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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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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의 물에 보름달을 담듯이
계수님께


얼마 전에 2급 우량수방으로 전방하였습니다. 무기수답지 않은 자그마한 보따리 하나 메고,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열한 가족의 받은 징역이 도합 242년, 지금까지 산 햇수가 140년. 한마디로 징역을 오래 산 무기수와 장기수의 방입니다. 응달 쪽과는 내복 한 벌 차(差)라는 양지바른 방이라든가, 창 밖에 벽오동 푸른 잎사귀 사이로 산경(山景)이 아름답다는 점도 물론 좋은 점이지만, 나에게는 역경에서 삶을 개간해온 열 사람의 역사를 만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가슴 뿌듯한 행운입니다.
스스로 신입자가 되어 자기 소개를 하면서, 나는 판에 박은 듯한 소개나 사람의 거죽에 관한 것 대신에, 될 수 있는 한 나의 정신의 변화, 발전 과정을 간추려 이야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내 딴에는 사람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는 노력의 일단이며, 자위와 변명의 도색(塗色)을 허락치 않는 제3자의 언어로 표현된 자기를 가져보려는 시도의 하나입니다. 짧은 시간에 대어 돌아가며 하는 대수롭지 않은 몇 마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나의 노력은 버들잎 한 장으로써도 천하의 봄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실함과, 한 그릇의 물에 보름달을 담는 유유한 시정(詩情)을 지니고 싶어하는 소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번의 전방은 나의 생활에 찾아온 오랜만의, 그리고 큼직한 변화입니다. 이 변화가 가져다준 얼마간의 신선함은 우리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답보와 정신의 좌착(座着)을 질타해줍니다.
더 좋은 잔디를 찾다가 결국 어디에도 앉지 못하고 마는 역마(驛馬)의 유랑도 그것을 미덕이라 할 수 없지만 나는 아직은 달팽이의 보수(保守)와 칩거(蟄居)를 선택하는 나이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마살에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며 바다로 나와버린 물은 골짜기의 시절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옷자락을 적셔 유리창을 닦고 마음속에 새로운 것을 위한 자리를 비워두는 준비가 곧 자기를 키워나가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화용이, 민용이 사진보다 더 자랐으리라 생각됩니다.

 

 

198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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