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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4.09.19 04:29

가을 산방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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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교수님 강의가 강원도 '개인(開仁) 산방'(숲속의 강의실) 에서
있다는 말을 듣고 주말이어서 미리 신청을 해놓았다.
학교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러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출발했다.
서울 외곽 고속도로를 이용,  다행이 군 복무중인  아들이 있는 홍천를 거쳐가는 곳이었다.   홍천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들 면회다니러 가던 길이라  비교적 익숙했다. 양평을 거쳐 44번 국도를 이용하였다.

산방은 설악산을 넘어가는 인제군에 위치한 곳으로 알고 있다.  국도를 벗어나 지방도를 가면서부터 주위 아름다운 경관에  눈이 팔려 운전이  조심스러웠다.
  길은 급한 커브길로  뱀모양의 도로 표지판이 연이었다.  거기다 거의 오르막 내리막 길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산길을 벗어나서 들판을 지나는 직선주로가 잠시 이어졌다. 시간은 늦고 급한 마음에 조금  속력을 냈다. 한 가운데쯤 지났을까? 네모난 도로 표지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어디를 가시려고 그렇게 서두르십니까?'
그 글귀를 다시 되뇌이며 얼핏 웃음이 나왔다. 그것이 단순히 목적지를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지만, 섬짓한 다른 말이 생각나서이다.
  강원도 산야가 어디인들 아름답지 않은 경치가 있을까만 가을이 물들어가는 들녁과 하얀구름자락이 지나는 그 빼어난 자태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젊어서 같은 것을 보고도 느끼지 못하던 게, 이제 나이들어서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었다.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빨리 가는 세월은 붙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었던가, 그렇게 서둘러 달렸어도 갈길은 멀고 해는 이미 서산 아래로 기울고 있었다. 차츰 어둠이 밀려오고 헨드폰으로 길을 물어 찾아가기는 하였으나 처음 길이라 강원도 산길은 낯설고  멀기만 하였다.
  깊은 산자락에 들어가서는 전화까지 불통이 되었고, 어둠은 두려움이 되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마침 산자락 속에 불켜진 인가가 있어 길을 물으니 한 고개만 넘어 가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칠흙같이 어두었고 저 아래서는 굽이치는 물소리가 울리듯 들려왔다.  다행히 전화는 다시 연결되어,  길 한켠에 차를 세우고 언덕 아래로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어둠속을 손전등도 없이 더듬어 내려가니 물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고,  강줄기 건너편에  불빛이 보였다. 굽이치는 강물을 가로 질러 둑을 쌓고 물길이 지나도록 한 임시 다리가 놓여 있었다. 물은 비온 끝이라 부분적으로 둑 위에까지 넘쳐 흐르고 있었다. 멀리서 비쳐오는 불빛으로 다리를 건너 올라가니 전화 연락을 받았던 분이 손수 손전등을 들고  반가히 맞아 주었다.
  먼저 온 분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짐을 내려 놓을 사이도 없이 식당으로 이용하는 주방에 옮겨가 애써 차려준 저녁을 먹었다. 산나물 반찬에 된장국을 말아 먹고 있을 때, 교수님이  나오셔 우리 옆에 가까이 앉으셨다. 아마 우리가 늦게 온데다,   낯설어 서먹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함인것  같았다.   강의실에서만  뵙다가 한방에서 가까이 뵈니 또다른  친근감이 느껴졌다.

  저녁 7시 30분쯤 노자(老子)를 주제로 강의가 시작 되었다.
  우선은 모든 것을 인위적(人爲的)으로 하려들지말고 자연의 이치에 따르라는 것, 그리고 항상 쟁(爭)을 피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 생각은 맞고, 상대방 생각은 틀렸다고 고집하는 것, 어떠한 다툼도 만들지 말라는 것.....,  초저녁에 시작한 강의는 밤 늦은 11시를 넘기고 이어졌다.

  강의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옮겨 말랑말랑한 감자 떡과 찐 감자를 앞에 놓고 편안한 화재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주로 교수님이 감옥에서 20년 동안 겪었던 여러가지 에피소드, 궁금하게 여겼던 일들을 묻고 이야기했다.
  몇번이고 출소되었다가 얼마후 되돌아와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출소되어 나갈 때 '바르게 살라'라든가,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말라' 든가 하는 충고성 이야기를 하실 법도 한데,  단 한번도 그런 말씀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 다시 들어올 수 밖에 없는 그 자신만이 갖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일 수도 있고, 공연히 입에 발린 그런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왜 그런 말씀을 해주지 않았는지 교수님의 심경을 잘 알지 못하면서 내가 이러쿵저렁쿵 쓰는 것 조차도 조심스러운 일이긴하다.

   밤이 깊어서도 이야기는 계속이어졌으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는 성경의 말씀처럼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 가야했기에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결실의 가을, 집사람과 함께한 뜻 깊은 산방여행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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