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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현등(懸燈)
어머님께


아버님, 어머님을 비롯하여 가내 두루 무고하시다니 안심입니다. 이곳의 저희들도 몸 성히 잘 있습니다. 가장 불편한 계절인 겨울도 이제는 확실하게 보내놓고 양지 쪽 봄풀과 함께 저마다 파릇파릇 물오릅니다. 노인들은 오히려 해동(解冬) 무렵의 조섭에 더 유념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어머님께 읽어드렸으면 하는 구절을 자주 만납니다. 고사(古事)도 그렇고 [만인보](萬人譜)도 그렇고, 이국풍물(異國風物)도 그렇습니다만 요사이 부쩍 읽어드리고 싶은 글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어머님께서 그 일부를 몸소 겪으신 세월에 해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세월을 돌이켜보고 이야기 나눈다면 어머님께서 살아오신 그 세월이 과연 어떤 것이었던가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아마 이 때문에 제가 읽어드리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깨달음은 어머님의 가슴에 지금껏 포한(抱恨)으로 남아 있는 아픔이, 어떤 뿌리에서 생긴 것인가를 밝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님의 아픔이 단지 어머님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아픔임을 깨닫게 해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의 바람은 기실 어떻게 하면 어머님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있을까 하는 저의 구차스런 궁리에 불과하고 어머님의 저에 대한 신뢰를 못 미더워하는 불찰이며 불안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이는 제게 있어서는 어머님과 어머님의 시대를 제 속에 뚜렷이 받아들이는 일이 되기도 하며, 어머님에게는 여생을 앞두고 어머님의 평생을 온당하게 자리매김하는 일이 되기도 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아버님과의 대화로서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일이라 믿습니다. 사실인즉 어머님께서는 다만 겉으로 내색만 않으실 뿐 이미 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다 이루어놓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초파일 봉은사에 매다시는 그 등불에 어머님의 사랑과, 어머님의 평생 밝혀놓으심에 틀림없습니다.

 

1987.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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