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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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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릉갸릉 아이의 작은 숨결인 듯 긴장을 느슨하게 이완시키는 소리와 작은 진동, 하루의 전장에서 패배로 혼곤한 구슬픈 육체를 깊숙하고 따스하게 안겨주는 소파, 우울한 정신을 감싸안는 쇼팽 녹턴 9번의 명징한 피아노 선율, 잊혀진 후각을 은근하게 일깨우는 잔잔한 향. 낙오자가 되어버린 나를 위무해주고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게 하며, 사람 하나 하나가 그리 귀중할까 싶은 그런 생각이 샘솟는 이곳.

그러나 내가 처한 이곳은 평온한 휴식과 평화, 인간적임과 격조와는 거리가 먼 나의 차안이다. 언제나 소음과 속도가 일으키는 불안을 피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그날의 날씨에 그대로 노출되어 비를 맞기도 하고,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서던 자전거와는 생판 다른 이 환경이 두려워진다.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건가. 이 편함의 대가로 내가 연료비를 ‘지불’하는 것만으로, 지구의 나이와 얼추 비슷한 땅속 깊이 묻혀있던 것을 일순간에 태워가며 이런 안온을 향유한다는 것은 뭔가 경우가 맞지 않을 거라는 의식은, 그놈의 차안에 들어가 몸을 싣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아무래도 나의 판단미쓰였다. 내가 그나마 떳떳할 수 있었던건 몸으로 때우면서 배우고 익힘을 통해 만들어내는 전통적인 경험의 힘들이 밀고가는 나의 생활이었고, 나의 삶이었다. 누릴 수 있는 편리와 가능할 수 있는 좋은 용도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보고 판단하는 우리 수준에서 차를 한 대 더 추가하는 일은 지구적으로 계산한다면 미필적인 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명색이 사회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친구가 덥썩 덥썩 새롭고 편리한 것들과 타협하면서 거대한 자력을 발휘하는 체제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뭔가 더 큰 명분과 마땅히 그럴만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생각해야 했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여러분들 앞에서 별로 할 소리가 없게 생겼다. 그렇게 살지 않는데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지하철을 그만둔다는 소리를 하지 못하게 생겼다. 어느 정도 공부 한 다음 나를 자유롭게 하는 삶을 살고 싶었고, 그렇기 위해선 100만원으로 버틸 수 있는 간편한 생활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제는 그것과 멀어진 것이다. 무엇이 나의 신념을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뜨렸는가하는 뒤늦은 자책은 너무 늦었다. 삶에서 작은 원칙을 지키려는 고집, 공부가 시키는 비슷한 삶을 바보처럼 추구하려는 고지식한 정직을 점점 잃어버리고, 나도 이제 내가 탓하던 그런 삶을 살기로 작정했나보다. 무엇이 옳은 삶인지를 끝없이 물었던 책상에서, 이제는 '가볼만 한 곳'류의 여행책들을 뒤적거리고 있는 나를 들여다본다. 전향을 했으면 진작에 했을 일이지 엉거주춤 어물쩍거리다 슬쩍 절정에서 발을 빼는 이 꼴이 참으로 우습고 민망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인연을 맺은 나의 차와 친해지고, 어떻게 하면 서로가 잘 지내는 일인지를 찾아보는 일도 조금 덜 구겨지는 걸거라고 스스로에게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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