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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다리는 세상이 아직 오기도 전에, 이미 그런 세상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끔 만날 때가 있다."
한 선배는 세상 살며 머뭇거려질 때 그 사람들이 자신의 등을 떠민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 함께읽기, 그 좋은 시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부름을 받은 듯 강원도 화천에 귀농하신 선배님 댁에 다녀왔습니다.

그랬지요. 내가 앞으로 살고 싶은 세상을 미리 살고 계신 분들. 그리고 그 분들과 함께 있던 순간만큼은 나뿐만 아니라 거기 함께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세상을 미리 살고 있는 듯, 걱정거리라곤 없다는 듯한 순하디 순한 웃음만 보이며, 조곤조곤 얘기를 나누곤 했지요.

그곳에서 내가 흘리고 다녔던 웃음들을, 오늘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를 응시한 채 일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우하하하 터지던 내 웃음, 누가 혹시 내 손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꺼이 손을 내밀고 기꺼이 더럽히던 손. 그럴 때의 내가 나도 참 마음에 듭니다.

그곳으로 떠나기 전날인 금요일, 소식지를 만드는 날이었음에도 일에 펑크가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도무지 일이 하기 싫었던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떠나던 날 점심 무렵 만난 친구가, 동료 100명이 바로 전날, 그것도 전화로 해고통지를 받았고 그래서 몇몇 동료와는 참담한 송별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까지의 총 수입이 흑염소를 팔고 받은 40만원이 전부시라니 속으로야 이런 저런 걱정들이 불쑥 머리를 드는 날들이 찾아오기도 하실 것이고, 그리고 전해 듣기로 귀농을 결정하는 과정에 약간의 밀고 당김이 없진 않았었다고 하시지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신 듯한, 어머님을 비롯해 선배님 부부 간의 곱디 고운 정담들이 ‘부부 관계’라는 것을 고민하던 일행 중의 누군가에게도 앞당겨 살아내고픈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순전히 제 입장에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 선배님이 그 자리에 그렇게 계셔서 저는 얼마나 좋은 지 모르겠습니다.

****************

나이가 찬 상태로 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그것도 부모님이 그리 썩 탐탁치 않아하는 일터에 나가다 보니(작년까지도 아빠는 내가 교사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가끔씩 털어놓곤 하셨지요),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할 때 늘 약간은 조마조마한 마음이 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듣기 싫은 화제가 밥상머리에 올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늘 화제를 선수쳐야 했기에 무심한 듯 밥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은 핑핑 돕니다.    

대개는 최근에 다녀간, 아니면 다녀온 언니네에서 봤던 조카들의 최근 행동거지들을 입에 올리거나 친척들의 근황을 돌아가면서 묻거나 기억하는대로의 부모님의 최근 소식(?)을 업데이트하곤 하지요. 내 일터의 좋은 점들만을 자랑스레 늘어놓기도 하고.

그런데 작년에 주말농장할 때는 참 좋았습니다. 자주 가보지도 못했지만, 거기 뭘 심으면 좋을까에서부터 언제 가려고 한다, 오늘 가보니 어떻더라, 이걸 이렇게 먹지만 또 저렇게도 먹는다더라, 풀이 많이 났던데 이걸 어떡하면 좋을지, 이걸 다 뽑아내고 뭘 심을지, 그래도 어떤 걸 거름으로 줘도 좋지 않을지, 이렇게 자주 못 가서 어째야 할지, 다음에는 나대신 누가 갈지, 나랑 누구랑 갈지 등등 나눌 화제들이 풍부해졌거든요.  

그러면 내가 얘길 꺼내자마자 부모님의 풍부한 경험과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지식들이 쏟아져 나와 그걸 주워 듣느라 바빠집니다. 싱싱한 푸성귀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만큼 제게는 큰 수확이었습니다. 엄마는 두어 번 평일에 혼자서 그 주말농장에 다녀오시며 예전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놀이하듯 흥겹게 일했노라고 하셨지요. 고추나무 하나를 정말 나무 한그루처럼 훌륭하게 키워놓으셨다는 할머니에게 아파트 베란다 넓이만큼, 옥상 넓이만큼의 흙을 퍼 드려야 하지 않을지 그제서야 고민하기도 했지요.  

요즈음 부쩍 엄마의 잔소리가 심해 실무자들이 생산지방문을 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거라고 살짝 거짓말을 했지만 잔뜩 열무를 얻어 와서는 또 열무 다듬는 방법이 어떤 게 옳은 건지에 대해 밥 먹으며 한참 얘기했지요.

오늘 이걸 다듬는데, 다른 사람들은 열무 맨끝부분을 맛없다며 버리라던데 그게 옳은 건가, 아니다, 나 자랄 때는 집이 농사를 지어 아무리 많아도 한 잎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맞다, 다른 사람 파다듬는 거 봤는데, 거의 대 부분만 먹더라, 상한 부위만 떼고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맞다, 우리집만큼 먹는 거 알뜰하게 다 먹는 집 없다... 어쩌고 저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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