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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출역(出役)
동생에게


처연한 밤빗소리 속에서 잠자다가, 가끔 청초한 7월의 하늘이 말끔히 개인 새벽에 깨어날 때, 나는 문득 7월이면 청포도가 익는다던 '육사'(陸史)의 고향을 그리워해본다. 그러나 그리움이란 것도 퇴색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에 이미 더 높은 돌담을 쌓았기 때문인지 그저 그럴 뿐 오히려 물밑같이 조용해지기만 한다.
사진 두 장을 동봉한다. 벌써 3년. 박경호 군의 출소를 앞두고 비록 홍소(哄笑)는 아니라 하더라도 은근히 웃어본 것이다. 또 한 장은 같은 공장 사람들이다. 경호 군의 옆이 송영치 군의 부친이시고 좌측 제일 뒤가 너도 잘 알겠지만 김희순 씨이다. 그리고 구태여 내가 지적하지 않더라도 네가 결코 간과하지 않으리라 믿지만, 내가 입은 옷은 제법 풀까지 먹여서 빳빳하게 줄이 섰다는 사실을 특히 강조해두고 싶다. 깨끗한 옷으로 은근히 웃고 있는 사진은 그만큼 나의 심신이 건강하다는 것이 된다.
지난 9일부터 제5공장(염색공장)에 출역(出役)하고 있다. 근 3년 만의 출역이라 좀 어색하기도 했지만 전 공정이 완전히 기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히 힘들여 할 일이 없는 셈이다. 다만 염색에 전혀 문외한인 내가 작업부서에 좀 서투른 게 흠이지만 이것도 곧 숙련되리라고 생각된다. 또 잘 아는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신참인 내가 자연히 여러 가지로 편의를 받고 있다. 공장 앞에는 팔이 긴 버들이 서 있고 널찍한 화단에는 잎 넓은 칸나 그리고 잘 익은 꽈리도 줄지어 있기도 하다.
나는 내가 너의 일에 대해서 걱정한다든가 또는 아버님, 어머님, 형님, 형수님 등 집안 식구들의 일을 걱정한다는 것이 격에 맞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생활을 보다 알찬 것으로 이끌어감으로써 어머님, 아버님의 나에 대한 걱정을 먼저 내 쪽에서 덜어드리고자 할 따름이다. 너는 이러한 나를 잘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너는 어머님과는 좀 다른 방향에서 나를 걱정해주리라고 믿는다. 바로 이 점에 관한 한, 너와 형님께서는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나를 신뢰하리라 생각한다.

 

197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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