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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촌의 노랑머리
계수님께


징역을 오래 살다보면 출소한 지 얼마 안되어 또 들어오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또 들어와 볼낯 없어 하는 친구를 만나도 나는 그를 나무라거나 속으로라도 경멸할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만기가 되어 출소하는 친구와 악수를 나눌 때도 "이젠 범죄하지 말고 참되게 살아라"는 교도소에서 가장 흔한 인사말 한마디도 저는 지금껏 입에 올린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부딪쳐야 했고 또 부딪쳐야 할 혹독한 처지를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까닭은 '도둑질해서라도 먹고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일단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데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여하한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는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끊어버림으로써 그의 정신세계를 이질화하고 결국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전의 잘 알려진 원동(元洞)의 창녀촌에는 '노랑머리'라는 여자가 있는데, 한 달에 서너 번씩은 약을 복용하고는 도루코 면도날이나 깔창(유리창)으로 제 가슴을 그어 피칠갑으로 골목의 건달들에게 대어든다고 합니다. 온몸을 내어던지는 이 처절한 저항으로 해서 그 여자는 기둥서방이란 이름의 건달들의 착취로부터 자신을 지킨 유일한 여자라 합니다.
이 여자의 열악한 삶을 그대로 둔 채 어느 성직자가 이 여자의 사상을 다른 정숙한 어떤 것으로 바꾸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여인을 돌로 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숙한 부덕(婦德)이 이 여자의 삶을 지켜주기나 개선시켜주기는커녕 오히려 무참히 파괴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똥치골목, 역전 앞, 꼬방동네, 시장골목, 큰집 등등 열악한 삶의 존재 조건에서 키워온 삶의 철학을 부도덕한 것으로 경멸하거나 중산층의 윤리의식으로 바꾸려는 여하한 시도도 그 본질은 폭력이고 위선입니다.
우리가 훌륭한 사상을 갖기가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그 사상 자체가 무슨 난해한 내용이나 복잡한 체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상이란 그것의 내용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 실현된 것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경우 이를 도둑이라 부르고 있거니와, 훌륭한 사상을 말하되 그에 못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 우리는 이를 무어라 이름해야 하는지…….
모든 문제의 접근이 일단 진실의 규명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의 상응관계를 묻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 삶과 사상이 차질을 빚고 있을 때 제3자가 할 수 있는 일의 상한(上限)은, 제3자가 갖는 시각의 이점을 살려 그 차질을 지적해줌으로써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어떤 출발점에 서게 하는 일이 고작이라 생각됩니다.
삶과 사상의 어느 쪽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라는 방법상의 문제는 전혀 그 사람의 처지에 따라 그 사람의 할 나름이겠지만 삶을 내용으로 하고 사상을 형식으로 하는 상호작용의 법칙성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삶의 조건에 먼저 시각을 돌려야 하리라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악하되 삶과 상응된 사상을 문제삼기보다는, 먼저 실천과 삶의 안받침이 없는 고매한(?) 사상을 문제삼아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어제가 입추입니다. 폭서의 한가운데 끼인 입추가 거짓 같기도 하고 불쌍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입추는 분명 폭염의 머지않은 종말을 예고하는 선지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모든 선지자가 그러하듯 '먼저' 왔음으로 해서 불쌍해보이고 믿기지 않을 따름입니다.

 

 

198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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