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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아침,, 밝은 아침 햇살이 베란다를 지나 커텐을 뚫고 안방까지 환하게 점령해 버릴때까지 행복한 늦잠을 잤다. 친구들과 나는 느긋하게 아침겸 점심을 배불리 먹고 간만에  찾아온 우리들만의 시간에 즐거워하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가 소란스러워지며 울리는 초인종소리---'어, 올 사람이 없는데' 친구들과 나는 초인종소리에 의아해하며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아. 거기에는 꽃보다 예쁜 얼굴로 우리반 은진이가 지현이라는 아이뒤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올망졸망한 세명의 지현이 동생들이 서 있고.. 저번 시간에 장애인의 날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고 4월 20일은 선생님 생일이야. 기억해' 그랬더니  '난, 생일선물 같은 건 안 줄 거야' 그러면서 나를 무안케 하던 그 은진이가 친구 지현이와 함께 내 생일이라고 일요일 아침에 찾아온 것이다. 지현인 은진이의 절친한 친구로. 아마 수줍음 많고 감정표현 잘 하지 않는 은진이가 쑥스러우니까 지현이에게 같이 가자고 이야기 한것 같다. 정신지체 엄마를 둔 착한 지현이는 일요일날 동생들만 두고 오기가 미안해서 올망졸망 동생들까지 대동해서 온 것 같고.. 뜻밖의 방문에 밀려드는 감동을 어쩌줄 몰라하며 아이들을 반겨맞았다. 그동안 은진이땜에 가슴앓이 했던 기억들과 저 녀석 그래도 나를 믿고 생각해주는구나라는 가슴 뿌듯한 감동속에서 이 아이와 1년 넘게 부대끼며 내 속에 남아있던 찌꺼기들이 훨훨 날아가버렸다.
은진---. 은진인 조금 특별한 아이다. 작년에 이 학교에 부임을 하고 이제껏 내가 가르치던 정신지체아이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특수반 아이들을 맡고 어설프게 가르치기 시작할 때 은진인 1학년 신입생이었다. 특수반 선생님이란 말에 거부감부터 보이던 아이, 수업 첫시간 교실에 들어와도 인사는 커녕 반항 띤 눈빛으로 언제 교실가? 물어보던 아이, '밥 먹었니?' 물어보면 '응 먹었어' 반말부터 하던 버릇없던 아이다. 특별히 정서장애를 보이는 것도, 학습장애를 보이는 것도 아닌 누적된 학습결손으로 인한 학습부진아인 은진이에게서 나는 시시때때로 내 인격과 능력의 한계에 늘상 부딪치며 가슴앓이를 많이 했다. 손을 잡으려 하면 어깨부터 흔들어 보이고 계속되는 반말에 화가 나 매를 들면 아프다는 신음한번 안내고 고집스런 얼굴로 매를 맞고.. 한 번은 수업시간에 내 준 학습지에 온통 낙서를 해놓고 거기도 모자라서 다른 친구들 학습지에까지 낙서를 해서, 그일만 아니라, 아이의 고집을 한번 꺽어보겠다는 생각에서 모질게 매를 든 적이 있었다. 이 정도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변명을 하든 아님, 아프다는 말로 나와의 타협을 유도할 줄 알았는데 고집스런 표정으로 은진이가 한 말은 '난. 절대 울지 않어' 한 마디였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맞은데를 감싸며 어리광을 부리거나 아니면 잘못을 시인할텐데. 결국 그 말에 풀이 꺽여 매를 내려놓고 '다음부터 낙서 하지마'라는 지켜지지 않을 게 뻔한 말을 하고 그냥 통합학급으로 돌려 보냈다. 무엇이 이 아이로 하여금 세상에 대해 꽁꽁 마음을 닫아버리게 했을까? 무조건 나에게 반항부터 하는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면서 은진이가 보이는 행동들에 막연하게 이해도 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믿음도 쌓아가면서 닫혀진 은진이의 마음 뒤로 숨어있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타인에 대한 애정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중에서 그 아이와 내가 서로에게 주고 받은 상처가 사실은 적지 않다.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은진이에게 마구마구 내뱉은 말과 행동들.. 나 스스로 아이에게 한 행동들로 상처받기도 하고, 이제 서로 마음이 통했구나 싶으면 어느새 처음처럼 냉랭해져 있는 아이로부터 받은 절망감들로 아파하기도 하고...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마음이 힘들어야 하는 일인가 싶어 그만두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한 것도 은진이다. 다람쥐쳇바퀴 돌듯,  좋아진다 싶다가 어느새 다시 처음의 경계심많은 냉랭한 관계로 돌아가기를 몇 차례..  그러나 이젠 안기만하면 도망부터 치려던 아이가 이제는 조용히 내 품에 안겨 있기도 하고, 매를 들면 맞기 싫다고 아프다고 응석도 부린다. 그렇게 조금씩 그 아이가 내게 마음을 열어준다. 처음에 보이던 반항적인 행동들도, 결국 간절하게 사랑과 관심을 원했던 아이가 선택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나도 이젠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직도 그아이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어느순간,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조금 불안하게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여전히 그 녀석 옆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면서 때로는 화도 내고 상처받았다고 투덜거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 아이와 함께 하고 싶다. 그러면서 은진이속에 맺혀있는 삶의 응어리도 풀어주고 싶고,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 서로를 사랑한다는것이 어떤건지도 가르쳐 주고 싶다. 그렇게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해 주고 싶다.

사실은 내가 그 아이로 인해 어제 오늘 너무 행복하다. 버스타고, 택시타고 하면서 우리집에 찾아온 은진이에게 이미 내 마음의 끈이 아이에게 닿아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6년째로 접어든 교직생활 중에서 어제만큼 아이땜에 기뻤던 적이 있을까? 어제 은진이가 갖고 온 선물은 커플저금통이다. 쑥스러워 은진이가 말하진 않았지만 지현이 말에 의하면 빨간색은 내꺼고, 파란색은 남자친구 생기면 주라고 산 거란다. 아마 미래의 내 남자친구가 처음으로 내게 받게 될 선물은 파란새 예쁜 양철저금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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