자신만의 이유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우스가 중재에 나섰고 마침내 하데스는 왕비를 풀어주기로 했다.

모든 것이 해결되자 다시 영원한 여름을 기대했다. 하지만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어둡고 작은 지하세계의 정원사가 페르세포네가 지하에서 석류씨를 몇 개 먹었다고 증언했고 그녀가 땅으로 돌아올 계획은 모두 무산 되었다. 죽음의 세계에서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절대로 삶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페르세포네는 더 이상 불사의 몸이 아니었고 씨앗이 피어날 때를 기다리듯이 그녀의 몸 속에는 죽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바뀐 상황은 우여곡절 끝에 중재가 이루어져서 페르세포네는 1년 중 아홉 달은 지상의 어머니 곁에서 보내고 나머지 세달 간은 지하세계에서 보내는데 동의하였다. 그녀가 하데스와 함께 보내기 위해 지하로 내려간 동안 지상은 어둡고 추워진다. 곡물은 성장을 멈추었고 사람들은 이 이상하고 새로운 계절인 겨울을 지내기 위해 곡물을 모아 저장했다. 이 어둠의 계절의 끝이 오면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올라왔고 곡물은 다시 싹을 틔워 성장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묵상을 해 볼 수 있다. 모든 전환은 우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인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변화는 그것이 비록 원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우울하다. 왜냐하면 뒤에 남겨두고 와야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두렵고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쩌면 전에 미처 받아들이기도 전에 들이닥쳐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받아들이고 체념해야 했던 상실에 대한 어두운 기억이 되살아나서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모른다.

끝냄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화, 슬픔, 공포, 실망, 혼돈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감정들은 상실의 증후로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의 기억을 되살려보자. 혹시 과거의 짐을 내려놓지 못한 채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거나, 새로운 출발점을 미처 챙기지 못한 채 끝이 닥쳐왔던 경험은 없는지... 과거에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한 변화의 순간들을 기억해보자. 한때 내가 살았던 옛날 집의 내부를 떠올리듯 속속들이 기억해보자.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는 것은 때늦은 작별 인사, 편지, 혹은 안부전화 같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미련이나 후회같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쌓여있는 누군가에 대한 미해결 감정이나 연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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