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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최고형태
형수님께


어느 일본인 기자가 쓴 '한국인'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젊은 동료 한 사람이 그 글의 진의(眞意)를 물어와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읽어본 것입니다만 제가 읽어본 일본의 몇몇 민주적인 지식인의 글에 비하면 그 격이 훨씬 떨어지는 3류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작은 엽서에서 그 글의 내용을 탓하려고도 않으며 또 그 글에 숨어 있는 필자의 민족적 오만이나 군국주의의 변태를 들추려고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그 글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거나 서술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반면(反面)의 교사였습니다.
우리가 인식하거나 서술하려는 대상이 비교적 간단한 한 개의 사물이나 일개인인 경우와는 달리 사회나 민족이나 한 시대를 대상으로 삼을 경우 그 어려움은 실로 막중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상이 이처럼 거대한 총체인 경우에는 필자의 관찰력이나 부지런함 따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필자의 문장력이나 감각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회 역사 의식이나 철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과학적 사상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자료를 동원하고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구사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코끼리를 더듬는 장님 꼴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사고보다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바로 대상과 필자의 '관계'라 생각합니다. 대상과 필자가 어떠한 관계로 연결되는가에 따라서 얼마만큼의 깊이 있는 인식이, 또 어떠한 측면이 파악되는가가 결정됩니다. 이를테면 대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관계, 즉 구경하는 관계 그것은 한마디로 '관계 없음'입니다. 구경이란 말 대신 '관조'라는 좀더 운치 있는 어휘로 대치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관조만으로 시작되고 관조만으로서 완결되는 인식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대상과 자기가 애정의 젖줄로 연결되거나, 운명의 핏줄로 맺어짐이 없이, 즉 대상과 필자의 혼연한 육화(肉化) 없이 대상을 인식 서술할 수 있다는 환상, 이 환상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범람하는 저널리즘이 양산해낸 특별한 형태의 오류이며 기만입니다. 저널리즘은 항상 제3의 입장, 중립의 불편부당이라는 허구의 위상을 의제(擬制)하여 거기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대상과 관계를 가진 모든 입장을 불순하고 저급한 것으로 폄하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꾼, 진실의 낭비자로 철저히 소외시킵니다. 상품의 소비자, 스텐드 위의 관객, TV 앞의 시청자 등…… 모든 형태의 구경꾼의 특징은 대상과 인식 주체 간의 완벽한 격리에 있습니다.
이처럼 대상과 인식 주체가 구별, 격리되어 있는 경우에는 시종 양자의 차이점만이 발견되고 부각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상을 관찰하면 할수록 자기와는 점점 더 다른 무엇으로 나타나고,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더욱더 멀어질 뿐입니다. 그리하여 종내에는 대상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자기 자신마저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위 문화인류학이 식민주의의 첨병(尖兵)으로서 세계의 수많은 민족을 대상화하여 그들의 민속과 전통문화 그리고 그들의 정직한 인간적 삶을, 자기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기들의 침탈을 다른 이름으로 은폐할 목적으로, 야만시하고 왜곡해왔으며, 그러한 부당한 왜곡이 결국은 대상의 상실뿐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 양심을 상실케 함으로써 그토록 잔혹한 침략의 세기(世紀)를 연출해내었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징역 사는 우리들 재소자도 대상화되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죄명별, 범죄유형별……, 여러 가지 표식(標識)에 따라 분류되기도 하고, 범죄심리학, 이상심리학, 심리전 등 각종 심리학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대부분의 연구자들에게서는 그들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재소자들이 그들과 동시대를 살고, 동일한 사회관계 속에 연대되고 있다는 거시적인 깨달음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분류 연구나 심리학적 관찰은 결국 그들과는 전혀 딴판인 이를테면 '종'(種)을 달리하는 네안데르탈인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범죄인종'(犯罪人種)을 발견해내고 만들어내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발견된 범죄인종의 여러 가지 패륜은 그들 자신과는 하등의 인연도 없는, 수십만 년의 거리가 있는 것이란 점에서 그들 자신의 윤리적 반의(叛意)를 자위하고 두호(斗護)하고 은폐하는 데 역용(逆用)됨으로써 결국 그들 자신을 패륜화하는 악순환을 낳기도 합니다. 시대와 사회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처한 위치가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은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의 출발은 대상과 내가 이미 맺고 있는 관계의 발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검은 피부에 대한 말콤X의 관계, 알제리에 대한 프란츠 파농의 관계…….
주체가 대상을 포옹하고 대상이 주체 속에 육화된 혼혈의 엄숙한 의식을 우리는 세계의 도처에서, 역사의 수시(隨時)에서 발견합니다. 이러한 대상과의 일체화야말로 우리들의 삶의 진상을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1984.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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