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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번에는
어머님께


'혹시 이번에는……' 하고 기대하시다가 어머님 낙심하시지나 않으셨는지 걱정됩니다. 진작 편지 올리려다가 편지 받아드시고 도리어 상심하실까 염려되어 느지막이 필을 들었습니다. 너무 상심 마시고 항상 심기를 넉넉히 하시기 바랍니다. 20년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어차피 바람만 불면 나가게 됩니다. 휠체어에 어머님 모시고 석촌 호숫가로 봄나들이 갈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이곳의 저희들도 왈가왈부에 개의치 않고 여전히 마음 편하고 몸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키 168cm 몸무게 70kg 가슴둘레 98cm 허리 80cm 혈압 80∼120. 몸이 좀 불었을 뿐 건강합니다.
겨우내 공장 출역하는 동안 세면, 세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예 땀나는 운동을 삼갔더니 체중이 3kg 정도 늘었습니다. 지난 달 하순부터 거실 작업이 허가되어 운동시간도 늘고 물 사정도 좋아져서 지금은 매일 흠뻑 땀 젖도록 운동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까지 65kg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달력은 진작부터 봄인데 올봄은 볕이 안 납니다. 오늘도 운동시간에 담요 털어야지 하고 아침 기상시간에 침구 쌓을 때 따로 빼놓았었는데 잔뜩 흐리더니 기어이 빗방울 듣고 말았습니다.
교도소 봄은 더디기로 으뜸입니다만 그렇다고 절서(節序)까지야 속일 수 없는 법. 이곳 옥뜰에도 이제 곧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도 피어날 것입니다.
계수님 소식 잘 듣고 있습니다. 제게 답장 쓸 필요없다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평안을 빌며 이만 각필합니다.

 

1987.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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