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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3.05.21 10:32

행복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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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 앞, 난 거기에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인지조차 불투명한 모습으로 축 처진 육신을 거추장스러워하며 쓰러질 듯 간신히 땅을 지탱해 서있었다.
    
    영양실조인지, 며칠 전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한 게 영락없이 세상이 둘, 또는 셋으로 빙글거리며 도는 듯 했고, 온 밤을 뒤척이다 설친 잠 속에서 흥건히 젖은 몸을 일으킬 때에는 세상의 고단함에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의지 하나로 세상을 버티기에는 너무나 힘에 겨운 날들이 계속되었고, 깡으로 버티기에 세상은 너무나 삭막하고 차가웠다. 어딘가에 기대에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따뜻한 어깨가 간절히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손길이라든가, 구수한 된장찌개라든가, 하다못해 뜨끈한 라면 국물이라도 내 앞에 내미는 인정의 손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10분 지각했다는 이유로 아침부터 과장이라는 사람의 눈길이 심상치 않더니만, 점심시간이 되자 나를 자기 앞으로 불러 세웠다. 앞으로 지각을 하면 각오하라는 둥, 나이도 제일 어린 사람이 일찍 나와서 책상도 닦고 청소도 해야지 늦게 허둥거리며 나오면 어떡하자는 거냐는 둥, 몇 십분 동안 잔소리는 이어졌다. 심장이 안 좋은지 말하는 중간 중간마다 호주머니에게 호루라기 비슷하게 생긴 것을 꺼내어 입에 물면서 깊숙이 빨아 들여 마셨다. 은색 테로 인해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 더욱 날카롭게 빛났다.
    
    나는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인정에 호소하는 듯한 나약함을 보이는 것이기에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어금니를 질끈 깨물어야했다. 사실은 너무 아파서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말도, 누구 한 사람 내 이마에 물수건 한 장 올려놓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도, 지금 쓰러질 것 같은데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거라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운명이라는 것에 맞서 여 전사처럼 싸운다 해도 그만 고꾸라지고 싶은 날이 있는 법이다. 그날, 난 이제 그만 고꾸라지고 싶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괴물과의 싸움에서 두 손을 들고 항복하고 싶었다. 부모 잘 만나 편안히 아침밥상 받아가며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부럽다 못해 미웠고, 내 부모는 왜 이리도 가난하여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는 것인지 너무나 야속하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 순간, 난 희망이라는 끈을 놓고 싶었다. 도대체 이 배움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나를 이리도 힘들게 만든단 말인가. 배움과 희망, 그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양하는 지조차 불분명했고, 삶이라는 자체가 커다란 바위가 되어 한 없이 짓누르고 짓눌러 내 모양이 마치 강원도 어느 바닷가 상점에 쌓여 있는 오징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4시, 퇴근시간이 되어 천근같은 몸을 이끌고 증권회사의 문을 나섰다. 전날 저녁부터 먹지 못한 뱃가죽은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다시 열이 오르려는지 머리가 욱씬거리며 온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학교의 딱딱한 의자와 책상 보다는 방에 여전히 누워있을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세상에서 나를 받아 줄 것이라고는 그 이부자리가 전부인 듯 느껴졌다. 딱딱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곳, 그곳으로 얼른 달려가고 싶었다.
    
    빨간 불은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내 다리의 후들거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길 양쪽으로 사람들을 대기시켜 놓고 하얀 횡단보도 위로 무수히 많은 차들을 쏟아 붓고 있었다. 빨간 불은 눈이 아픈지 부릅뜨고 있던 눈을 잠시 감았다. 그리곤 푸른빛이 도는 불이 눈을 뜨면서 이제 건너가도 좋다는 무언의 암시를 보냈다.
    
    푸른빛의 그것은 모든 차량을 일제히 멈추게 했고, 내 육신의 고단함을 조금은 알고 있다는 듯 어서 건너가라며 부추기는 듯 느껴졌다. 나는 내 몸과 따로 노는 다리를 끌어가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건너가는 모양을 보는 건지 어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여유 있는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자가용, 그 안에 있는 사람들, 그 별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일제히 내 시야에 들어왔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 저러한 행복을 누리는 것일까. 저 사람들은 나처럼 배가 고플까. 저 사람들은 나처럼 삶이 고단하여 금방이라도 고꾸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까.
    
    내가 찾는 행복이라는 행복은 죄다 거기에 모여 있는 듯 했다. 서로 무슨 이야기들을 주고받는지 그들의 얼굴에는 복사꽃 같은 환한 미소가 만발하였고 바라보는 눈길 속에는 서로를 향한 사랑이 넘쳐 보였다. 그들은 좋은 옷을 입고 있었고, 좋은 음식을 먹을 것이 분명했다. 좋은 영화도 볼 것이고, 좋은 집에서 편안히 살 것이었다. 서로를 사랑하며 아껴주는 가운데 근심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을 그들은 하고 있었다.
    
    행복, 그러한 행복이 내게도 올 것인가. 하지만 내 생각은 극도로 비관적인 쪽으로만 달려갔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엄청난 무엇인가가 놓여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고 내게도 그러한 행복의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비쩍 마른 고등학교 일학년의 소녀는 횡단보도 어디에서 서 있지 않다. 다만,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 앞에 불혹을 막 넘긴 내가 차 안에 앉아 있을 뿐이다. 난 그 고단했던 시절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녀는 서서히 횡단보도를 지나고 있다. 소녀는 고개를 돌린다. 불혹을 넘긴 나와 눈이 마주친다. 소녀는 생각한다. 저 여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하지만 차 안에 있는 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다.
  
    도대체 행복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잣대는 항상 변화무쌍하다. 일차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일차적 욕구의 해결만이 행복으로 가는 길 인 냥 보인다. 하지만 그 욕구가 채워졌을 때 인간은 또 다른 행복의 조건들을 찾아 사냥을 떠난다. 그렇게 쫒아가고 도망가면서 행복은 점점 손안에 머물지 못하고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소녀의 시점에서 본다면 나는 분명 행복해야 정상이다. 좋은 옷을 입으며,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산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얼마든지 좋은 영화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난 아직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존재하면서 순간적으로 몸을 돌린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분명, 행복은 내 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욕심이라는 검은 연기에 감추어져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뿐, 파랑새는 늘 자기 안에 있듯이 내 안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을 것이다. 난 이제 사냥꾼이 되어야겠다. 행복 사냥꾼 말이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나의 행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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