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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내려, 가막산이 걱정되는군요. 괜찮은지요.
지난 화요일 아들놈이 입대를 하게 되어, 춘천에 다녀왔습니다.
허전하더군요. 늦게 본 아들이라서 그런지...
아무쪼록 자중자애하시고 즐거운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가막산에 가게 되면 연락드리지요.


                                        

  


헉!

교수님 이제야 메일을 열었습니다.

아드님이 입대를 했군요.

허전하실 겁니다.

전 딸이 결혼 한다고 하니

몸의 반이 없어진 것처럼 헹하고

정신까지 멍해 차사고까지 냈습니다.

어찌 제 삶은 이렇게 다사다난한지

이제는 피식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이번 비에 정자가 물에 떠내려 가고

(다행히 떠내려 가다 소나무에 걸려 멈췄습니다)

길은 완전히 없어져 계곡이 되고

전기가 나가 모터로 퍼 올리는 물까지

문명이 전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니 화장실도,TV도,밧데리 충전을 못하니 휴대전화도,

전신주가 떠내려가 일반전화는 물론 인터넷등 모든 것이 끊어졌습니다.

속세의 일을 잊고 촛불 켜고 살았습니다.

나중엔 촛불도 아껴야했습니다.

갑자기 밤이 길어지고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할 일이 없었습니다.

촛불 밑에 책을 읽으려고 해도 옛날에는 잘 읽은 것 같은데

글자가 잘 보이질 않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 떨어져 어두워지면 자고 동이 트면 일어났습니다.

왜 옛날 분들이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지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앞에 개울이 있어 더위에

끈적해진 몸을 씻거나 밥을 짓고 설겆이는 할 수 있었습니다.

개울물을 퍼 화장실을 쓰고 샘물로 식수를 사용하고,

아이러니 한 것은 그 물 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또 그 물 때문에 집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사는 것이 그런 것인가 봅니다.

체플린이 한 말이 정말 명언인 것 같습니다.

"사는 것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처음에는 못 살 것 처럼 힘들더니 하루 이틀이

지나니 적응이 되더군요.

새삼스럽게  인간의 적응력이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 녀석은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씻어 본 적이 없어

처음엔 못 씻겠다고 하더니 더위에 끈적해진 몸을 견디지 못하고 씻더군요.

제가 고참답게 차가운 산물에 씻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전 어려서 매일 산물에서 씻고 자랐으니까요.

그때는 정말 싫었는데 그런 경험도 도움이 되더군요.

신기한 것은 처음엔 오싹하게 차갑지만 일단

산에서 내려오는 물에 씻고 나면 집에서 아무리 샤워를 해도

산물에서 씻은 듯한 상쾌한 기분은 못 느끼는 다는 겁니다.

요령은 제일 먼저 머리를 물에 담궈 감는 겁니다.

뇌를 먼저 마비시키는 거지요.

일단 머리를 감고 뇌를 마비시키고 나면 그 다음 씻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심장 먼 곳부터 씻어가면 됩니다.

머리가 져리는 듯한 상쾌한 기분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오래 잊고 살았던 상쾌함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하루 중 개울물에 씻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경험은 이것저것 많이 해보는 것이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사는데도 유용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리 많은 비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밤이 깊어가니 비는 점점 더 게세지고 헬기 뜨는

소리가 났습니다.

'우리를 구해주려 이 빗속에 헬기까지 떴나?' 하는 아주 바보스런 생각으로

아들과 함께 창문으로 내다보니 길이 온통 물길이 되어

씨뻘건 흙탕물 속에 거짓말 조금 보태 집채만한 바위가

굴러 떠내려 오는 소리가 헬기 뜨는 소리도 들렸던 겁니다.

와우!

써스펜스 그 자체 였습니다.

큰 나무가 슬로우 모션으로 쓰러지며 떠내려가고

정자가 두둥실 뜨더니 떠내려가다 백 년이 넘은

전나무에 걸려 허우적 거렸습니다.

저와 아들은 어머! 어머! 를 연발하며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음 보는 기이한 관경을 구경했습니다.

뭐랄까....

새롭고 낮설은 기묘한 관경에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이 겹쳐

뭔가 아주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흥분을 느꼈습니다.

예감대로 결국 새로운 일이 일어나긴 했습니다.



"어디로 피난가지?"

아들이 물었습니다.

길은 이미 물길이 되어 검붉은 흙탕물이 성난 듯  

우뢰같은 소리로 바위를 쏟아내며

뉴스에서 본 일본의 쓰나미가 덥치는 것 처럼

무섭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쓰나미를 남의 일이라고 신기하게만 봐서

벌 받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에는 가슴 아파했는데.....'

"감악산 위로 올라가야하지 않겠니?"

"이 비속에 등산을 해야 한다고? 엄마, 난 자는 것과 먹는 것이

사는 즐거움인데 그것을 못한다면 차라리 씸플하게 죽자!"

아들의 말을 가만히 생각하니 그것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자! 죽고 사는 것도 운명인데 인명은 제천이라고

살 놈은 비행기가 떨어져도 살더라!"

그리고 얼른 우울증 약을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저녁에 먹는 우울증 약은 먹자마자 바로 잠이 들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제가 자고 싶을 때 약을 먹으면 됩니다.

편리하지요.

그때는 우울증 약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말은 그렇게 해도 잠이 오진 않았나봅니다.

제 우울증 약을 좀 먹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더니.


제가 잠이 들며

"재홍아 지구를, 아니 우리집을 부탁해." 하고

자더라더군요.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제 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니 씸플하게 죽자는 아들에게 집을 부탁했겠지요.

