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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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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교도소와 신 교도소
형수님께


남은 짐 챙기러 중촌동 구 교도소에 갔다온 영선부원한테서 우리가 떠나온 곳의 정경을 들었습니다.
밤이면 도깨비 외발 춤추게 된 구석구석에 바람 먹은 비닐자락들이 땅바닥을 긁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데, 아! 굶주리다 못한 쥐들이 사람을 향해서 달려온다고 합니다. 취사장에 불꺼진 지 이미 십수일, 식량창고에 흘린 낱알이 여태 남았을 리 없고 보면 사람이 없는 곳에 쥐들의 입에 들어갈 것 또한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포클레인, 불도저의 강철손이 달려들기 훨씬 이전에 완벽한 기근이 먼저 쥐들을 엄습할 줄을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5척 옥담은 이제 사람 대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쥐들을 가두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쯤 어느 '모세' 같은 쥐가 드디어 소문(所門)을 찾아내어 무리를 이끌고 지옥 같은 사지(死地)를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중촌동 마을로 들어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살던 땅에 굶주리고 있는 쥐들의 소식은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비극의 자욱 같은 것입니다.
새 교도소는 강철과 콘크리트의 집입니다.
콘크리트의 긴 복도를 울리는 철문소리는 그동안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은 채 살아왔던가를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밤중의 정적을 부수는 금속성은 우리들의 안주해온 타성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머리 속에, 가슴 속에, 혈관 속에 잠자던 수많은 세포들을 또렷이 깨어나게 해줍니다. 새벽의 바람처럼 우리의 정신을 곧추 세워줍니다.
오늘 아침에는 창문을 두드리듯 지척에서 까치가 짖어댑니다.
그랬었지. 산이 가까이 있었구나.
까치도 산도 보이지 않는 창에 눈 대신 귀를 갖다대고 대정동 최초의 산까치 소리를 듣습니다.
너희들은 누구냐! 너희들은 누구냐!
산 속에 숨어서 우리들을 지켜보다 못해 던지는 질문 같습니다.
머지않아 수많은 산새들이 우리들의 지붕 위에 신선한 아침을 뿌려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사 전후의 술렁거림도 잠시간일 뿐, 교도소는 신속하게 본연의 질서로 돌아가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이보다 더 신속하게 우리의 자세를 정돈해두고 있습니다.

 

 

198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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