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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민요 2제(二題)
계수님께


자칼이 덤벼들거들랑 하이에나를 보여주고, 하이에나가 덤벼들거들랑 사자를 보여주고, 사자가 덤벼들거들랑 사냥꾼을 보여주고, 사냥꾼이 덤벼들거들랑 뱀을 보여주고, 뱀이 덤벼들거들랑 막대기를 보여주고, 막대기가 덤벼들거들랑 불을 보여주고, 불이 덤벼들거들랑 강물을 보여주고, 강물이 덤벼들거들랑 바람을 보여주고, 바람이 덤벼들거들랑 신(神)을 보여주어야지.

 

[덤벼들거들랑] 전문

 

내 눈에는 다래끼가 났는데, 악어란 놈이 내 다리를 잘라먹었네.
마당에 있는 염소란 놈 풀을 먹여야 할 텐데
솥에는 멧돼지 고기가 끓어넘는구나.
돌절구에 빻다 만 곡식이 말라빠지고 있는데
추장은 나더러 재판받으러 오라네.
게다가 나는 장모님 장례식에도 가야 할 몸.
젠장 바빠 죽겠네.

 

[악어가 내 다리를 잘라먹었네](A crocodile has me by the leg) 전문

 

 

위의 시 두 편은 {아프리카 민요집}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
이 시들은 아프리카를 먼 대륙에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삶 속에서 발견하게끔 합니다. 자연의 한가운데서 자연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그 마음과 운율을 다듬어낸 아프리카의 민요는 놀면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쓸데없는 의상이나 남을 속이는 분식(粉飾)이 없습니다. 최소한의 '필요'로써 입을 뿐 '의미'로써 입는 일이 없어, 어느 경우든 옷보다 사람을 먼저 보여줍니다.
바로 이 점에서 아프리카는 문화인류학자들의 근시안경에는 다 담을 수 없는 원대한 규모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명의 뜻을 재정립하지 않을 수 없는 현대의 고뇌에 대해 싱싱하고 건강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린이들의 아사(餓死), 빈번한 쿠데타, 전쟁 등 적나라한 폭력의 횡행은 아프리카가 새로운 형태의 '야만'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원래 아프리카의 것이 아니라 '문명'이 그 노폐물을 아프리카에다 하치(下置)함으로써 야기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프리카는 정직하고 때묻지 않은 대지와 숲의 신뢰로 하여 '사람'이 크는 땅인가 봅니다.

 

오늘은 휴일이라 서화 악대 스무 식구 다 모여 수다스럽기가 곗날입니다. 우리들의 수다는, 비워두면 이내 다른 우울한 것으로 채워져버리는 마음을 어떻게 해보려는 헛수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헛수고인 까닭은 교도소에서는 수다보다는 침묵이 훨씬 더 잘 번지기 때문입니다.
내일 모레가 6월, 자꾸 뜨거워집니다. 가내 평안을 빕니다.

 

 

198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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