눈을 뜨니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우린 문명세상과 단절 되어

"나라님이 바뀌었나?" 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걱정하고 있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없음 즐기라고 했어, 그래 난 이론에

충실한 사람이야, 이 틈에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는 비타민 D나

흠뻑 쐬자.'라는 생각으로 수영복에 썬텐 로션을 바르고 라이방까지 걸치고

집 앞 베란다에 라꾸라꾸 침대를 놓고 누워 썬텐을 즐겼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119 인명 구조원이 완전무장을 하고

로프를 매고 웅성거리며 들이닥쳤습니다.

"여기 박명아씨가 매몰됐다는데 어디에 매몰 됐습니까?"

"네? 매....매몰이요?"

"네, 지금 신고가 들어와 저희도 목숨 걸고 왔습니다."

나는 뻘쯤해 머뭇거리며 말을 더듬었습니다.

수영복을 입고 라이방까지 둘러쓰고 피서 온 것처럼

썬텐을 하고 있는 뻘쯤해 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혹시 박명아 씨세요?'

라는 의혹의 눈길을 던졌습니다.

"그, 그런데요. 그런데 누가 신고를 했지요?

저는 기가 막힌 듯 쳐다보는 119 요원들 앞에서 죄 지은 사람처럼  

머쓱해하며 머뭇거렸습니다.

박명아라는 옛 이름을 아는 것 보면 분명 나를 아는 사람인데...

"저희들도 모르지요. 혹시 이 전화 번호 아세요? 이 번호로 신고가

들어왔어요."

119 요원의 핸드폰에 찍혀진 전화번호는 낮은 익는데

가물가물 했습니다.

"누, 누구지? 저 괜찮은 것 확인하셨으니 그냥 가셔도 되지 않을까요?"

미안해 하는 저에게 119 요원들은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일단 신고가 들어왔으니 신고를 한 사람에게 확인을 해 주고 가야합니다."

머쓱해하며 어물거리다 전 결국 119요원들의 핸드폰으로 찍혀진 번호로

전화를 거니 계속 통화 중이었습니다.

어렵게 겨우 통화가 돼서 받아보니 셋째 언니었어요.

"명아야! 너 괜찮니! 살아있는 거야?"

다급한 목소리로 악을 쓰며 전화를 받더군요.

"살았으니 전화를 하지! 그런데 누가 매몰 됐다고 그래?"

전 119 요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같이 악을 썼습니다.

"너가 둘째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집이 떠내려간다고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는데?'

"응? 난 정자는 떠내려갔지만 집은 안 떠내려 갔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네가 언니, 집이 떠내려가! 하더니 끊어졌데?"

"아! 그랬구나! 밧데리가 없어서 아마 마지막 말은 못 들었나봐.

난 정자는 떠내려 가지만 집은 괜찮다고 했는데..."

"그러니 얼마나 걱정되니! 너 지금 빨리 피난해!"

"피난? 전쟁났어?"

"야 지금 전쟁보다 더 한 비상사태야!"

"싫어, 갈 데가 없어."

"아니, 왜 갈 데가 없니? 둘째언니네 집도 텅텅 비어있고

네 딸 집도 있는데 왜 갈 데가 없어?"

"내 집이 제일 편해. 언니, 나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 "

"넌 어떻게 된 계집애가 간덩이가 그렇게 크니!"

119 요원이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피난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아랫 동네도 다 피난 갔어요."

"그 정도 인가요? 아랫동네가? 어떻게 되었는데요?"

"산 사태가 일어나고 길이 없어지고 동네가 완전 계곡이 됐습니다."

"저수지가 넘쳤나요?"

"아니, 다행히 저수지는 넘치지 않고 일 미터 남기고 비가 멈췄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피난 갔습니다. 일단 피난을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수지 안 무너졌다면서요? 왜 피난 갔어요?"

"물도 불도 없고 집에 물이 다 들이차서 싹 다 피난 갔어요."

"그래요? 저흰 그냥 여기 있을래요."

"괜찮으시겠어요? 며칠만이라도 가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니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번거롭게

수고를 끼쳐드려 너무 죄송해요. 연락이 잘 안 돼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의 비상 식량인 쵸코렛 밀크 음료를 목숨을 걸고 와 준

땀 투성이 119요원에게 주었습니다.

119요원들은 비상식량을 자신들이 먹어선 안 된다고 한사코 거절했지만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미안했어요.

매몰 된지 알고 목숨 걸고 왔는데 수영복에 라이방까지 걸치고 썬텐을 하고 있었으니....

119 요원들은 아들에게 군인같이 강한 엄마가 있어서 든든하겠다고 덕담(?)을 하고

돌아갔고 아들은 그 말에 그래도 자신이 남자인데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다고 투덜댔습니다.

누나도 자신을 소개할 때

"전 온화한 아버지와 강인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에 조금 위로를 받는 것 같았지만

그리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  

쓰다보니 다시 장문이 됐네요.

저의 삶이 왜 이렇게 구구절절한지.

저도 싫습니다.

저도 심플하고 싶은데 세상이 절

심플하게 놓아두질 않네요...흑흑...



한 달 동안 메일을 못 열어볼 정도로 힘이 들고 아팠지만

지금은 전기도 전화도 인터넷도 복구 되고

길도 전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자동차는 다니게 대충 고쳐주더군요.

세금 낸 덕을 좀 봤습니다.



그럼 구구절절한 저의 만리장성 같은 편지를 읽으시느라 고생하시게 해

죄송하게 생각하며....



감악산에서 박선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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