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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忍冬)의 지혜
형수님께


형기(刑期)가 1년 6월 이상이 되면 그 속에 겨울이 두 번 들게 됩니다. 겨울이 두 번 드는 징역을 '곱징역'이라 합니다. 겨울 징역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자기 체온 외에는 온기 한 점 찾을 수 없는 독거(獨居)는 그 추위가 더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난 가을 이래 독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구태여 독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추위가 징역살이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의 겨울이 대단히 추운 것이긴 하지만 그 대신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징역선배들이 수십 번의 겨울을 치르면서 발전시켜 온 '인동(忍冬)의 지혜'가 마치 무의촌의 토방(土方)처럼 면면히 구전되어오고 있습니다.
이 숱한 지혜들에 접할 때마다 그 긴 인고의 세월 속에서 시린 몸으로 체득한 그 지혜들의 무게와 그 무게가 상징하는 힘겨운 삶이 싱싱한 현재성을 띠고 우리의 삶 속에 뛰어듭니다.
겨울 추위는 이처럼 역경에서 발휘되는 강한 생명력을 확인하고 신뢰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겨울 추위는 몸을 차게 하는 대신 생각을 맑게 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여름보다 겨울을 선호합니다. 다른 계절 동안 자잘한 감정에 부대끼거나 신변잡사에 얽매여 있던 생각들이 드높은 정신 세계로 시원하게 정돈되고 고양되는 것도 필경 겨울에 서슬져 있는 이 추위 때문이라 믿습니다. 추위는 흡사 '가난'처럼 불편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불편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저는 한 평 남짓한 독거실의 차가운 공간을 우리의 숱한 이웃과 역사의 애환으로 가득 채워 이 겨울을 통렬한 깨달음으로 자신을 달구고 싶습니다.
지리부도를 펴놓고 새로 이사한 대치동을 찾아보았습니다. 잠실에서 가까워 형수님의 잠실 출근(?)길이 줄었다 싶습니다. 407호면 4층, 이촌동 집과는 달라 화분에 햇빛 가득 담기리라 생각됩니다. 형수님의 얼굴에도 햇빛 가득 담기길 바랍니다.

 

 

1986.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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