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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  

하늘엔 아직 반달이 남아있군요. 마치 먹다 둔 치즈 케익과 같습니다. 다시 커피 한잔을 내려놓고 친구를 생각합니다.  

어느 날, 선생질을 하고 있던 친구와 대판 싸웠습니다. 아니 싸웠다기 보다는 그 친구가 너무 흥분을 하기에 내가 그만 꼬랑지를 말아 감아 버렸습니다. 스승과 제자를 말하다가 그녀가 말했습니다. “과연 내가 감히 학생들을 ‘제자’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 스승인가?” 그녀가 너무 흥분을 해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니 나는 선생도 아니면서 마치 내가 모든 스승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매를 맞는 듯한 느낌이 나더군요. 실제로 그녀는 학생들에게 매우 잘합니다. 면접을 보러가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옷을 사 입혀가며 준비시키키도 하고 참담한 집안 사정을 들으면 함께 울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날 그렇게 열을 낸 이유는 광화문 네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촛불을 들고 있었던 분위기 탓도 있었겠지만 그녀의 마음 안에서 이상과 현실이 뜻대로 정리되지 않아 갈등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고 이해했습니다.  

지금 나는 오직 한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기쁘게 시작한 연구원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20쪽 미스토리를 쓸 때 나는 이제 날은 저물고 길은 어두워져 지금 여기, 내 인생의 마지막 간이역에서  일어나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때라고 썼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성실하게 우직하게 잘 걸어온 듯 합니다. 비록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추지 못해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시간이 있긴 했지만 그 또한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한데 어울려 마침내 “좋은 인생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 마지막 고비 또한 유쾌하게 정리하고 가야 하는 길이겠지요.  

추석은 한 해동안 뜨고 지던 달이 차고 기울고 또 다시 차 올라와 최고의 달을 보여주는 날입니다. 그러니 온 식구들이 함께 모여 이렇게 잘 살고 있음을 축하하고 즐기는 시간이지요. 그리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모든 조상들과 우주의 인연들에게 감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제껏 그렇게 해왔고 비록 절망 속에 있었을 때라도 밝고 환하게 떠오르는 달을 보며 희망을 이야기하고는 해 왔었지요. 그러나 추석을 며칠 앞둔 지금 나는 조금 슬퍼하고 있어요. 여기 저기 나의 친구들에게 일어난 일들에 마음이 무거워지려고 해요. 오랜 스승같은 내 친구는 “그건 네 영역 밖에 있는 일이다” 라고 정리를 해 주었지만 나는 아직 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빈손으로 보름달을 받아서 친구의 집까지 가져다주어야 할까 봅니다.  

오늘 아침엔 여기저기 메일을 써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한 곳만 바라보고 정신없이 걷다가보니 참 많은 것을 놓치고 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들 각자는 본질적으로 고독을 느끼며 궁극적으로는 무력함을 느낀다.” 고 실존철학자들이 위로해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아침 내 젊은 친구의 짐을 등에 지고가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K의 글이 당연히 올라와야 하는 시간에 보이질 않아서 그렇습니다. 나는 그가 쓰는 글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짐작컨대 그는 매우 젊고 매우 열정적이어서 그의 성격이 곧 그의 운명이 될 것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희생제단에 바쳐서 자기의 꿈을 이루려던 이 사람이 지금 혼자서 삶의 무게 때문에 끙끙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포기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인디언들은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커피잔이 다 비워졌습니다. 이제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강한 여운을 남겨 한번씩 내가 걸어가는 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직업이 선생인 내 친구에게도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스승입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사제의 연쇄를 확인하는 것이 곧 자기의 발견입니다.“  우이 신영복 선생님 말씀을 생각하며 곧 떠오를 보름달 속에 그대의 얼굴도 담아두고 싶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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