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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학理學에 대한 심학心學의 비판


   명나라 중기에 신유학에 대한 비판 이론으로서 양명학陽明學이 소위 심학心學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양명학의 대두는 지식인 사회에 상당한 반향과 새로운 지적 전환의 가능성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비판 이론으로서의 심학은 신유학과 같은 강도와 파장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심학이 당쟁의 와중에서 그 입지를 상실하고 후에 강화학파로서 명맥을 유지하는 데 그칩니다. 우리는 물론 이 심론心論에서 매우 중요한 성찰적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다루지 못합니다.

   주자의 이론이 성즉리性卽理임에 반하여 심론의 요지는 심즉리心卽理입니다. 신유학이 선종 불교에 대한 비판적 체계라면 양명학은 신유학에 대한 비판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자의 체계가 독서궁리讀書窮理쭭지혜라는 논리임에 반하여 심론은 ‘양지’良知에 직접 호소하는 체계입니다. 바로 이러한 성격이 선종 불교와 마찬가지로 대중화에 성공하게 합니다. 신유학이 선비의 학문에 갇힌 것과는 달리 심론을 주장한 육상산陸象山의 강론에는 수많은 사람이 운집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명대明代의 인구 증가와 사회의 계급적 질서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심론의 차별 철폐 사상과 평등
사상이 상인 계층의 전폭적 호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리고 심론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주체성의 강조입니다. 주체성이 심心이라는 또 하나의 주관적 관념론으로 표상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심론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주체성이라는 적극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상산의 이론을 계승한 왕양명(王守仁)은 성性과 이理를 심心으로 통합해냅니다. 구체적 현실은 심으로 통일된 ‘인식된 세계’이며 그런 점에서 인간과 세계는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왕양명의 체계는 심心=성性=이理이되 그것은 심으로 통일되는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효친孝親의 마음이 없다면 효도의 이理가 있을 수 없으며, 충성의 마음이 없다면 충성의 이理가 있을 수 없다”(無孝親之心 無孝之理 無忠君之心 無忠之理)는 논리입니다. 충효의 이理가 있기 때문에 충성과 효심이 생긴다고 하는 주자의 입장과는 정반대입니다. 주자 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는 추상적 ‘이理의 세계’가 존재할 여지가 없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심론에서는 이理의 객관적 실재성을 전제하는 주자의 사상 체계가 원천적으로 부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론은 『대학』의 3강령과 8조목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명덕이란 대인大人이 천지 만물을 일체一體로 삼는 ‘마음’(心)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명명덕이란 그 ‘체’體를 수립하는 일이며, 친민親民이란 그 ‘용’用을 행하는 일이며, 지선이란 명덕과 친민의 기준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3강령을 명덕 즉 ‘심’心 하나로 통일하고 있습니다.

   8조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통일적으로 설명합니다. “격格이란 바로잡는 것이며 물物이란 일(事)이다”(格者正也 物者事也)라고 새롭게 해석합니다. 물物의 시비是非를 바로잡는 것은 양지良知이고, 지식을 넓히는 것은 물物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8조목 역시 ‘치양지’致良知로 귀일歸一됩니다. 격물이 단지 사물과의 관계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솥에 쌀을 넣지 않고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이 허황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결과적으로 양명학에서는 ‘격물치지정심성의수제치평’格物致知正心誠意修齊治平이 치양지, 즉 심心으로 통일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세운 다음(先立其乎大者) 성誠과 경敬으로 보존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논리입니다. “너를 묶는 그물을 찢어라(決破羅網), 공자孔子, 육경六經도 존숭할 필요가 없다”고 양명은 선언합니다. 물론 심학은 글자 그대로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심론心論에서 긍정적으로 읽어야 할 부분은 바로 ‘주체적 실천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인식이 실천의 결과물이라면, 그리고 그 실천이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목적의식적 행위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신유학에 대한 심학의 문제 제기는 매우 정당한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양명학의 심心이 선종 불교의 심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강화학파에서 바로 그러한 일면을 읽을 수 있는 것이지요. 강화학파는 무엇보다도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였고 구한말의 현실에 무심하지 않았지요. 북만주로 떠나는 우국지사들이 떠나기 전에 강화의 계명의숙을 찾아가 참배했던 사실에서도 바로 심心에 대한 양명학적 의미 내용을 읽을 수 있는 것이지요.
신유학과 양명학의 이론적 지양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미시적 관점보다는 거시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즉리性卽理와 심즉리心卽理의 논리적 구조를 천착해 들어가기보다는 신유학과 신유학에 대한 심학의 문제 제기라는 일련의 논쟁적 과정을 통하여 사상사의 전개 과정을 읽는 일이지요. 그것은 사상의 일생一生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상의 생성―발전―변화 그리고 소멸의 과정을 추적하는 일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사상사의 전개 과정에서 사회 변화를 읽어내는 일입니다. 사상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고, 다시 사회적 변화를 정착시키고 제도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사상 고유의 전개 과정을 확인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회적 변화는 사상 투쟁에 의하여 시작되는 것이며 사회적 변화는 사상 체계의 완성으로 일단락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연속과 단절, 계승과 비판이라는 중층적 과정을 경과하는 것이 사상사의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지만 이처럼 복잡한 전개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체적 입장과 실천적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의 새로움이란 단지 이론에 있어서의 새로움이 아니라 입장과 자세에 있어서의 ‘새로움’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창신創新의 자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지적 관심은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실천적 과제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경우 특히 주의를 요하는 것은 이러한 창신의 실천적 과정이 보다 유연하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창신이 어려운 까닭은 그 창신의 실천 현장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현실은 우리의 선택 이전에 주어진 것이며 충분히 낡은 것입니다. 현실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요. 과거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현실을 창신의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이 유연한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과거란 지나간 것이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흘러가고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 같이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일 따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 그루 느티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과거, 현재, 미래를 고스란히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모든 실천은 무인지경無人之境에서 새집을 짓는 것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창신은 결과적으로 온고창신溫故創新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곡선의 형태로 수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조와 우상을 과감히 타파하는 동시에 현실과 전통을 발견하고 계승하는 부단한 자기 성찰의 자세와 상생의 정서를 요구하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고전 강독이 바로 그러한 자세와 정서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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