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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씨알
계수님께


지난 8일에는 공주로 사회참관을 다녀왔습니다. 무녕왕릉은 연전에도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그곳을 돌아나오면서 갑오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였던 '우금치'를 찾았던 일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그곳에는 '갑오농민혁명기념비'(甲午農民革命紀念碑)라 부조(浮彫)된 그리 크지 않은 비가 석대(石臺) 위에 서 있고, 주위의 잡목과 성근 잔디는 때마침 추풍에 구르는 낙엽들로 해서 잊혀져가고 있는 유적지 특유의 스산한 풍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날 저녁 제가 가진 근대사의 우금치 공방전에 관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종전에는 소위 공주전투에 참가한 농민군의 수가 10∼20만으로 알려져왔으나 그 대부분은 편의대(便衣隊)의 봉기농민과 그 가족들이었고 실제의 병력은 훨씬 적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농민군의 전투부대는 전봉준이 인솔한 4,000명을 포함한 호남농민군 1만을 주축으로 한 도합 2만이었다고 합니다. 그외에 목천(木川) 세성산(細城山)의 김복용 부대와, 효포(孝浦)에 진출한 옥천포 부대가 있었으나 이들은 우금치 전투의 전초전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선제 기습공격으로 괴멸되었기 때문에 공주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하였으며, 일찍이 전주화약(全州和約)에 이르기까지 연전연승해온 손화중, 최명선 부대는 일본군의 해안상륙에 대비하여 나주에 주둔하였고, 김개남 부대는 후비(後備) 부대로서 전주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처럼 농민군 주력이 공주, 나주, 전주 세 방면으로 분산된 반면 관군과 일본군은 공주 일점(一點)에 그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었습니다. 원래 농민군의 전략상의 강점은 관군을 광범한 농촌, 농민들 속으로 깊숙히 분산, 유인하여 타격하는 운동전(運動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주전투에서는 이 집중과 분산의 전략이 역전되어 있었다는 것이 결정적 결함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함은 후일 신돌석 부대 등 농민 출신 의병장의 의병투쟁에서 발전적으로 극복되게 되지만 이는 너무나 값비싼 희생을 치른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이에 비하여 상대편은 미나미오 시로(南小四郞) 소좌가 이끄는 일본군 정예 1,000명, 그리고 관군으로는 중앙영병(中央營兵) 3,500명, 지방영병 7,000명으로 도합 1만여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화력과 장비에 있어서 월등할 뿐 아니라 특히 일본군은 관군을 그들의 작전 지휘 아래 두어 병력의 부족을 충분히 보강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의 내란 진압, 대만에서의 민중탄압, 청일전쟁 등 풍부한 실전경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1894년 12월 4일 농민군은 이곳 우금치를 삼면에서 포위하여 30리의 장사진으로 그 처절한 격전을 전개하였습니다. 뺏고 빼앗기기 40, 50차를 거듭한 6∼7일간의 혈전에서, 결국 일본군의 집중된 전력과 지리(地利), 우세한 화력과 작전에 정면승부를 건 농민군이 무참한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이곳 우금치의 전투를 분수령으로 하여 농민군은 끝내 그 세를 만회하지 못한 채 은진, 금구, 태인 등지에서 패배에 패배를 거듭, 농민군의 피로써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갑오농민전쟁은 그 참담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아시아 민족운동의 큰 봉우리로서, 그리고 그 이후 한국근대사의 골간을 이루는 의병투쟁, 독립전쟁의 선구로서 찬연히 빛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누가 프랑스혁명을 실패로 끝났다고 하는가?"라는 앙드레 말로의 노기 띤 반문을 상기하게 됩니다.
어느 시인은 녹두장군의 죽음에 다음과 같이 헌시(獻詩)하고 있습니다.

 

나는 죽어 쑥국새 되리라.
이 강산 모든 땅 위를 날며, 햇살 빛덩이를 찍어물어, 집집마다 토담마다 가슴마다 묻고 심고 심고 묻는…….

 

그날 우리는 무심한 아이들 네댓 명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사과를 먹고 당시의 혈전을 증거하듯 붉게 타는 단풍잎 한 장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절구(絶句) 한 짝 읊어보았습니다.

 

산함려성인내천 녹두화처풍사연
山含黎聲人乃天 綠豆花處楓似然

 

그저께 아버님 다녀가신 편에 소식 잘 들었습니다. 빈백(函白)의 아버님께 듣는 어머님의 입원 소식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형수님, 계수님께서 잘 간호하시리라 믿습니다. 지난 달에 보내주신 돈 받고 10월 22일 편지드렸습니다만 못 받으셨다니 다시 적었습니다.
이제 성큼 겨울로 다가선 느낌입니다. 교도소의 차가운 땅을 그 밝은 금빛 꽃송이로 따뜻이 데워주던 황국(黃菊)도 인제는 꽃을 떨어버리고 뿌리로만 남아서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198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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