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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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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흙
계수님께


며칠 전 1급 우량수들이 머지않아 이사가게 될 신축 교도소에 일 나갔다 왔습니다. 제초(除草), 평탄(平坦)작업 등 나들이삼아 보내준 수월한 작업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징역 살아온 1급수들은 과연 징역의 달인들답게 엄청난 주벽(周壁)과 철창에도 주눅들지 않고 흡사 내 집 마련해서 가꾸는 흥겨움으로 걸죽한 농담 우스개를 잘도 화답해가며 일손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몇 해나 더 이곳에 자신을 가두어야 하나 착잡한 생각에 눌리었는지, 농담 우스개도 뚝 끊기고 돌자갈에 삽날 우는 소리만 적막을 더해주는 그런 섬뜩한 순간이 문득문득 찾아옵니다.
1919년 기미년의 함성 속에서 준공된 현재의 대전감옥은 그 높은 벽돌담으로 하여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땅이었지만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험난한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무수한 사연들로 점철된 땅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날 이곳의 흙 한 줌을 가지고 가서 새 교도소의 땅에 묻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으로 얼룩진 흙 한 줌을 떼어들자 역사의 한 조각을 손에 든 양 천 근의 무게가 잠자는 나의 팔을 타고 뛰어들어 심장의 전율로 맥박칩니다. 나는 이 살아서 숨쉬는 흙 한 줌을 나의 가슴에 묻듯이 새 교도소의 땅에 묻고 돌아왔습니다.
불더위와 물소나기가 그리도 팽팽히 싸워쌓더니, 끝내 더위가 한풀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긴 것은 물이 아니라 세월이었다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추위가 닥치기까지의 짧은 가을을 앞에 놓고, 나는 더위에 힘부쳐 헝클어진 생각을 잘 꾸려서 그런대로의 마무리를 해두고 싶습니다.

 

 

1983.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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