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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게 자신도 모르는 미신을 간직하고 있는데, 의례 작년에 나온 기계보다 올해 개발된 기계가 더 향상된 거고, 옛날 보다 지금이 더 잘 살고, 그래서 내일은 더욱 어제나 오늘 보다 발전될 거라는 '진화론적 믿음'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흔드는 기사가 지난 7월 23일 한겨레 국제면에 실렸다. 2000년 기준으로 해서 163개 나라 가운데 한국의 "사회진보"수준이 41위, 그런데 90년 124개 국 대상 중 30위였단다.  2000년 기준이라면 말깨나 할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 얘기하는 '권위주의 통치시기를 지나 민간 정부로 안착되는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가 제도화되는 과정'과 일치하는 시기일테고, 90년대라면 여전히 후진적인 군사정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사회진보지수의 항목 중에는 보건·교육·인권·정치참여도·인구증가·여성의 지위·군사지출 등 40개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고하는데, 나는 이런 항목들에 눈길이 간 것이 아니라, 어째서 전반적인 사회의 민주주의 정도가 되려 퇴보한 것으로 나타났을까에였다. 90년도 이후에는 NGO들이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백가쟁명을 이뤘고, 김영삼정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민주화운동 보상법이니, 의문사 진상규명, 국가인권위 등이 국가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던 걸 기억하면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사를 보고 "뭐 이런게 민주주의야"했던 의문의 어떤 혐의들이 구체화되는 듯 싶었다. 김대중 정부가 좋게 한 것도 많은 게 아니냐. 남북간 긴장해소를 위해 노력했고, 이러저러한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들은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머리가 돌아버리기 직전까지 가곤한다. 그러면서 의식이 트였다는 사람들의 수준이 그 정도에 머무르니 무슨 일인들 제대로 될까 하였다.

며칠 전 출근을 하다가 아는 승무원을 만나 함께 운전석에 타고 가면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선배 생각이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한다는 사람들 보다 훨씬 명쾌했다. "지금 우리 사무실의 동료들은 돈만 알지, 예전처럼 뭔가 옳은 일을 하는 후배들에게 미안해하거나,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와주려고도 하지 않아, 예전에는 그래도 아무리 후배라 하더라도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떳떳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은 외롭게 살고 목소리만 크고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 더 설친단말이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직장 풍경이 엉망이 된 것은 김대중 때 결정적으로 완전히 맛이 갔다는 거다. 내가 갖고 있던 어떤 답답함을 그 선배도 갖고 있었고, 문제의식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노무현정부의 개혁이 작은 메아리도 없이 여기저기서 삐그덕 거리기만 하는 이유중 하나는, 우리 국민들의 인성을 이미 민주주의라는 큰 방향과는 반대의 성질로 물꼬를 확 틀어버렸기 때문이지 않나싶다.  

밤에 일하다보면 참으로 기가막힌 '시민'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하는 소리는 대개 내가 세금내서 니들 월급주는데 이렇게 시민들에게 불친절할 수 있느냐, 시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아가면서 맨날 파업만 하느냐, 먹고 살만한 놈들이 파업을 해서 우리같은 놈들 못살게 한다,는 등 부산의 어느 곳에 파업해도, 교육분야에서 갈등도 지하철에 와서 난리를 치는 등 전혀 번지수도 틀리고 맥도 짚지 못하는 시민들의 무례한 요구들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삿대질을 하며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대개 술에 만취해서 자신의 몸도 가누기 어려운 상태이고, 그들이 그렇게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차서 불편과 시민의 권리를 따지도록 만든 계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의 다 본인의 실수이거나, 기분도 드러운데 한번 풀어보자는 쓸데없는 고집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나는 이런 시민들이 어디 신림역에 만나는 사람들 만 그럴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번지수도 제대로 짚지 못하고, 맥락도 모르는 체, 자기가 포함된 집단의 주장의 결과가 우리 공동체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일으키는지 염두해 볼 줄아는 이성능력의 부재 상태에서, 무리를 이끄는 늑대가 짖으면 우루루 따라 짖어대듯 하는 우리의 시민들의 징글징글한 모습이 환영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나는 저런 시민들을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했었던, 그 말의 맥락이 지금과는 다르지만 참으로 공감할 수 있을 듯한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저런 국민들을 이끌고 함께 뭔가를 해보자니 될 리가 있을까. 저런 수준의 국민들이 여기저기에 대다수를 이루고 있으니 한나라당 같은 포퓰리즘의 정당이 큰소리를 치고 저급한 조선일보나 스포츠 신문들이 승승장구 확장되는 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생각했던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사회연대 또는 사회유대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기억나는 이들 중에 토크빌 같은 이는 국가의 기능을 개인의 이익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의 관심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데 집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그 제도가 대의제인 선거참여와 배심원제다. 그냥 먹기 살기 위해 앞만 보고 살던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개입하게 되고, 국가의 정책결정에 참여함으로써 인식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을 거라는 의도였다. 뒤르켐은 신민에서 시민으로 성장하기위해서는 개인이 전체 사회구조 속에서 정체성을 인식해야 되며, 가톨릭에 의한 이데올로기를 대체하고 사회에 책임지는 새로운 사회의식을 위해, 사회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이성능력을 키우도록 사회학을 모든 국민이 교육받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교육행정가로서 실제 프랑스의 모든 교육기관에 사회학을 의무과목으로 도입하여 보편적인 시민으로 함양하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공동체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상가들이라면 모든 이들이 이와 비슷하게, 개인이 사회 속에서 온 정신을 갖고 바로 설 수 있도록 힘을 쏟았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우리보다 먼저 민주주의를 실현한 국가들은 이러한 정신들이 노동자나 민중에 의한 저항과 요구에 의해서든 간에 국가의 정책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내세우던 김대중 정부시절을 되돌아보면 권위주의 체제 동안에도 그나마 남아 있던 마지막 도덕적 영역까지 탈탈 터는 일에 국가정책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사회의 모든 구조를 시장의 질서 지배로 밀어넣는 구조조정을 집요하게 진행했으며, 이에 저항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철저하게 고립화시켰다. 그의 신념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전체 국민을 시장형인간으로 개조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그가 말하던 민주주의와 인권과는 상충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사회구성원 모두를 철저히 파편화·탈정치화하는 거대한 국가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이런 상호 충돌하는 정책에 모순을 느끼지 못하고 무력하게 김대중 정부의 제한된 개량정책에 추종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지식사회였고 일부 진보영역이었다. 한나라당이 대중 속에 잠재되어 있는 저급한 비합리성에 의존하는 극우적 포퓰리즘 정치집단이라 하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을 대상으로 했던 특검이 시민사회 속에서 큰 저항을 받지 않았던 것도 따지고 보면 김대중정권의 최대 업적인 대북정책도 그 본래 의도에서는 정직하지 못했던 데서 발생한 정당성의 결함이었다는 반증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남쪽 사회의 민주주의 기반을 거덜내면서 이루어지는 민족공조정책이 궁극적으로 평화·민주체제라는 옳은 방향으로 정향(定向)될 리는 없는 일이다.

과거 권위주의 치하에서는 그래도 옳음에 대한 대중의 보편적인 지향들이 있었다. 또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에 대한 잠재적인 역동성도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기는 모든 부문의 운동은 실패를 거듭했으며, 국가는 이들에게 철저한 열패감을 안기고는 했다. 아마 내가 느꼈던 무력감과 주변 사람들의 관심 분야가 점차 좁아지면서 오로지 돈과 자기 개인 축소되는 현재까지의 이어지는 이 사회적 답답함이 바로 사회진보지수의 퇴보를 나타내는 증표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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