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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08:22

욕망은 원초적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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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원초적 본능]
  
욕망은 원초적 본능이다.
그러나 해탈자가 아닌 중생들의 원초적 본능이다.
그래서 중생으로서는 욕망을 끊기가 어려우며, 이로 인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욕망이 일어날 때 이에 굴복하여 의도적으로 행하는 것이 ‘욕망에 의한 행위’이고 업業(행行)을 짓는 행위이며,
욕망을 조복調伏받았기에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 ‘욕망없는 행위’이고 업業(행行)을 짓지 않는 행위이다.
  
중생들이 보기에 해탈자에게 일어나는 욕망 비슷한 ‘행위의 근원’은 ‘조복된 욕망’이므로, 중생들의 ‘원초적 본능인 욕망’과 동일한 종류의 담마라고 할 수 없다.
  
‘욕망없는 행위’에 대해, 예로 들어 설명하여 본다.
식욕에 대해서 조복받으면 식탐으로 인한 괴로움이 없다.
즉, ‘음식을 탐하여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찬투정을 하지 않으며, 일반인들처럼 맛있는 음식을 찾거나 음식점을 찾아 다니며 먹는 ‘욕망에 의한 행위’를 하지 않으며, 음식 때문에 정신적 괴로움을 겪는 일이 없다.
그러나 음식 때문에 배탈이 나서 육체적 고통을 겪는 경우는 있다.
해탈자라 해도 음식을 잘못 먹어 배탈이 나서 육체적 고통을 겪는 경우는 있다.
붓다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춘다가 올린 공양 때문에 겪은 고통도 음식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이지, 음식과 이 음식의 공양 등의 행위로 인한 정신적 괴로움이 아니다.
  
출가 수행이 왜 바람직한지 이해해야 한다.
재가 수행자는 별거하면서 방 안에 TV나 컴퓨터 없이 수행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는 사람들은 오욕을 조복 받는 수행을 할 수 없으며 해탈에 이를 수 없다.
요즈음 사찰음식을 많이 선전하는데, 이런 포교방식은 중생들을 사찰로 우선 끌어 들여 중생들이 붓다의 법을 접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식탐을 조장하는 것으로 변질되어서는 곤란하다.
  
불쌍한 중생들은 욕망을 줄이는 수행으로 욕망을 조복 받으려고는 하지 않고, 한 평생 욕망의 노예가 되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욕망을 조복받지 못한 사람들은 수행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출가 행위를 ’세상을 등지는 행위’나 ‘세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혼자만 해탈하려고 하는 이기적인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욕망은 말 그대로 욕망으로서,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것이며 만족을 모르는 것이다.

세상에 집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집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욕망을 줄여 욕망을 조복받는 수행이다.
이 수행에 대한 집중은 욕망을 줄이는 행위에 대한 집중이므로 중생들의 오욕으로 인한 욕망을 채우는 행위에 대한 집착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수행에 대한 집중’이라고 해야지, ‘수행에 대한 집착’이라고 하는 것은 욕망을 채우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오해되게 하므로 담마가 잘못 전달될 수 있다.

중생들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합리화를 한다.
색욕은 사랑을 추구하는 것으로 합리화하여 사랑에 빠지고 사랑타령을 하며 한평생 보내거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합리화하여 예술에 집착하게 한다.
재물욕은 발전의 원동력으로 합리화하여 일에 집착하게 한다.
명예욕은 자아실현으로 합리화하여 자아를 찾는데 집착하거나 권력에 집착하게 한다.
식욕과 수면욕은 육체의 건강과 장수로 합리화하여 몸에 집착하게 하고, 건강과 장수를 위해 운동(또는 스포츠)에도 집착한다.
이 모든 집착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임을 중생들은 모른다.
욕망을 줄여 욕망을 끊음으로써, 욕망을 조복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오욕을 조복받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하며, 수행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담마(연기법 등)를 우선 이해해야 한다.
무턱대고 수행한다고 앉아 있다고 해서 오욕을 조복받아 해탈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탈자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육체와 이 육체의 변화를 기준으로 관습적으로 말하는 개념일 뿐이다.

어떠한 개체도 실제로 태어나거나 죽는 것이 아니다.
생멸하지 않는 불생불멸이 세상의 실상이다.
하지만 어떤 실체가 불생불멸하는 것은 아니다.
연기법에 따라 형성되는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
따라서 형성되는 모든 것은 무아無我다.
이를 아는 것이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깨달음이다.
이 해탈의 깨달음에 따라 욕망없는 행위로 번뇌가 생기지 않고 정신적 괴로움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해탈의 삶이다.

참고)
'담마'라는 용어는 진리 또는 법, 붓다의 가르침, 아비담마(논장)에서 말하는 ‘실체화되지 않은 실재요소’등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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