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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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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묶어서
부모님께


그동안 아버님의 서신과 책을 여러 차례 받고도 즉시 회신을 드리지 못하여 무척 궁금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문화사]와 [조사월보]는 읽고 있습니다만 [다이제스트]는 열독이 허가되지 않고 있습니다. 차후로는 송부하시지 않도록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월보나 논집류와 같이, 같은 책을 여러 권 보내실 때는 묶어서 한 권으로 철해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은 5권 이상 책을 소지할 수 없기 때문에 권수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아는 보내주신 약과 마사지 등으로 일단 나았습니다만 아마 근치(根治)는 어려운 듯합니다. 한동안 나았다가도 일정한 잠복기(?)가 경과하면 주기적으로 재발하곤 합니다. 그러나 증세가 그리 심한 편은 아닙니다. 너무 심려하시지 않기 바랍니다.
지난 달에는 약 한 주일간 지방을 다녀오셨다니 비록 한유(閑遊)는 아니라 하더라도 다소 심기가 전환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일상의 궤도에서 잠시 몸을 뽑는다는 것은 우선 그것만으로서도 흡사 도원(桃園)에 들르는 마음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불교사상]에 아버님의 글이 게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빌려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이제 더위도 지나가고 결실과 수확의 가을입니다. 저는 물론 씨를 뿌리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거두어들일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높아져가는 하늘 밑에서 묵묵히 사색의 결실은 가능하리라 생각해봅니다.

 

1973.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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