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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의 리얼리즘
계수님께


교도소에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욕설'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는 실로 흐드러진 욕설의 잔치 속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저도 징역 초기에는 욕설을 듣는 방법이 너무 고지식하여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곧이곧대로 상상하다가 어처구니 없는 궁상(窮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기 일쑤였습니다만 지금은 그 방면에서도 어느덧 이력이 나서 한 알의 당의정(糖衣錠)을 삼키듯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겠습니다.
욕설은 어떤 비상한 감정이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 밖으로 돌출하는, 이를테면 불만이나 스트레스의 가장 싸고 '후진' 해소방법이라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과가 먼저 있고 사과라는 말이 나중에 생기듯이 욕설로 표현될 만한 감정이나 대상이 먼저 있음이 사실입니다. 징역의 현장인 이곳이 곧 욕설의 산지(産地)이며 욕설의 시장인 까닭도 그런 데에 연유하는가 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욕설은 이미 욕설이 아닙니다. 기쁨이나 반가움마저도 일단 욕설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경우는 그 감정의 비상함이 역설적으로 강조되는 시적 효과를 얻게 되는데 이것은 반가운 인사를 욕설로 대신해오던 서민들의 전통에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욕설이나 은어에 담겨 있는 뛰어난 언어감각에 탄복해오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 멋지게 들어맞는 비유나 풍자라든가, 극단적인 표현에 치우친 방만한 것이 아니라 약간 못미치는 듯한 선에서 용케 억제됨으로써 오히려 예리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 등은 그것 자체로서 하나의 훌륭한 작품입니다.
'사물'과, 여러 개의 사물이 연계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건'과, 여러 개의 사건이 연계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태' 등으로 상황을 카테고리로 구분한다면, 욕설은 대체로 높은 단계인 '사건' 또는 '사태'에 관한 개념화이며 이 개념의 예술적(?) 형상화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고도의 의식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점에 있어서, 대상에 대한 사실적 인식을 기초로 하면서 예리한 풍자와 골계(滑稽)의 구조를 갖는 욕설에서, 인텔리들의 추상적 언어유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적나라한 리얼리즘을 발견합니다. 뿐만 아니라 욕설에 동원되는 화재(話材)와 비유로부터 시세(時世)와 인정, 풍물에 대한 뜸든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귀중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버섯이 아무리 곱다 한들 화분에 떠서 기르지 않듯이 욕설이 그 속에 아무리 뛰어난 예능을 담고 있다 한들 그것은 기실 응달의 산물이며 불행의 언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8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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